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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냐고 묻는다면

by 퇴근후작가

《내일도 불안할 예정입니다만》

- 불안한 나를 고치지 않기로 한, 아주 개인적인 결정의 기록


Part 2.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아내기


2-3.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냐고 묻는다면


가끔 이런 질문을 듣는다.

“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사세요?”

그 질문은 늘 나를 멈춰 세운다.


아침에 운동을 하고 출근해 하루 종일 긴장하며 일하고, 퇴근 후에는 화실로 향해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아이도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한 중학생이고, 회사에서는 돌발 상황이 잦은 홍보팀에 속해 있어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하루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도, 나는 다시 그림 앞에 앉는다.

잠깐 끄적이는 취미가 아니다.

매일 퇴근 후 3~4시간 돋보기를 쓰고 캔버스에 매달린다.


그림도 일이 되면서, 어느새 나는 투잡러가 되었다.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다 보니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마실 여유도, 주말에 친구들과 브런치를 즐길 틈도 없다.


몸이 피곤한 건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마음이 따라오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안은 그 틈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조급함,

‘지금 이걸로 충분한가’라는 끊임없는 자기 검열,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비교.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쉰 적이 없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단 하루도 멈춘 적 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멈추는 순간 무너질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이 내 일상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목표가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계획을 세우고, 단계를 밟고, 무엇이든 꾸준히 해내는 삶.

머리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노력은 늘 성실하게 해냈다.


사회에 나와서도, ‘일을 잘한다’는 평가가 삶의 중심이었다.

그 기대를 놓을 수 없었다.

주변의 시선에, 칭찬에, 인정에 나를 맡기고 살아왔다.

열심히 사는 건 나를 지키는 방식이기도 했다.

불안해지지 않기 위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늘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하루하루 갉아먹은 것도 결국 ‘불안’이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멈추면 불안했고, 남들과 다르면 불안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불안이 한꺼번에 터졌다.


몇 년 전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경험했던

이유 없는 통증, 불면, 위장 장애, 이명, 심장 두근거림.

이미 그때 몸이 보내는 모든 신호가 하나같이 ‘멈춰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바닥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림을 시작하고 잠시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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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밖에서, 명함 없이도 몰입할 수 있는 세계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붓을 들고 있는 시간만큼은 불안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하루의 에너지를 다 쏟아낸 퇴근 후에도,

밤 10시까지 화실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몰입은 짜릿했고, 성취는 달콤했다.


그런데 또다시 아팠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이명, 위장장애, 불면, 그리고 다시 시작된 공황.


분명 ‘좋아서 하는 일’이었는데,

왜 또 이렇게 나를 망가뜨렸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왜 나는 항상 나를 에너지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걸까?

왜 멈추는 게 이토록 두려운 걸까?


그제야 보였다.

내가 그렇게 집착하던 ‘성실함’이라는 태도가

사실은 불안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는 걸.


어릴 때부터 나는 늘 성실하다는 말을 들었다.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

절대 무책임하지 않고,

항상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애썼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칭찬했지만,

그 성실함은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무서운 습관이기도 했다.


쉬는 나를 용납하지 못했고,

게으른 나를 혐오했고,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

증명하려고만 했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 또 다른 불안을 쌓는 방식 말고,

불안과 함께 걸어가는 방식으로.


조금 느리게,

조금 덜 완벽하게.

멈춰도 괜찮고,

조금 흐트러져도 괜찮은 삶.


불안을 없애기 위해 달려왔지만,

이제는 불안과 함께 걷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나의 속도로,

나의 방향으로.


그림은 여전히 좋다.

하지만 그 그림이 나를 갉아먹는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이제는 그림조차도 나를 다그치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다독이는 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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