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알려주는 돈이 되는 기록의 기술
제가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바로 “변호사님,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다 맞는데 증명할 방법이 없네요.”입니다. 마음속 천불이 나고, 상대방의 뻔뻔한 거짓말에 밤잠을 설치지만, 안타깝게도 법정은 ‘진실’만큼이나 ‘증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면, 그 억울함은 그저 하소연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은 분쟁이 이미 시작되었을 때, 사장님의 억울함을 돈으로, 그리고 승소로 바꿔줄 ‘기록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이번에도 의뢰인의 비밀 보호를 위해 실제 사례들은 각색했습니다.
오래된 서적들을 취급하는 빈티지 책방을 운영하던 G사장님. 장마철 어느 날, 윗집에서 터진 수도관 때문에 가게 일부가 물에 잠기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문제는 수백 권에 달하는 희귀본 책들이 젖어 버린 것이었죠. G사장님은 밤새워 젖은 책들을 정리하고, 피해 도서 목록과 사진을 찍어 건물주에게 총 1,500만 원가량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건물주는 누수 사실은 인정했지만, G사장님의 청구액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사장님이 주장하는 책값이 맞는지 어떻게 믿습니까? 젖은 책에 포스트잇 붙여 찍은 사진 말고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장님이 밤새 정리한 인건비 까지 청구하는 건 과도합니다.”
[변호사의 시선] G사장님의 억울한 마음은 십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법적 분쟁에서 ‘내 손해’는 내가 직접,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G사장님이 이 싸움에서 확실하게 이기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첫째, 객관적인 피해 목록: 젖은 책 사진과 함께, 각 도서의 구매 영수증이나 온라인 시세를 캡처한 자료, 즉 ‘이 책이 정말 그 가치를 가졌다’는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둘째, 제3자의 견적서: 피해 복구에 필요한 비용을 내가 어림잡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방수 업체나 청소 업체로부터 받은 공식 견적서를 첨부해야 했습니다.
셋째, 피해 상황의 영상 기록: 단순히 피해 결과물(젖은 책)만 찍는 것이 아니라,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순간이나 물에 잠긴 가게 바닥 등 ‘사고가 진행 중인 상황’을 동영상으로 남겨두었다면 훨씬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안타깝게도 ‘내 인건비’나 ‘정신적 피해’ 등은 법원에서 인정받기 매우 어려운 항목입니다. 철저히 객관적인 자료만이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힘이 됩니다.
청년 창업가 H대표는 형제가 공동으로 소유한 건물 1층에 공유주방을 열었습니다. 보증금 3,000만 원은 계약서에 따라 형과 동생에게 각각 1,500만 원씩 송금했죠. 2년 뒤 계약이 끝나 이사를 나가려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형의 사업이 어려워져 지분이 경매로 넘어갔고, 형은 연락 두절이 되었습니다.
H대표는 남은 동생에게 보증금 3,000만 원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의 대답은 싸늘했습니다. “저는 제가 받은 1,500만 원 중 남은 550만 원만 드릴 수 있습니다. 형이 받은 돈까지 저한테 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H대표는 순식간에 보증금 절반 이상을 날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변호사의 시선] 이처럼 임대인이 여러 명일 때, 많은 임차인이 H대표와 같은 실수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법에는 H대표를 지켜줄 강력한 무기가 숨어있습니다. 바로 ‘불가분채무’라는 개념입니다. 판례에 따르면, 여러 명이 공동으로 임대를 준 경우 보증금 반환 의무는 성질상 나눌 수 없는 하나로 봅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임대인 중 한 명이 파산하거나 연락이 끊겨도, 남은 임대인이 보증금 ‘전액’을 반환할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H대표는 법적으로 동생에게 연락 두절된 형의 몫까지 포함한 미반환 보증금 전액을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H대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소송을 통해 자기 돈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분쟁은 피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일단 시작되었다면 이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부터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증거 수집 노하우를 정리해 드립니다.
‘말’을 ‘글’로 바꿔라: 분쟁의 소지가 있는 대화(임대료 조정, 수리 요구 등)는 반드시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하세요. 통화 시에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고 녹음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구두 약속은 법정에서 쉽게 사라집니다.
‘내용증명’을 친구처럼 활용하라: 상대방이 소통을 거부하거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즉시 변호사를 찾기 전에 ‘내용증명’부터 보내세요. 내용증명은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은 없지만, ‘내가 언제, 어떤 주장을 했는지’를 국가(우체국)가 공적으로 증명해주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내 스마트폰을 CCTV로 만들어라: 가게의 문제 상황(누수, 파손, 소음 등)은 무조건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세요. 촬영 날짜와 시간이 자동으로 기록되도록 스마트폰 설정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모든 ‘종이’는 돈이다: 계약서는 물론, 월세를 보낸 이체확인서, 인테리어 공사 영수증, 심지어 가게를 홍보했던 블로그 캡처 화면 까지. 사업과 관련된 모든 문서는 버리지 말고 철저히 보관하세요.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당신의 권리를 증명해 줄지 모릅니다.
억울함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꼼꼼한 기록과 증거 수집이, 미래에 닥칠지 모를 분쟁에서 사장님을 지켜줄 가장 든든한 변호사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