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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데요?” 한마디에 빚더미?

변호사가 말하는 말과 글의 무게

by 산뜻한

안녕하세요, 제가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바로 “변호사님, 정말 억울합니다. 상식적으로 제가 다 맞는데 증명할 방법이 없네요.”입니다. 마음속 천불이 나고, 상대방의 뻔뻔함에 밤잠을 설치지만, 안타깝게도 법의 세계는 ‘진실’만큼이나 ‘객관적인 증거’와 ‘명확한 책임 소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분쟁이 시작되었을 때, 사장님의 억울함을 돈으로, 그리고 승소로 바꿔줄 ‘법률 상식’에 대해 실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리려 합니다.


사례 1. ‘사장님, 특별히 해드릴게요’ 달콤한 제안에 계약금이 증발했습니다


오랜 꿈이었던 작은 가게 오픈을 준비하던 K사장님. 인테리어 업자를 통해 “요즘 자재 값이 비싼데, 저희와 계약하시면 특별히 좋은 조건으로 맞춰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K사장님은 큰마음 먹고 계약금으로 천만 원이 넘는 거액을 송금했습니다. 하지만 입금 바로 다음 날부터, 그 업자는 전화를 피하기 시작하더니 끝내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K사장님은 곧바로 경찰서에 사기죄로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K사장님은 제게 물었습니다. “변호사님, 저 사기꾼을 잡으면 제 돈은 바로 돌려받을 수 있는 거죠?”


[변호사의 시선]

많은 분들이 형사 고소와 민사 배상을 혼동하십니다. K사장님의 질문에 대한 답부터 드리자면,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입니다.


‘형사 처벌’과 ‘피해 회복’은 별개입니다: 형사 고소는 사기꾼이라는 범죄자를 국가가 처벌하는 절차(징역, 벌금 등)입니다. 이 과정에서 범인이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는 한, 국가가 사장님의 돈을 대신 받아주지는 않습니다.


내 돈을 돌려받으려면 ‘민사소송’이 필수입니다: K사장님이 떼인 계약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형사 절차와는 별개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가해자의 사기 행위는 ‘고의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불법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소송은 ‘범인 특정’ 후에: 민사 소송은 돈을 갚아야 할 상대방(피고)의 이름, 주소 등을 알아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장 범인의 인적사항을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경찰의 형사 수사를 통해 사기꾼의 신원이 특정된 후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사례 2. “사장님 제품 때문에 다쳤어요!” 억울한 손해배상 요구를 받았습니다


온라인 스토어를 운영하는 P대표님은 요즘 유행하는 소형 주방가전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P대표님은 해당 제품을 직접 만드는 제조사가 아니라, 유통사의 물건을 받아 재판매하는 판매업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고객으로부터 “제품이 오작동해 손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며 제품값 환불은 물론, 치료비와 위자료로 수십만 원을 배상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P대표님은 수백 개를 팔 동안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기에 억울했지만, 고객의 항의가 거세지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변호사의 시선]

P대표님처럼 제품을 유통·판매만 하는 사장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법이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묻는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제조물 책임’은 원칙적으로 ‘제조업자’에게: 제품의 결함으로 인한 피해는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그 물건을 만들거나 수입한 ‘제조업자’가 책임을 집니다. P대표님과 같은 단순 재판매업자는 제조업자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 고객에게 제조업체의 정보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습니다.


판매자의 기본 책임은 ‘환불’까지: 물론 판매자로서 법적 책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민법은 판매한 물건에 하자가 있을 경우, 판매자에게 ‘하자담보책임’을 묻습니다. 하지만 이 책임의 범위는 기본적으로 제품의 교환이나 전액 환불에 한정됩니다.


‘확대손해’는 판매자의 ‘잘못’이 있을 때만: 고객이 요구한 치료비나 위자료는 법적으로 ‘확대손해’라고 합니다. 우리 법원은 이러한 확대손해에 대해서는 판매자가 제품의 하자를 알았거나, 보관을 잘못하는 등 명백한 ‘귀책사유(잘못)’가 있을 때만 배상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P대표님처럼 통상적인 방법으로 제품을 유통했고 별다른 과실이 없다면, 확대손해에 대한 배상 의무는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의 ‘돈이 되는 법률 상식’ 체크리스트


분쟁은 피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일단 시작되었다면 이겨야 합니다. 오늘 두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핵심 꿀팁을 정리해 드립니다.


형사 고소 ≠ 돈 회수, ‘민사소송’을 기억하세요: 범인을 잡는 것(형사)과 내 돈을 돌려받는 것(민사)은 별개의 절차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제조사’인가 ‘판매자’인가? 내 책임을 명확히 아세요: 내가 직접 만들지 않은 제품을 판다면, 내 책임은 원칙적으로 ‘환불·교환’까지입니다. 제품 결함으로 인한 추가적인 피해(확대손해)는 제조사에 문의하도록 고객에게 명확히 안내하세요.


‘말’을 ‘글’로 바꾸세요: 분쟁의 소지가 있는 모든 대화(거래 제안, 합의, 항의 등)는 반드시 문자, 이메일 등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하세요. 구두 약속은 법정에서 쉽게 사라집니다.


모든 ‘종이’와 ‘파일’은 돈입니다: 계약서는 물론, 송금확인서, 주고받은 메시지 캡처 화면 등 사업과 관련된 모든 기록은 돈이라고 생각하고 철저히 보관하세요. 언젠가 당신의 권리를 증명해 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억울함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꼼꼼한 기록과 법률 상식에 대한 관심이, 미래에 닥칠지 모를 분쟁에서 사장님을 지켜줄 가장 든든한 변호사가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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