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상속 문제, 드러난 두 명의 어머니
* 모든 사건은 개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각색되었고, 이를 위하여 내용 중에 허구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이런, '정은영' 씨를 찾을 수 없다구요?"
제 두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분명 얼마 전 통화까지 했는데… 그럼 대체 '정은영' 씨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이 사건, 처음엔 그저 복잡한 가족사 정도로 여겼는데, 알고 보니 두 개의 다른 법원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혈연의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거대한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변호사님, 저희 어머니 이름으로 된 작은 빌라가 한 채 있는데, 그걸 정리하려 하니 저희가 상속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모든 걸 제대로 바로잡고 싶어요."
모든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 아니 '진짜 어머니' 이름으로 된 작은 빌라 한 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았습니다. 의뢰인 세 자매에게는 '진짜 어머니'와 '서류상 어머니'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매들은 두 개의 소송을 동시에, 서로 다른 법원에 제기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한 지방 가정법원에 진짜 어머니(고 이수진)와의 친생자관계를 인정해달라는 소송이었고, 다른 하나는 또 다른 도시의 가정법원에 서류상 어머니(고 최민서)와의 친생자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송이었습니다.
2. 엇갈린 운명: 진짜 엄마, 그리고 서류 속 엄마
기구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자매들의 아버지(고 정태준)는 첫 번째 부인(고 최민서)과 오래전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두 분 사이에는 딸, '정은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매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고 최민서 씨는 집을 나가 혼인 관계는 사실상 끝난 상태였습니다. 이후 아버지는 자매들의 친어머니(고 이수진)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세 자매를 낳아 길렀습니다. 하지만 고 최민서 씨와의 법적 관계 정리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수년간 지체되었고, 그 사이 태어난 자매들은 출생신고 시 아버지의 법적 배우자였던 고 최민서 씨의 자녀로 등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고 최민서 씨와 법적으로 이혼했고, 이후 고 이수진 씨와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3. DNA 검사의 벽: 막다른 길에서 찾은 한 줄기 빛
소송의 핵심은 당연히 혈연관계 입증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진짜 엄마 (고 이수진) 와의 관계 입증의 어려움: 친어머니인 고 이수진 씨는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습니다. 어머니의 유일한 남자 형제, 즉 자매들의 외삼촌도 이미 세상을 떠난 후라, 모계 혈연관계를 확인할 미토콘드리아 DNA 검사가 불가능했습니다. 유전자 검사기관에서도 고 이수진 씨의 유품이나 검체가 남아있지 않고, 외삼촌의 자녀들과의 검사로는 자매들과 고 이수진 씨 간의 직접적인 혈연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공식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서류상 엄마 (고 최민서) 와의 관계 부존재 입증: 다행히 이쪽에는 희미한 빛줄기가 있었습니다. 고 최민서 씨와 고 정태준 씨 사이의 딸인 '정은영' 씨를 찾아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그녀가 다른 가정에 입양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수차례 통화를 시도하고, 그녀의 협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심지어 법원에 증인으로 신청하여 소환 절차까지 고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과정에서, 수많은 통화와 설득 끝에 '정은영' 씨, 즉 현재 '강지윤'이라는 새 이름으로 살고 있는 그녀가 스스로 입양 사실과 개명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이로 인해 어렵게 진행했던 증인 신청은 철회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연락이 닿은 강지윤 씨와의 미토콘드리아 DNA 비교 분석 결과, 세 자매는 동일 모계 혈연으로 확인되었지만, 강지윤 씨와는 모계 혈연관계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매들이 강지윤 씨와 어머니가 다르다는, 즉 고 최민서 씨의 자녀가 아니라는 명확한 과학적 증거였습니다.
4. 사라진 이복언니 '정은영'을 찾아서: 뜻밖의 조력자 '강지윤'
강지윤 씨를 찾는 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추리극과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정은영'이라는 이름으로 수소문했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 통화했던 번호의 명의자는 전혀 다른 이름의 인물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강지윤 씨와 연락이 닿았지만, 그녀는 처음에는 매우 비협조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과거 가족사로 인한 감정의 골이 깊었고, 이복자매들의 일에 자신이 왜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망설임이 커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수십 차례에 걸쳐 그녀와 통화하며 진심으로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의 간곡한 요청과 설득 끝에 강지윤 씨는 자발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받기로 마음을 돌려주었습니다.
수십 번의 통화와 끈질긴 설득 끝에,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던 분이 바로 입양되어 개명한 '정은영' 씨(현 강지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새어머니(자매들의 친모)를 들인 후 집을 나와 스스로 다른 집에 입양되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협조는 서류상 어머니와의 관계를 끊어내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5. "엄마는 한 분 뿐이었어요": 47년 동행의 기록들 (첫 번째 법원 소송)
한 지방 가정법원에서 진행된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소송은 고 이수진 씨가 진짜 어머니임을 증명하는 지난한 싸움이었습니다. 직접적인 DNA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저희는 마치 탐정처럼 간접 증거들을 하나하나 수집해 퍼즐을 맞추듯 제시했습니다.
삶의 기록, 거주지: 자매들과 고 이수진 씨는 거의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같은 주소지 또는 바로 옆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주민등록 기록에는 이 기나긴 동행의 역사가 빼곡히 담겨 있었습니다. 고 이수진 씨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도 둘째 딸과 함께 살던 집이었고, 사망신고 역시 둘째 딸이 직접 했습니다.
가족들의 생생한 증언: 고 이수진 씨의 가까운 친척(예: 여동생의 아들)은 자매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고, 고 이수진 씨가 자매들을 직접 출산하고 양육했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이복언니 강지윤 씨 또한 아버지가 고 최민서 씨와의 혼인 중 고 이수진 씨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자매들을 낳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빛바랜 사진 속 진실: 고 이수진 씨와 세 자매가 함께 찍은 수많은 빛바랜 가족사진들은 그들이 단순한 동거인이 아닌, 세상 누구보다 애틋한 모녀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사진 속에는 함께한 명절, 여행, 소소한 일상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6. 첫 번째 승리: "어머니, 이제 편히 눈 감으세요"
그리고 마침내, 수년간의 노력 끝에 첫 번째 법원은 저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제출된 모든 증거와 정황을 종합하여, 세 자매와 고 이수진 씨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함을 확인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입니다. 수십 년간 꼬여 있던 실타래가 풀리고, 진짜 모녀 관계가 법적으로 제자리를 찾는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7. 마지막 관문: 서류상 모녀 관계, 그 마지막 고리를 끊다 (두 번째 법원 소송)
첫 번째 법원에서의 승소 판결문은 다른 도시의 가정법원에서 진행 중이던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에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되었습니다. 이미 강지윤 씨와의 DNA 검사를 통해 자매들이 고 최민서 씨의 자녀가 아님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고, 첫 번째 법원의 판결은 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강력한 논리가 되었습니다.
8. 진실을 향한 길고 긴 여정, 그 눈물의 무게
이 소송은 단순한 재산 문제나 서류 정리를 넘어, 자매들이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온 자신의 정체성과 혈연적 진실을 찾기 위한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잘못 기록된 가족관계를 바로잡고, 진짜 어머니와의 관계를 공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두 번째 법원의 최종 판단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 법원에서의 승리가 있었고, 수많은 증거들이 명확히 진실을 가리키고 있기에, 자매들이 겪어온 오랜 고통의 시간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진정한 평온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이 길고 긴 여정이 의뢰인들의 미소와 함께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