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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게를 통째로 뺏길 뻔했습니다”

어느 자영업자들의 피눈물 나는 계약 이야기

by 산뜻한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많은 사장님의 얼굴에는 저마다의 고단함이 묻어 있습니다. 1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며 동네의 터줏대감이 된 세탁소 사장님,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오븐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젊은 파티시에,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까지.


저마다의 꿈을 일구는 그 성실한 얼굴들이 절망과 억울함으로 일그러지는 순간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바로 ‘사람’을 믿었다가 ‘계약서’에 발목을 잡혔을 때입니다.


“변호사님,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어… 하고 믿었죠.”


오늘은 제가 상담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우리 주변 사장님들이 피눈물 흘렸던 실제 계약 이야기 몇 가지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의뢰인의 비밀은 철저히 지켜져야 하기에, 세부 내용은 각색했지만, 사장님들이 반드시 아셔야 할 ‘핵심 쟁점’만큼은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사례 1. “주차는 당연히 되는 거죠” 그 한마디 믿다가…


플라워샵을 운영하는 A사장님은 상가를 계약하며 공인중개사에게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이전 가게 사장님은 가게 앞 주차공간을 편하게 쓰셨다던데, 저도 당연히 쓸 수 있는 거죠?” 중개사는 물론이라며 손사래를 쳤죠. A사장님은 꽃과 화분을 수시로 실어 날라야 했기에 주차공간은 필수였습니다.


하지만 계약서에는 주차 관련 내용이 한 줄도 없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게 화근이었습니다. 입주 첫날부터 중개사는 “계약서에 없지 않느냐”며 그 주차공간을 자신의 차로 막아섰고, 손님 차까지 빼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건물주에게 하소연했지만 “구두로 약속한 것까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며 나 몰라라 할 뿐이었죠.


[변호사의 시선] A사장님 사례의 핵심은 ‘구두 약속’과 ‘서면 계약’의 싸움입니다. 아무리 100번을 약속했어도 계약서에 없는 내용은 분쟁 시 인정받기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주차, 창고 사용 등 사업에 필수적인 조건은 반드시 계약서에 ‘특약’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본 계약의 임차인은 건물 전면 주차공간 1대에 대한 전용 사용권을 갖는다” 와 같은 단 한 줄이 A사장님의 가게를 지켜줄 수 있었습니다.


사례 2. “24시간 밤샘 작업 가능!” 광고만 믿고 입주한 디자이너의 눈물


B사장님은 웹툰 마감이 코앞이라 밤샘 작업을 밥 먹듯 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가 사무실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단연 ‘24시간 출입’이었습니다. 마침 한 공유 오피스 블로그에 “#24시간 이용 #야근 문제없음”이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띄었고, B사장님은 고민 없이 계약했습니다.


입주 초기엔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건물 관리인은 ‘보안’과 ‘문고장’이라는 알 수 없는 이유를 대며 밤 11시만 되면 정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마감을 위해 새벽에 사무실로 뛰어가도, B사장님은 차가운 복도에서 1~2시간씩 발만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항의하는 B사장님에게 건물주는 “그럼 소송하시든가”라며 배짱을 부렸죠.


[변호사의 시선] 임대인은 임차인이 계약 목적에 따라 건물을 온전히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민법 제623조). B사장님의 경우, 블로그 광고를 통해 ‘24시간 이용’이라는 조건이 사실상 계약의 일부가 된 셈입니다. 따라서 임대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출입을 막는 행위는 명백한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며, B사장님은 출입을 못한 시간만큼의 월세와 관리비는 물론, 업무에 차질이 생겨 발생한 ‘영업 손실’까지도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혹시 비슷한 일을 겪고 계신다면, 잠긴 문 사진, 관리인과의 대화 녹음 등 증거를 빠짐없이 모아두셔야 합니다.


사례 3. “시설 투자하시면 장기 계약 해줄게요” 그 약속의 배신


10년 넘게 한자리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해 온 C사장님. 낡은 오븐과 인테리어를 전부 교체하기로 마음먹고, 큰돈을 투자하는 김에 건물주에게 장기 계약을 요청했습니다. 건물주는 흔쾌히 7년짜리 새 계약서를 내밀었죠. C사장님은 안심하고 수천만 원을 들여 가게를 완전히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그런데 계약서 맨 마지막 장에 깨알같이 적힌 한 줄짜리 ‘특약’이 문제였습니다.


계약 종료 시, 임차인이 설치한 모든 시설물은 임대인에게 귀속된다.” 그리고 7년의 계약 만료를 몇 달 앞둔 어느 날, C사장님은 건물주로부터 충격적인 통보를 받습니다. “계약 연장은 없습니다. 그 시설들 전부 두고 나가세요. 이제부터는 제가 직접 빵집 하려고요.”


[변호사의 시선] C사장님은 이미 상가임대차법상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기간인 10년을 훌쩍 넘겨 장사를 해왔기에, 법적으로 재계약을 강제할 수는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갱신요구권이 없는 상태에서 맺은 ‘시설물 귀속 특약’은 원칙적으로 유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C사장님의 피와 땀이 서린 가게가 통째로 건물주의 차지가 될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이 특약 한 줄에 서명한 대가였습니다.


변호사의 마지막 한마디: 당신의 계약서는 안녕하신가요?


제가 오늘 들려드린 이야기들은 결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이 정도는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작은 믿음이 어떻게 내 사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물론 모든 임대인이나 중개인이 나쁜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를 분쟁에서 사장님의 소중한 꿈과 재산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잘 쓰인 ‘계약서’ 단 한 장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혹시 지금, 계약서에 서명하기 직전이신가요? 아니면 이미 맺은 계약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계신가요? 법은 어렵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용기 내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부디 그 무기를 현명하게 사용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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