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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후작가 Jul 20. 2023

다시 회사를 사랑할 생각은 없는데요?!

"회사는 나처럼 충성스러운 직원을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다"

홍보팀을 떠난 지 2년이나 지났는데

어제 하루 동안에만 두 명의 기자에게 안부 전화를 받았다.


홍보담당자와 출입기자로 만나 목소리 높이며 싸우기도 했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서로 응원하는 사이가 되어 오랜만의 통화가 너무 반가웠다.


1년 반이면 충분히 쉬지(?) 않았느냐며

이제 다시 홍보팀으로 돌아오란 기자의 이야기에

유선상이었지만, 난 격하게 손사래를 치며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웃어넘겼다.


대학 졸업 후 만 20년이란 시간 동안 언론홍보만 했던 나에게

예고 없던 일반 사무직 발령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당시 건강이 너무 안 좋아 병가를 다녀온 직후라 더 충격이 크기도 했다. 

사실 나만 몰랐지, 나를 싫어하는 분이 날 밀어냈다는 이야기는 이후에 들었다. 


홍보 영역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조직에 들어와

나의 20대와 30대, 40대 초반을 언론홍보담당자로

누구보다 조직을 아끼고 사랑하며 일했는데

나의 존재가 쓸모없어지고 내쳐진 것 같아 굉장한 좌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마흔 살이 넘어 처음 접하는 일반 사무직 업무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알게 해 주었다.


업무에 정해진 일정이 있고, 정해진 매뉴얼이 있었다.

조직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오롯이 루틴대로 내 업무만 사고 없이 처리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퇴근하며 PC를 끄면, 내 일도 끝이었다.


홍보팀에 있을 때는

CEO의 일정을 챙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조직의 발전방향, 임원들의 동정, 갑자기 발생하는 사건사고 등

퇴근 시간과 상관없이 울려 되는 전화와 카톡을 대응하며

눈 뜬 시간 동안의 대부분을 긴장상태로 보냈었다.


홍보일 자체가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라

어떻게든 회사를 빛이 나게 하기 위해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나를 발령 냈으니, 나의 좌절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시간을 보내고, 2년이나 지난 지금의 나는.

근무 시간에는 집중하고, 퇴근 후에는 은퇴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회사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니 분노와 서운함도 함께 사라져 버려

출근하는 나의 마음은 오히려 굉장히 가벼워졌다.


지금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은퇴를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 보는 이 시간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제 조직을 빛내지 않아도 되고

오롯이 나의 브랜드를 차곡차곡 만들어나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은 것 같기 때문이다.


회사는 충성스러운 직원을 하나 잃었고

나는 다시 회사를 사랑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늘 나의 퇴근길 발걸음도 매우 가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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