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불안할 예정입니다만》
- 불안한 나를 고치지 않기로 한, 아주 개인적인 결정의 기록
Part 1. 나에게 불안은 너무 익숙해서
1-2. 불안은 밤이 되면 더 선명해진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딪히고, 수많은 업무를 해내고, 괜찮은 척하며 하루를 마무리한 후에야 나는 침대에 눕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불안이 물밀듯 밀려온다. 마치 온몸을 휘감는 쓰나미처럼,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를 덮쳐온다.
처음에는 체한 듯이 속이 조금 답답했다. 그 정도야 늘 있는 일이었고, 그냥 넘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감각이 숨통까지 죄어오게 됐다. 숨이 막혀서 누워 있을 수조차 없고, 그렇다고 일어나 있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심장은 뛰는데 숨은 들어오지 않고, 가슴은 조여드는 듯하고, 나는 꼼짝없이 그 자리에 갇혀버린다. 그럴 땐 조용히 일어나 거실을 왔다 갔다 한다.
긴 숨을 몇 번씩 내쉬며, 마치 나를 다독이듯 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가만히 있는 것도 너무 힘든 날은 한참 동안 같은 자리를 돌기도 한다. 몇 바퀴인지 세지도 못하고 마냥 왔다갔다 걷는다. 걷다가 걷다가 지쳐서, 그제야 겨우 눈을 감고 잠이 든다. 잠이 든 게 감사할 지경인 밤이 있다.
가끔은 생각한다.
‘이러다 그냥 멈춰버리는 건 아닐까.’
숨이 안 쉬어질 만큼 조이는 밤이 며칠씩 반복되면, 나는 한없이 무력해진다.
그 시간들이 너무 길고 진해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고, 가끔은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스치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믿으려 한다.
이건 병이 아니라, 증상일 뿐이라고.
이 순간이 지나면, 결국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나를 달랜다.
‘이것까지도 나야. 그냥 나는 이렇게 생겨먹은 거야'
스트레스에 민감한 것도, 이렇게 무너지는 것도, 결국은 나니까.
나를 버티게 해주는 말은, 이렇게 남이 아닌 나에게서 나온다.
직장생활 20년 차. 그런데도 출근은 늘 낯설고, 긴장된다.
아무리 오랜 경력자라 해도, 나는 아침마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회사로 향한다.
누구보다 오래, 누구보다 익숙하게 해온 일이지만,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외줄을 걷고 있다.
홍보라는 일은 늘 즉흥적이다.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상황, 갑작스러운 요청, 시간에 쫓기는 마감 속에서 나는 일한다. 그러니 늘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그런 예민함이 어느새 내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잘 해내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게 나의 강박이었고, 동시에 방패였다.
한 번 맡은 일은 누구보다 완벽하게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 오래 했으니까 당연히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내 안은 늘 복잡하다.
회의 중에도, 전화 통화 중에도, 나는 속으로 수십 번 되묻는다.
‘이 말은 실수 아니었을까?’, ‘이렇게 전달하면 오해가 생기진 않을까?’
표정은 평온해 보여도, 속에서는 숨 가쁜 발짓을 하고 있는 백조처럼 매일을 살아간다.
“멀쩡한 척”을 하며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고단한 일이다.
사람들은 묻지 않는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니까.
오히려 “항상 침착하고 성실하다”, “든든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들이 고맙기도 하지만, 때때로 조금 무섭다.
‘나는 그렇게 보여야만 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스며든다.
그래서 불안을 숨긴다. 불안해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누구보다 잘 해내는 사람처럼 하루를 버틴다.
웃고, 대화하고, 일하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간다.
그러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문을 닫는 순간, 비로소 모든 감각이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낮 동안 애써 눌러뒀던 감정들이 밤이 되면 조용히 고개를 든다.
모든 외부 자극이 사라지고, 주변이 고요해지면 나는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올라오는 건, 미뤄뒀던 불안, 눌러뒀던 감정, 감춰왔던 진짜 내 감각들이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것들이 나를 덮치고, 무너뜨린다.
그래서 밤은,
내가 가장 ‘나다운’ 순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버거운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