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은 빚, 딱 10만 원 갚았을 뿐인데…

대법원이 뒤집은 ‘죽은 채권’의 부활 조건

by 산뜻한

모든 분석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법률적 해석의 재미와 정보 전달을 위해 가상으로 각색되었습니다.


10년 넘게 잊고 지냈던 빚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자영업자 김철수 씨의 손에는 낡은 채무 변제 독촉장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철수 씨의 이야기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작은 선의가 어떻게 인생을 뒤흔드는 법적 함정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게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한 통의 전화였습니다. 10여 년 전, 사업 실패로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 했던 상거래 채무. 까맣게 잊고 살았던 그 빚의 추심을 맡았다는 낯선 법무법인이었습니다.


“김철수 씨, 오래된 빚이 있으시네요. 원금에 이자까지 하면 꽤 큰데, 저희도 사정은 이해합니다. 그러니 이번 달에 딱 10만 원만 성의를 보여주시면, 이자 감면하고 원금도 분납하게 해 드릴게요.”


오랜 세월 마음의 짐이었던 빚. 철수 씨는 이번 기회에 조금씩이라도 갚아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상대방의 친절한 제안에 고마운 마음까지 들어 다음 날 바로 10만 원을 입금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그에게 날아온 것은 약속했던 감면 합의서가 아닌, 그의 전 재산을 압류하겠다는 ‘지급명령’ 신청서였습니다. 10만 원을 갚은 행위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빚 전체를 다시 갚겠다’고 인정한 증거가 되어, 10년 치 이자까지 붙은 채로 부활한 것입니다.


철수 씨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작은 성의 표시였던 10만 원이 ‘죽었던 빚’을 모두 되살리는 ‘마법의 주문’이 되어버렸다는 것을요.


1. 그 ‘10만 원’, 법정에 가면 어떻게 됐을까? (구 판례)


철수 씨를 절망에 빠뜨린 법리는 바로 ‘시효이익 포기의 추정’이라는 개념입니다.


우선 ‘소멸시효’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빚에도 유효기간을 두는 제도입니다. 상거래 채권은 5년, 개인 간의 돈거래는 10년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채권이 소멸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즉, 채권자는 더 이상 법적으로 돈을 갚으라고 강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58년간 우리 대법원은 확고한 입장을 유지해왔습니다. “시효가 완성된 후, 채무자가 빚의 일부라도 갚으면, 이는 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이익을 포기하고 빚 전체를 갚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대법원 66다2173 판결 등).


‘추정’한다는 것은 법원이 ‘아마 그랬을 것’이라고 일단 단정하고, 아니라는 증거는 채무자 스스로 찾아오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과 같습니다. 철수 씨가 “나는 시효가 완성된 줄도 몰랐다”고 아무리 외쳐도, 법원은 “어쨌든 10만 원을 갚지 않았느냐”며 그의 주장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에 판례가 변경된 대법원 사건의 하급심(2심) 역시 이와 같은 논리를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채무자 A씨는 채권자 B씨에게 여러 차례 돈을 빌렸는데, 그중 1, 2차 차용금의 이자 채무는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A씨가 빚의 일부인 1,800만 원을 갚자, 항소심 법원은 “A씨가 일부를 변제함으로써, 시효가 완성된 이자 채무에 대한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2. 대법원의 브레이크: ‘묻지마 추정’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신 판례)


2025년 7월 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바로 이 58년 된 낡은 판례를 마침내 변경했습니다(대법원 2023다240299).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기존의 ‘추정 법리’가 경험칙과 상식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채무자가 시효 완성으로 빚에서 해방되는 법적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고 굳이 불리한 법적 지위를 자청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시효가 완성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일부를 변제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즉, 대법원은 더 이상 ‘일부 변제 = 시효이익 포기’라는 자동 공식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제는 채무자가 정말로 시효가 완성된 사실을 알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빚을 갚으려는 명확한 의사가 있었는지를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기준을 바꿨습니다.


재판부는 이제 ▲일부 변제에 이르게 된 동기와 경위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갚았는지 ▲갚은 돈과 전체 빚의 액수 차이 ▲당사자들의 관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이러한 판례 변경은 ‘죽은 채권’을 부활시키기 위해 일부 변제를 유도하던 일부 추심업체의 관행에도 제동을 걸고, 정보가 부족한 채무자를 보호하는 매우 의미 있는 결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3. 성실한 채무자를 위한 ‘이것만은 꼭!’ 법률 상식


오래된 빚이라도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당신의 선한 의지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상환 계획을 위해 채무 상태부터 정확히 파악하세요.

오래된 빚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면, 상환을 시작하기에 앞서 채권자에게 채무의 원금, 발생 시점, 마지막 변제일 등을 명확히 확인하여 전체적인 상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성실한 변제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2) 전체 합의 없이 소액부터 갚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물론 빚은 갚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전체 채무액이나 이자율에 대한 명확한 합의 없이 소액부터 갚기 시작하면, 나중에 예상치 못한 이자가 붙거나 법적 분쟁의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먼저 채권자와 총 상환액과 상환 방법에 대해 명확히 합의하고, 그 내용을 서면으로 남겨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3) 새로운 대법원 판결은 당신의 ‘선의’를 보호합니다.

만약 시효가 지난 줄 모르고 일부를 갚았더라도, 이제 법원은 당신의 편에서 상황을 다시 살펴볼 것입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채무자의 ‘시효이익 포기 의사’를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것이므로, 빚을 갚으려 했던 당신의 선한 의도는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4) 명확한 합의가 서로의 신뢰를 지킵니다.

채무 관계에서 가장 좋은 것은 성실하게 갚는 것이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명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채권자와 원만히 합의하여 상환 계획을 세우는 것은, 훗날 발생할 수 있는 오해로부터 채무자와 채권자 모두를 보호하고, 건강한 신뢰 관계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약속의 증표’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빚을 회피하라는 신호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빚을 성실하게 갚으려는 사람들이 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더 큰 덫에 빠지지 않도록 ‘공정한 운동장’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법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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