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말하는 소상공인 생존법
가게 문을 열러 갔는데, 유리문에 낯선 경고문과 함께 시뻘건 압류 딱지가 붙어있다면.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일 겁니다. “내 가게는 문제없는데, 왜?”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날벼락은 사장님 잘못이 없어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확인해야 할 ‘숨은 함정’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오늘은 가게 문을 열고 성실하게 장사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외부의 위기’에 대처하는 법을 실제 상담 사례를 통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의뢰인의 비밀 보호를 위해 내용은 각색되었습니다.
동네에서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던 D원장님은 어느 날 학부모들로부터 “이 건물 경매 넘어간다는데, 괜찮으냐”는 전화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건물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이미 몇 달 전 경매개시결정이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망연자실한 D원장님 앞에 나타난 집주인은 눈물부터 쏟았습니다.
“원장님, 제가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원장님 보증금은 지켜드려야죠. 제가 방법이 있습니다.”
집주인이 내민 방법은 기가 막혔습니다. 원래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 250만 원이던 계약서를 파기하고,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 50만 원짜리 허위 계약서를 새로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소액임차인’이 되어 최우선으로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논리였죠. 집주인의 간곡한 설득에 D원장님은 잠시 흔들렸습니다.
[변호사의 시선] 이것은 D원장님을 위하는 척하며 나락으로 빠뜨리는, 정말 위험한 제안입니다. D원장님은 은행이 건물에 근저당을 설정하기 훨씬 이전에 사업자등록을 마친, 경매에서 가장 강력한 권리를 가진 ‘선순위 임차인’이었습니다. 선순위 임차인은 건물이 누구에게 낙찰되든 새로운 주인에게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때까지 가게를 비워주지 않아도 되는 막강한 ‘대항력’을 가집니다.
만약 D원장님이 집주인의 말만 믿고 허위 계약서를 작성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는 은행 등 다른 채권자들을 속이는 ‘사해행위’로 간주되거나,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한다고 판단되어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원래의 임대차계약마저 취소(사해행위로 인정될 경우)되거나 무효(통정허위표시로 인정될 경우)로 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집주인이 내미는 ‘특별한 제안’일수록, 서명하기 전에 반드시 법률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야 합니다.
스터디카페를 운영하는 E사장님은 최근 매출이 급락해 고민이 깊었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옆 가게에 새로 들어온 식당에서 저녁 시간만 되면 흘러나오는 역한 냄새 때문이었습니다. 환기 시설이 미비했던 탓에, 조용히 공부해야 할 공간은 온통 음식 냄새로 가득 찼습니다. 손님들은 환불을 요구하며 떠나갔고, 인터넷에는 ‘냄새나는 스터디카페’라는 악평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E사장님은 식당 주인에게 몇 번이나 항의하고 구청에도 민원을 넣었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내 잘못도 아닌데, 평생의 꿈이었던 가게가 문 닫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변호사의 시선] 이웃 가게로 인해 피해를 볼 때, 법은 ‘수인한도(참을 수 있는 한도)’라는 개념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누구나 이웃과 함께 살아가며 어느 정도의 소음이나 냄새는 감수해야 하지만, 그것이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을 넘어 내 영업에 실질적인 피해를 준다면 명백한 ‘불법행위’가 됩니다.
E사장님은 이 ‘수인한도’를 넘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방법은 ‘증거’뿐입니다. ▲피해 손님들이 직접 작성한 사실확인서 ▲냄새가 심한 날짜와 시간을 꾸준히 기록한 ‘악취 일지’ ▲옆 가게 입점 전후의 카드 매출 비교 데이터 ▲구청에 민원을 넣었던 기록 등. 이런 객관적인 자료들이 모여야 법원을 통해 영업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은 물론, 근본적인 원인(환기 시설 설치 등)을 해결하도록 강제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으로만 주문을 받아 반찬을 판매하던 F대표님. 어느 날 국내 최대 배달 플랫폼 앱에서 F대표님의 가게가 아무런 설명 없이 사라졌습니다. 처음엔 단순 오류인 줄 알았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도록 가게는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매일같이 고객센터에 전화했지만 “확인 후 연락드리겠다”는 답변만 반복될 뿐이었습니다.
20일 가까이 지나서야 플랫폼의 서버 오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가게는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플랫폼 측은 자신들의 과실을 인정하며 보상 논의를 약속했죠. 하지만 그 후가 문제였습니다. 보상 담당팀은 전화를 받지도, 이메일에 답장을 하지도 않으며 F대표님을 완벽한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F대표님은 거대 플랫폼 앞에서 깊은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변호사의 시선]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한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는 것입니다. 전화 통화나 이메일은 무시당하기 쉽습니다.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첫 번째 조치는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는 것입니다. 내용증명에는 ▲플랫폼 측이 과실을 인정한 사실 ▲영업이 중단된 정확한 기간 ▲과거 매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손해액 등을 명확히 기재하여 발송해야 합니다.
내용증명은 상대방에게 심리적 압박을 줌과 동시에, 추후 소송이나 분쟁 조정 과정에서 ‘내가 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공식적인 노력을 했다’는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내용증명에도 상대가 묵묵부답이라면, 소송 전에 ‘한국공정거래조정원’ 등에 분쟁 조정을 신청하여 보다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오늘 살펴본 사례들처럼,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위기의 모습은 저마다 달라도, 그것을 헤쳐나가는 핵심 원칙은 단 하나입니다.
“당황하지 말고, 모든 것을 기록하라.”
문제가 발생한 순간부터 날짜, 시간, 관련자, 대화 내용, 사진, 매출 기록 등 모든 것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증거로 남기는 습관이, 막막한 위기 속에서 사장님을 지켜줄 가장 든든한 동아줄이 될 것입니다. 부디 이 글이 묵묵히 가게를 지키는 모든 사장님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