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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다시 그림을 시작하다.

by 퇴근후작가

《내일도 불안할 예정입니다만》

- 불안한 나를 고치지 않기로 한, 아주 개인적인 결정의 기록


Part 2.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아내기


2-1. 다시 그림을 시작하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나는 쉬지 않고 일했다.

주어진 책임을 벗어난 적도, 속도를 늦춘 적도 없었다.

쉬는 것은 무능한 사람의 선택이라고 믿었고, 나는 늘 바쁘게, 열심히,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그랬던 내가 2022년 봄에 일을 놓게 되었다.

몸이 망가진 것이다. 정확히는,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무너졌다.

처음엔 잠이 오지 않았고 모든 소리에 공포가 생겼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숨이 막혔다. 이유 없이 온몸이 아팠다. 가슴이 조이고 식은땀이 났다. 병원에서는 ‘불안장애’, ‘공황’, ‘자율신경실조’ 등 다양한 이름을 붙였지만, 내게 그것은 단 하나의 메시지였다.

“이제 더는 못 버틴다.”


결국 병가를 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쉬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진짜 힘든 건, 그때부터였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일을 놓았다는 사실이 나를 무너뜨렸다.

처음으로 사회적 이름표가 벗겨지고 나니, 나라는 존재도 함께 사라진 것 같았다.

직장에서는 공백이 되고, 집에서는 눈치가 되고, 하루하루가 무력감과 자책으로 가득했다.


불안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쉴수록 불안했고, 조용할수록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이렇게 무너진 나를 누가 필요로 할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 자괴감 속에서, 나는 아주 깊은 구덩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생각의 흐름 속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그림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

내가 미대를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처음으로 “할 수 있다”라고 말해준 유일한 어른.

그 시절, 내 꿈을 가장 진지하게 대했던 사람.


정말 아무 기대 없이 검색창에 이름을 넣었고, 믿기지 않게도 SNS 계정이 떴다.

그분은 유명한 서양화가가 되어 계셨고 심지어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서 화실을 운영하고 계셨다.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혹시 저 기억하시나요...?”

몇 시간 뒤, 답장이 왔다.

“지선아, 너를 기억 못 할 수가 없지. 나의 첫 제자였는 걸.”


그날, 나는 조금 울었던 것 같다.

내가 아직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무너진 자존감을 아주 조금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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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화실을 찾았다.

석촌호수 근처, 조용한 골목길 끝에 자리한 2층짜리 작업실.

조용하지만 경쾌한 피아노 음악과 연필 소리, 물감 냄새, 이젤 앞에 집중한 사람들.


그 익숙한 풍경이 내 안에 굳어있던 감정을 서서히 녹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여전히 몸은 온전하지 않고, 불안도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화실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은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물감의 냄새, 캔버스의 질감, 붓질 하나하나가 내 숨을 다시 이어주었다.


그림은 내게 다시 나를 돌려주었다.

역할도, 직함도 아닌 오롯한 나 자신의 이름으로.


오늘도 퇴근 후, 나는 화실로 향한다.

아직도 흔들리지만, 적어도 나는 다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다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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