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땐 된다더니..."

말 바꾼 상대방, 변호사가 알려주는 대처법

by 산뜻한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분명히 좋게 이야기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서니 딴소리하는 상대방 때문에 속 터지는 경험 말입니다. 구두 약속,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분쟁이 생겼을 때 내 책임은 어디까지일까요? 오늘은 많은 분들이 겪는 ‘말 바꾸기’와 ‘책임 범위’ 문제, 실제 상담 사례를 각색한 이야기로 속 시원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사례 1. "반품 배송비는 제가 낼게요"라더니, 박살 난 물건만 돌아왔다?


수제 가구를 만들어 파는 L사장님. 지방에 사는 한 고객에게 맞춤형 책상을 정성껏 만들어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고객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 요청이 왔죠. L사장님은 왕복 배송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고객과 좋게 해결하기 위해 통화로 "그럼 반품 배송비는 제가 부담할 테니, 꼼꼼하게 포장해서 보내주세요"라고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고객은 갑자기 말을 바꿨습니다. "그런 합의 한 적 없다. 제품값 100% 환불해달라"며 분쟁조정까지 신청한 겁니다. 결국 L사장님은 반품을 받았지만, 황당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충 포장해서 보낸 탓에 책상 모서리는 찌그러지고 다리는 긁혀 상품 가치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의 시선]

L사장님은 고객의 변심과 파손된 제품 때문에 이중으로 손해를 입을 억울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럴 때 법은 사장님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요?


‘구두 합의’도 엄연한 계약입니다: 많은 분들이 계약서는 꼭 써야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L사장님과 고객처럼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분쟁을 끝내기로 약속했다면, 통화로 한 ‘구두 합의’만으로도 법적으로 유효한 '화해 계약'이 성립됩니다. 일단 화해 계약이 맺어지면, 양쪽 모두 그 내용에 따라야 할 새로운 의무가 생깁니다.


문제는 ‘입증 책임’: 하지만 구두 합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이 오리발을 내밀었을 때 ‘그런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쪽(L사장님)이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통화 녹음이나, 합의 내용을 전제로 한 문자 메시지 같은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면 법정에서 인정을 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부실한 반품’은 구매자의 책임: 설령 합의를 증명하지 못해 환불을 다 해줘야 하더라도, 파손된 제품에 대한 책임은 별개입니다. 구매자는 물건을 반품할 때 상식적인 수준의 주의를 기울여 포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어겨 물건이 파손되었다면, L사장님은 민사상 '불법행위'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사례 2. "사장님 음식 먹고 탈 났어요!" 어디까지 배상해줘야 할까?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J사장님. 한 손님이 식사 후 배탈이 났다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진단서를 보니 식당 음식이 원인인 것이 명백했죠. J사장님은 즉시 사과하고 보험 처리를 통해 병원 진료비를 모두 해결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손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병원 가기 전에 본인이 사 먹은 고가의 약값 10여만 원을 추가로 요구했습니다. 보험사에서는 "의사 처방 없는 약은 보험 처리가 안 된다"고 하는데, 이 돈을 J사장님이 물어줘야 하는 걸까요?


[변호사의 시선]

내 가게에서 일어난 일이니 전부 책임져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우시죠. 하지만 법적인 책임에는 정해진 범위가 있습니다.


보험 처리와 법적 책임은 별개: 우선, 보험사가 보상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사장님의 법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으로 인해 손님이 피해를 본 사실이 명백하다면, 식당 주인으로서 민법상 손해배상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의 범위는 ‘통상적인 손해’까지: 법에서 인정하는 손해배상의 범위는 일반적으로 ‘통상적인 손해’, 즉 그 사건으로 인해 보통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범위의 손해를 말합니다. 배탈이 났을 때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사는 것은 통상적인 손해에 해당합니다.


소송의 ‘실익’을 따져봐야: 하지만 손님이 의사 처방 없이 임의로 구매한 비싼 약값까지 모두 배상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는 법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10여만 원의 돈을 아끼기 위해 소송까지 가는 것은 시간과 비용 면에서 ‘실익’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경우 법적 다툼으로 가기보다는, 손님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원만하게 합의하고 분쟁을 조기에 끝내는 것이 더 현명한 해결책일 수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좋은데요?” 한마디에 빚더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