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뤌기(2)
4.
그 수용복 바지를 샀을 때, 꽤 흡족했었다.
물놀이용이지만 그냥 거리로 나와 걸어도 아무도 수영복이라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멀쩡하게 생긴 디자인이었다. 조금 무거운 재질이긴 했지만, 해수욕장에 갈 때 집에서부터 입고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점수를 따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주머니까지 넉넉해서, 폰을 넣고 다니기에도 참 좋았는데…
그게 문제였다.
남도 여행 중, 리조트 풀장에서 한참을 신나게 물장구치고 놀다 나왔는데, 주머니에서 뭔가 불쾌한 감촉이 느껴졌다.
손을 넣어보니, 거기에는…
내 아이폰이 있었다.
뇌가 순간 정지했다가, 곧바로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괜찮겠지 뭐. 요즘 아이폰은 다 방수라며.”
폰을 꺼내 켜보니, 오… 작동한다!
화면도 잘 나오고, 터치도 잘 되고, 앱도 뜨고.
“와, 진짜 방수 잘 된다. 아이폰 칭찬해~”
혼잣말을 뱉으며 안도의 숨을 쉬었는데… 그건 너무 이른 평결이었다.
잠시 후, 다시 확인해보니 화면이 까맣게 죽어 있었다.
그제야 다급해진 나는 오스씨의 폰을 빌려 ‘물에 빠진 스마트폰 응급처치법’을 검색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전원 끄기. 그리고 배터리 분리.
하지만 아이폰은 배터리를 분리할 수 없고, 전원도… 이미 이것저것 눌러가며 다 켜봤다.
“바짝 말리면 돌아오기도 한대.”
오스씨가 조심스럽게 희망을 건넸지만, 나는 알았다.
이건 돌아올 아이가 아니다.
그렇게, 내 아이폰 11 프로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물에서, 조용히.
남은 여행은 ‘폰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길을 찾을 때, 사진을 찍을 때도 뭔가 스텝이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내 손이 무언가를 찾아 계속 허공을 더듬는 기분.
생각해보니 여행 직전, 신세계 백화점 갤럭시 팝업 행사장에 들어가 “이 다음 폰은 무조건 갤럭시다!” 하고 감탄했던 게 화근이었을지도. 당시 갤럭시로 찍은 사진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넋을 잃고 감탄하며 호들갑을 떨었었지. 마음 한쪽에는,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으로 이어지는 감옥에서 탈옥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말이지.
혹시 너, 그런 내 맘을 눈치채고 있었던 거니?
그래서… 자살한 거니?
폰의 사망을 받아들이자마자, 곧장 갤럭시를 사려고 공식 판매 사이트에 들어갔다.
하지만 눈독 들이던 모델은 아직 출시 전이었다. 이전 모델을 사긴 싫고, 그렇다고 출시까지 기다리기도 애매했다.
잠시 고민하다 결국, 다시 아이폰을 선택했다.
익숙함은 늘 안정감을 주고, 급할 때 우리는 모험보다 안정을 택한다... 는 변명을 늘어놓은 채.
곧 아이폰 17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어쩐지 새 폰을 샀는데도 중고폰을 산 기분이 든다.
씁쓸해.
5.
제임스 건의 슈퍼맨을 보고 나왔다.
딱 첫인상은 이랬다.
“음, 어딘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느낌이 나네.”
그 특유의 잔망스러운 유머와 장면 곳곳에 숨어 있는 깨알 같은 연출, 전작들과는 다른 감각이 확실히 존재했다.
그래서 좋았다. 그 점은 분명히 칭찬할 만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슈퍼맨이라는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 여전히 어색한 감각이 남았다.
그 불편함은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했고, 어쩌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나는 히어로 영화를 볼 때 눈으로는 ‘액션’을 즐기고, 마음으로는 ‘성장’을 기대한다.
화려한 전투와 폭발은 일종의 디저트고, 결국 남는 것은 ‘이 캐릭터가 얼마나 자랐는가’다.
그런데 슈퍼맨은 이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
일단, 그는 너무 완벽하다. 말하자면, 사기캐다.
하늘을 날고, 레이저를 쏘고, 주먹 한 번에 건물이 무너진다. 렉스 루더의 걱정처럼 그가 갑자기 미쳐 날뛴다면, 그를 막을 존재가 지구에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황이 필요해진다.
크립토나이트라든가, 도망가지 않는 시민들, 또는 “그런 식으로 (거칠게/니 맘대로) 싸우지 마!” 하고 말리는 사랑하는 사람들 말이다.
결국 그의 싸움은 늘 어디엔가 움츠려 있다. 마치 있는 힘을 다 쓰면 지구가 부서질까봐, 조심조심 싸우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정말 보고 싶은 통쾌한 액션은 늘 반쯤 덜 익은 상태로 끝나버린다.
이번 영화도 다르지 않았다.
눈에서 나오는 그 강력한 레이저 한 방이면 될 것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데, 슈퍼맨은 그 기술을 끝까지 아껴둔다.
왜 그럴까? 안 써도 될 만큼 강해서? 아니면 써버리면 영화가 너무 빨리 끝날까봐?
어떤 이유에서든, 그런 태도는 결국 관객을 피로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 ‘피로’의 원인이 대개는 도망가지 않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시민들이라는 사실이 더 문제다. 결국 관객은 착한 시민들에게 짜증을 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진다.
그렇다면, 육체 대신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기대해볼 수 있을까?
아쉽게도, 거기서도 기대를 저버린다.
슈퍼맨은 여전히 부모의 품에 안겨 있다.
지구에서의 부모, 고향 행성의 부모, 언제나 그 중심에는 ‘가족’이 있고, 그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슈퍼히어로?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큰 이야기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사회, 대의, 혹은 공동체를 향한 고민과 결단.
그것이 진짜 성장 서사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나온 “마사” 사건을 기억하는가.
그 순간은 웃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캐릭터가 얼마나 단선적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2020년대에 살고 있다.
아직도 농사짓는 시골 부모 이야기로 감정을 끌어내려는 서사라면, 이제는 한국 관객도 더 이상 쉽게 감동받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차라리 렉스 루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더 흥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배트맨이 식상하다면 조커는 어떠냐! 며 패기를 부린 것처럼.
슈퍼맨이 너무 뻔하고, 이름부터 과장된 완벽함으로 가득하다면, 이제는 이 캐릭터 자체를 잠시 내려놓을 때가 아닐까 싶다.
슈퍼히어로 장르가 진화하고 있는 지금, 슈퍼맨만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다음번엔 정말, 제대로 싸워주는 슈퍼맨을 보고 싶다.
제대로 성장하고, 스스로의 경계를 넘어서는, 그런 캐릭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