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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비 Jul 13. 2024

광주의 독립서점 투어

광주, 선유도, 군산의 초여름 열흘 3

여행지의 독립서점 방문은, 언젠가부터 우리의 여행에서 매우 중요한 일정으로 자리 잡았다. 혹시나 해서 집에 있는 책을 가져가지만, 여행지에서 산 책을 읽는 게 훨씬 즐겁다. 이번 여행에선 어떤 책들을 만나게 될까? 블라인드북을 집어들 때의 두근두근한 마음 같다고나 할까?

숙소에 짐을 부려놓자마자 우리의 첫 번째 일정은, 그래서 가장 가까운 독립서점 찾아가기였다.

동명동에는 여러 개의 독립서점이 검색되는데, 첫 번째 목적지는 <동명책방, 꽃이피다>.  저녁식사를 예약한 '미미원' 근처라서다. 독립서점들은 오래된 건물 벽에 붙어있는 감각적인 포스터 같은 이미지이기 일쑤인데, 이곳은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3층 겨자색 건물을 통으로 쓰고 있었다. 서점지기는 대략 동년배 느낌의 멋진 분으로, 무엇을 주문해도 척척 내어줄 것 같은 연륜이 느껴졌다.

"전라도가 배경인 장편소설을 추천받고 싶은데요."

주문을 넣었다. 전라도여야 합니까? 네. 그렇다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니다, 왠지 이건 읽었을 것 같다. 맞죠? 네, 바로 일주일 전에 읽었습니다.(대답하고 나서 생각했다 : 아깝다, 전라도 사투리가 매력적인 그 책을 전라도에 와서 읽었다면 감동이 배가 되었을 텐데...)

장편소설이어야 하고요? 에세이는 안되고?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7월 말부터 부산 퀴어문화 협동조합 홍예당에서 소설가 김비님과 함께 장편소설 쓰기 수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장편소설 분석도 수업 내용에 있어서, 에세이와 단편집 위주의 독서습관을 이제부터 고쳐야 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장편소설을 많이 읽어보겠다 다짐했던 터였다.

막간을 이용한 광고시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신청은 홍예당 인스타에서

서점지기님은 이것저것 추천목록을 나열해 주셨고, 하나하나 휘리릭 넘겨보며 '책의 기운'을 느껴보던 나는 결국 백수린의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를 선택했다. 소설 배경 중 독일이 있어서다. 지금 내가 구상하고 있는 작품도 독일 관련 내용이 좀 있다. 꽉 막힌 아이디어 뱅크를 털어줄 조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오스씨의 픽은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가다(저자: 가와우치 아리오)>. 

이번에도 미술 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이다.


둘째 날은 ACC에서 전시회를 관람하고 근처에 있는 <책과 생활>에 갔다. 조르조 데 키리코의 회랑그림에 나올 법한 책장이 인상적인 서점이다. 전날 산 백수린 장편소설을 열심히 읽고 있어서, 이번에는 조금 가벼운 걸 골라볼까? 하는 마음에 둘러보다가 꽂힌 건 하루키의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였다. 책이 너무 예뻤다. 츄르를 들고 고양이에 얼굴을 묻은 남자(표지 그림)를 그냥 지나칠 집사가 있을까? 내용은 또 어떻고? 클래식인데, LP만 리뷰한단다. 참으로 하루키스럽다.  '스포티파이 하루키 플레이리스트' 같은 건 하루키가 아니야.

난 사실 하루키를 좋아하지도 않고, 완독 한 책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너무 친근하다.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인데 인기스타로 오래 살아남아서 마치 나의 생애에 항상 옆에 있었던 것 같은?

과감히 하루키를 집어 들었다. 내 생애 첫 하루키. 가격이 25,000원. 헉!  

'괜찮아, 책이 예쁘니까. 이 정도면 북디자이너들 보너스 받아가야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오스씨가 뭘 골랐나 보았다.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이라는 양장본 책. 가격은 33,000원. 사다 놓고 정작 보지도 않는 시공디스커버리 도서를 사이즈만 키워놓은 거 같은(출판사, 작가님 죄송) 책이 뭐 이렇게 비싸!

"꼭 사야 돼? 글자 빽빽해서 읽을 수나 있겠어?"

그의 눈에는 반드시 읽어내겠다는 다짐이 넘실대었다. 사라, 사. 흥, 내 건 2권도 있다고! 다 읽으면 노란 표지의 2권도 사서 세트로 예쁘게 진열해 둬야지! 내가 이겼다!

뭐, 그랬답니다.

서점지기는 씩씩한 목소리로 결제를 하고 음료 주문을 받았는데, 이상하게 기가 죽어서 "책 좀 추천...."을 하지 못했다. 왜일까? 궁금하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지만, 어떤 공간에 가면 나의 생물학적 특징이 도드라지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느낌이었을까?

대신 서점은 책 읽기에 아늑해서 꽤 오랫동안 머물며 하루키를 즐겼다.

셋째 날은 양림문화역사마을에 갔다. 이곳에는 <러브앤프리>라는 히피스러운 이름의 작은 독립서점이 있다. 이리저리 들러보다가 표지에 김연수 작가의 얼굴을 크게 넣은 <디에센셜>과 마주쳤다.

'이렇게 귀엽게 생겼다고?'

새초롬한 눈빛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는데, 예능인 신동엽 특유의 장난기있는 표정도 보이고, 어찌보면 모나리자 같은 느낌까지, 다채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표정이다. 사진 진짜 잘 찍었다. 귀여운데 그게 다가 아닐 것 같고, 미스터리 한 스토리를 예고하는 느낌이어서, 일단 책을 넘겨보고 싶게 만드는 표지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책은 딱 한 권 가지고 있었지만, 읽은 적은 없다. 무슨 이야기일까.

이십 년도 더 전에 아마추어 작가들의 소설집을 만들기로 하고, 북디자이너와 함께 레퍼런스 할 거 없나 서점을 훑은 적이 있었다. 그때 선택된 책이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이었다. 제목은 기억도 안 난다. 최대한 티 안 나게 표지를 베끼고 싶었는데, 결국엔 표지로 사용할 종이 종류와 전체적인 배치만 땄다. 북디자이너도 작가들만큼 아마추어여서 레퍼런스조차 할 능력이 없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은 당연히, 읽지 않았다. 많은 검은 역사 중 하나다.

그때의 마음의 빚이 떠올라서 이거, 사야겠다, 생각하고 책을 집어 들었는데, 어랏? 하드커버 책 뒤가 축축했다. 천장을 바라보니 어딘가에서 시작된 물이 벽을 타고 조금씩 흘러와 매대를 촉촉하게 적셔가는 중이었다. 

김연수씨의 책은 하드커버 덕인지 겉보기엔 멀쩡했는데, 옆에 있던 책은 이미 퉁퉁 부풀어 오르는 단계까지 나아간 듯했다. 아이고, 어쩌나. 119 부르듯 다급하게 서점지기를 불렀다.

서점지기가 수습을 하는 동안 책방을 거닐었는데, 이상하게 당기는 책이 없었다. 재난을 겪은 이에 대한 위로 겸, 김연수 작가에게 보은도 할 겸, '물에 젖은 그 책'을 달라고 했다. 서점지기는 내 말을 오해했는지, 창고에 가서 새 책을 굳이 또 꺼내왔다.  그냥 살까 하다가 넘겨보기라도 하자는 생각에 슬슬 책장을 넘겼는데, 아... 시가 껴있군요.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장편소설도 시에 대한 내용 같고... 시는, 요즘 멀리하는 중이라서, 속으로 변명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결국 조용히 내려놓고, 다급하게 카운터 근처에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이번 여행의 테마가 예상 뒤엎기여서 그런가, 정말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책방 투어가 되고 있었다.


<여름문구사>는 우리가 2년 전 한달살이를 했던 제주 세화에서 문구점을 하는 작가의 에세이다. 비밀 다이어리처럼 직접 그린 그림과 손글씨로 꾸며져 있다. 우리가 그 동네를 자주 다녔기 때문에, 어쩌면 갔을 수도 있다.

한 권 더! 조기 은퇴한 교육자 부부가 자신들의 은퇴과정을 리얼하게 묘사한 <우아한 가난뱅이>도 골랐다. 내년이면 은퇴하는 오스씨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서였다. 오스씨의 반응은 대충, 별관심 없음, 어쩌라고...  인듯했다.

본인은 F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T 아냐?

계산을 마치고 서점을 떠나려는데,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었다. 작년 속초 동아서점(브런치에도 소개 : https://brunch.co.kr/@sunwoobi/103)에서 전시회를 했던 <태양왕 수바>의 이지은 작가의 캐릭터들을 총망라한 스티커세트를 파는 게 아닌가! 그것도 다섯 개에 7천 원이라는 혜자스러운 가격이었다. 솔직히 책 보다 스티커 구매한 게 더 뿌듯했다는 후기.

물론 책 내용들도 너무 즐겁고 흥미로웠습니다, 작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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