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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조용히 내미는 인사, 다정함의 시작

by 퇴근후작가

《내일도 불안할 예정입니다만》

- 불안한 나를 고치지 않기로 한, 아주 개인적인 결정의 기록


Part 3. 화실에서, 나를 그리다 — 온전히 내가 된다


3-1. 조용히 내미는 인사, 다정함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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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MBTI는 잇프제(ISFJ)다.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고, 눈에 띄는 건 몹시 어색하며, 남에게 신세 지는 일을 유난히 어려워하는 성향.

모두 나에게 꼭 들어맞는다.


이런 성격은 화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조용히, 묵묵히 그림만 그린다.

회원들 대화에 쉽게 끼지 못하고, 누군가 내 그림을 칭찬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화실에서 유일하게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인사 잘하기”다.


화실에는 늘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모두 각자의 작업에 몰두해 있다.

그 속에서 누가 오고 가는지조차 모르는 일이 허다하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는 것.

나는 그 고요함이 가끔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로.

일찍 오든 늦게 오든, 아는 분이 있든 없든,

화실 문을 열며 또렷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갈 때면 안쪽 소묘 회원들에게 한 번,

바깥쪽 유화 회원들에게 또 한 번 크게 인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이 작은 인사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

“이거, 그림에 써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하며 유화마카를 건네주는 분이 생겼고,

“배고플까 봐 삶아 왔어요.”

하며 달걀을 나눠주는 손길도 생겼다.

물감을 빌려주시고, 도움이 될 전시 정보를 공유해 주시는 마음까지.

“퇴근하고 오느라 고생했어요.”

라며 건네받은 따뜻한 코코아는 그날 밤 그림에까지 따뜻함을 남겼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생각보다 외로운 일이다.


자신과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과 실제의 간극 앞에서 매일 좌절한다.

그 시간을 견디는 내게,

화실 회원들의 소소한 친절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나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내가 가진 재료를 기꺼이 내어드리고,

아는 것을 최대한 알려드린다.

작은 손길이 누군가에겐 큰 다정함이 될 수 있다는 걸,

이곳에서 조용히 배워가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간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은 무너지고 있을지 모른다.


나 역시 그랬다.

늘 웃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속으론 애써 버티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단함까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

조금은 더디더라도, 조용히 곁에 머물러줄 수 있는 사람.


내가 먼저 내민 인사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오늘을 견디는 힘이 될 수 있듯이.

모두가 각자의 지옥을 안고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나는 오늘도, 내일도—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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