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5. 회사에서의 위장된 정돈감

by 퇴근후작가

《내일도 불안할 예정입니다만》

- 불안한 나를 고치지 않기로 한, 아주 개인적인 결정의 기록


Part 2.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아내기


2-5. 회사에서의 위장된 정돈감

- 아무렇지 않아 보여야 했던 이유


나는 늘 ‘멀쩡한 척’을 하며 회사에 다닌다.

깔끔하게 꾸민 외모, 밝고 명랑한 목소리, “할 수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태도.

모두 불안장애를 감추기 위한, 나만의 정교한 위장술이다.

좋아 보여야 한다. 흔들리지 않아 보여야, 내 속에 웅크린 불안이 들키지 않을 것 같으니까.


사람들은 말한다.

“늘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라고.

그건 내가 일부러 목소리의 톤을 한층 올리고,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홍보 일을 해왔으니,

친절함은 거의 반사처럼 몸에 밴 습관이 되었고

어떤 상황에서든 “괜찮습니다”, “문제없습니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그러니 아무도 내가 아프다는 걸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점심시간에 링거를 맞고,

불안장애 약을 삼켜가며 겨우 하루를 버티고 있는데도.



나는 나를 꾸미는 것에도 굉장히 공을 들인다.

누군가는 그저 취향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내게 그것은 자기 확신을 유지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집 앞 마트에 갈 때조차 생얼로 나가본 적이 없고,

대학생 시절 밤새워 공부할 때도,

사회 초년생 시절 새벽 야근에 시달릴 때조차

항상 풀메이크업에 단정한 옷차림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넌 괜찮아. 잘 해내고 있어.”


외면을 가다듬는 행위는

내 내면을 부여잡는 방식이기도 했다.


화장이든, 옷차림이든...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힘을 실어주기 위한 루틴이었다.

내가 나에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기분이 오르지 않았고

일의 효율도, 집중력도 바닥을 쳤다.


그래서 꾸미는 행위는 단순한 치장이 아니라

나를 지탱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였다.


완벽해 보이려는 강박, 무너지지 않으려는 애씀.

어쩌면 이것도 불안장애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겉모습 아래에는

누구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내가,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붙들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그 모습을 나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쓰는 나를, 지켜내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그럼에도 세상은 쉽게 말한다.

“너보다 힘든 사람들 많아.”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배부르니까 생각만 많아지는 거지.”


그 무심한 말들이 내게는 칼처럼 날아들었다.


가볍게 던져진 말 한마디가

내 안의 불안을 자극하고,

“힘들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죄책감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침묵했다.

불안을 숨기기 위해 더 씩씩한 척을 했고 힘들지 않은 사람처럼 연기했다.

그래서 더 외로웠고, 더 아팠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무너졌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일어섰다.


이제는 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지옥이 있다는 걸.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그 안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한다.

그 말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얼마나 누군가를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지 모른 채.


그래서 나는,

누구의 힘듦도 함부로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아픔 또한,

남의 기준으로 평가받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건 비교가 아니다.

내가 나를, 오늘 하루도 지켜냈다는 사실.

그것이면 충분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4.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오롯이 '진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