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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지 Jul 09. 2021

헌 옷 줄게, 새 것 다오.

내가 가진 옷으로 1:1 업사이클

90년대 생에게 '현실에는 절대 없는 대학교 로망'을 심어준 시트콤 논스톱을 보고 자란 나 역시 그런 로망이 있었다. 책가방, 즉 백팩을 메지 않는 것. 전공 책을 품에 껴안고 쪼끄만 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로망에 빠진 중학생 김작자는 백팩 대신 지퍼 파일에 모든 걸 넣고 다니거나 크로스백을 매고 다녔다. 그렇게 14살 이후로 백팩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나의 절대적인 취향이 반영된 결과였다. 한쪽 어깨로 모든 짐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있었을 때까지는... 


가방 무게가 300g을 넘으면 쳐다도 안 볼 만큼 체력은 점점 동이 나고, 한쪽으로 실린 무게만큼이나 허리는 아프고 자세는 망가졌다. 가방 없이도 몸이 한쪽으로 슬쩍 기우뚱하다. 결정적으로 노트북을 샀다. 이제 양쪽 어깨에 삶의 무게를 공평하게 분산시켜 줄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가방을 들이기에는 아직 13년은 써야 하는 6살짜리 에코백이 맘에 걸리는 것. 재활용 소재 백팩을 살까 하다가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려라.'라는 가진 물건 총량을 지키는 미니멀 라이프가 떠올랐다. 가진 것으로 해결해볼까? 그러나 나는 똥손이므로 이럴 땐 금손을 빌려야 한다. 그리하여 헌 옷을 보내면 가방을  만들어주는 곳을 박박 긁어왔다.



kisihi 기시히

준비물 : 청바지 두벌

백팩 20만 원대~

인스타그램 / 공식 홈페이지


instagaram @kisihi


기시히는 홀로 봉제실에서 데님을 분해하고 합체하는 디자이너님의 이름 자음 'ㄱㅅㅎ'를 소리내 읽은 것. 청바지 두 벌로 백팩, 버킷백, 컵홀더 등을 제작할 수 있다. 도저히 안 팔릴 것 같은 디자인도 제작 가능한 1:1 맞춤 주문 제작 형식이다.



@kisihi 백팩, 버킷백 디자인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상품을 선택하면 커스텀 가능한 디자인. 끈 길이, 스티치 모양은 물론 실 색상까지 고를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해준다. 뭐든 자유 주제가 더 어렵지 않은가. 가이드가 마련되어 있으니 맘이 한결 편하다. 디자인에 따른 추가 금액까지 상세하게 적혀있어 예상을 벗어나는 견적에 당황할 일이 없다.   


@kisihi


제작하기 좋은 데님은 통이 크고 뻣뻣한 바지나 스판 없는 긴 청치마. 스키니진이나 기장이 40cm 이하 데님은 제작이 불가하다. 스판이 있는 청바지는 가능은 한데 사장님이 안 예쁘다 그랬다. '진짜' 안 예쁘다고 경고했으니 꼭 참고하자. 청바지는 세탁 후 선불 택배로 보내면 된다.


@kisihi


기시히에 눈이 뺏긴 건 리플렉터 원사가 들어간 스티치였지만 마지막 마음이 뺏긴 건 간소한 포장. '택배를 열었을 때 왠지 허전하고 서운함이 느껴진다면 제가 의도한 바가 맞습니다.' 홈페이지의 이 문구가 어찌나 만족스러운지. 새로운 쓰레기를 생산하지 않기 위해 대단한 포장 없이, 비닐도 없이 종이에 돌돌 말아 발송한다고 한다.



mimyo.workroom 미묘 워크룸

준비물 : 입지 않는 옷

가격은 디자인, 제품마다 상이

인스타그램

@mimyo.workroom


하지만 아쉽게도 내 옷장 속 안 입는 청바지는 스키니진이거나 무릎이 마중나온 스판 가득한 것들이다. 다른 재질의 옷들도 가능한 곳이 있지 않을까 열심히 기웃거리다 미묘 워크룸을 발견했다. 직접 사용하는 물건을 리폼해 만드는 개인 기록용 계정인 줄 알았는데. '안 입는 옷을 가지고 와주세요. 원하는 무언가로 만들어드릴게요.'라는 메시지와 주문 방법이 안내되어 있더라.


@mimyo.workroom


역시 스판 재질의 옷은 제작이 어렵고, 두꺼운 모직이나 가죽 소재의 경우엔 재봉틀 자체의 힘도, 바늘도 달라야 하기 때문에 제작이 어려운 듯하다. 미묘 워크룸은 청바지 외에도 면바지나 면자켓같이 늘어짐이 없는 뻣뻣한 소재의 옷이면 무엇이든 OK다. 물론 상담을 해봐야겠지만 제작이 가능한 옷도, 제품도 다양한 편.


@mimyo.workroom


무엇보다 패치워크를 활용해 단순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디자인에 훌렁훌렁한 모양이라 딱 봐도 가벼워 보인다.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를 넣어 다니기엔 무리일까 싶어 우선 DM을 보내 놓고 기다리는 중. 답장이 오면 추가하겠다!



tissuuu 티슈

준비물 : 입지 않는 옷 (기본적으로 티슈가 수급한 빈티지 의류, 원단 사용)

냅색 : 7만 원대 ~

인스타그램 / 공식 홈페이지


@tissu


티슈는 빈티지 패브릭 제품들을 모아 해체 후 수작업으로 원 앤 온리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 그리고 한 달에 한번 1:1 오더메이드를 비정기적으로 오픈한다. 전 오더메이드 작업이 끝나면 다음 오더메이드 오픈을 공지하는 방식. 한 번 열 때 냅색 1인, 카드지갑 2인으로 인원을 제한해 차근차근 진행된다.


@tissu


냅색은 슬링백처럼 한쪽으로 매거나 주머니 모양의 백팩으로도 제작 가능하다. 냅색이 더 예뻐 보이는 건 취향을 못 놓아서일까... 어깨가 아파 진짜 고생을 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싶다. 티슈의 오더메이드는 기본 디자인 도안 4개를 제공하고 추가로 포켓이나 패치워크 같은 옵션을 선택해 디자인을 결정할 수 있다. 가격까지 친절히 안내되어 있어 마음이 편안하다.


@tissu


사실 오더메이드에 사용되는 원단은 디자이너와 상담 후 고르는 방식이지만 가지고 있는 의류를 보내어 제작도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단 보낸 '옷의 사이즈와 원단의 종류에 따라 제작 가능 여부가 결정되어 처음 생각했던 다자인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아직 직접 의류를 보내겠다는 경우는 없었을지도. 김작자가 직접 옷을 보내 제작의 어려움을 한바탕 겪으신다면 다음번에는 주문을 받지 않으실 수도 있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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