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단편극장 8
공포라는 감정은 너무 앞서간 걸지도 몰랐다. 갇힌 공간에서 누군가를 만났다면, 오히려 반가워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낯선 존재가 내 은신처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동료라는 생각보다 먼저 본능적인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시체’라는 단어였다. 이렇게 지독하게 차가운 공간 속에서 아무 말도 없이 널브러져 있는 존재라면, 살아 있는 사람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렸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공포에 못 이겨 소변을 조금 지리고 말았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돌았다. 어떻게든 시체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것.
몸을 움직여 시체로부터 떨어져 보려 했지만, 30센티미터도 가지 못한 채 벽에 부딪쳤다. 이 좁은 공간에서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렸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헐떡거림만 반복되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문을 두드렸다. 혹시라도 밖에 사람이 있다면 열어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러나 곧 얼어붙은 손마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번엔 손가락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에서 참기 힘든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문에서 몸을 떼었고, 그 충격으로 다시 그 존재에게 손이 닿았다.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거둬들였지만, 그 순간 또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숨소리 같기도 하고, 미세한 몸부림 같기도 했다. 어떤 것이든 확실한 건 단 하나였다.
그것은 살아 있었다.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다시 그 존재를 더듬었다. 옷 밖으로 나온 손이 잡혔고, 얼굴이 만져졌다. 가슴 부분에 손을 올리자 그것이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손목의 맥을 짚어봐야 했지만, 내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심장이 뛰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
나는 그의 셔츠 단추를 마구 뜯어냈다. 차갑고 얼음처럼 식은 살갗에 손을 올리자 몸이 본능적으로 움찔거렸다. 그러나 아주 느리게나마 심장이 뛰고 있었다. 가느다란 박동이 손바닥 끝에 전해졌고, 안도감이 몸속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다. 이 얼어붙은 공간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렇게도 큰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남자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남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숨소리가 조금 또렷해진 것 같긴 했지만, 여전히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엔 좀 더 세게 흔들어보았다.
“일어나요! 이봐요, 정신 좀 차려요!”
아무리 흔들어도 반응이 없자, 이젠 지쳐버렸다. 차라리 의식을 잃은 채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발작을 일으켰을 테니까.
나는 그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기절해 있을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 세웠다. 벽에 기대게 한 후, 나 역시 같은 자세로 앉아 다리와 손가락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 했다. 하지만 벽에 등을 붙이자 차가운 냉기가 식은땀으로 젖은 살을 파고들었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차가웠다. 결국 나는 온기를 얻기 위해 그의 몸에 조심스레 기대었다.
처음엔 단지 체온을 나누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지 못한 감정이 머릿속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다른 남자의 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느껴본 적이 없었다. 곰보 얼굴은 세 살 무렵부터 나를 따라다닌 불행이었다. 중학생 때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내 얼굴은 절망에 가까운 짐이었다. 아무리 성적으로 개방적인 아이들이라도 ‘서로 자위하며 논다’는 단순한 놀이조차 나와는 하지 않았다. 게이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 같아도 나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술값을 잘 내는 ‘괜찮은 손님’이라 부르다가도, 내가 취해서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말은 순식간에 거둬들였다. 친구라는 단어는 내 사전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나는 사람을 싫어했고, 사람도 나를 싫어했다.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나와 섹스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남자가 내 곁에 있었다.
나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큰 기회가 눈앞에 펼쳐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타락했단 말인가?’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지만, 이미 내 몸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 그의 맨살을 만졌던 손가락 끝에서 느껴진 감촉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점점 욕망이 고통처럼 번져갔다. 나는 그 감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그를 흔들었다.
“일어나요! 제발 정신 좀 차려요!”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철저히 무방비 상태라는 사실만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나는 다시 그의 가슴을 만졌다. 이전보다 확실히 따뜻해져 있었다. 얼어붙었던 그의 몸에 체온이 돌고 있었고, 내 몸 역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욕망의 열기가 이 좁은 공간 전체를 뒤덮는 것 같았다.
그의 복부는 군살 하나 없이 탄탄했다. 영수도 이랬을 것이다. 비록 만져본 적은 없지만, 영수의 몸 역시 이렇게 단단했을 것이다. 남자의 배꼽 아래에는 거친 털이 무성했다. 나는 손가락을 조심스레 움직여 그 털을 어루만졌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현기증에 휩싸였다.
손끝에서 시작된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갔다. 땀이 솟구쳤고, 이전처럼 식은땀이 아니라 뜨겁고 진한 열기가 몸을 타고 흘렀다. 나는 손길을 멈추지 못한 채 그의 몸을 더듬어 내려갔다. 혁대에서 손이 멈췄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과감히 벨트를 풀었고, 쇠붙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좁은 공간을 울렸다. 나에게 그 소리는 심벌즈처럼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이어지는 지퍼 소리는,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 작은북의 진동 같았다.
나는 조심스레 그의 팬티 위를 손끝으로 눌렀다. 그 감각은 신경이 풀릴 때의 전율과 비슷했다. 세포 하나하나가 미친 듯이 날뛰었고,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이 등줄기를 따라 떨어졌다.
‘멈춰야 해.’
머리 한구석에서 이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미약한 저항이었다. 나는 더 이상 멈추지 못했다. 그의 바지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순간, 바지주머니에서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라이터였다. 시중에서 흔히 파는 불티나. 아무런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돌을 굴렸다. 순간 불꽃이 피어오르며 어둠을 갈랐다. 수십 분 동안 칠흑 같은 공간에 익숙해진 눈에는 그 작은 불빛조차 너무 버거웠다. 나는 급히 라이터를 껐다. 그러나 곧 다시 불을 붙였다. 지금 내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 그리고 문이 어떤 구조인지 알아야만 했다.
작은 불빛이 주변을 비추자, 낯익은 형태들이 서서히 드러났다. 칸막이가 사라진 채 속이 텅 빈 커다란 냉장고였다. 그것도 가정용이 아닌, 영업장에서 쓰는 대형 냉장고였다. 내가 들어 있는 공간은 커다란 고기를 보관하는 칸처럼 보였다. 머리 위 철망 위에는 검은 비닐봉지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고, 그 속에는 무언가가 들어 있는 듯했다. 지금 내가 숨어 있는 곳은 길가에 버려진 고철이 아니었다. 여전히 사용 중인, 냉기를 뿜어내는 살아 있는 냉장고였다.
‘내가 왜 여기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지금 더 시급한 일은 따로 있었다. 옆에 누워 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나는 불빛을 그의 쪽으로 가져갔다. 어른거리는 불빛 너머로,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손에서 라이터가 떨어졌다. 숨이 허파 깊숙이 차올랐지만, 비명은 목구멍을 지나지 못했다. 눈앞의 얼굴은 영수였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스스로를 부정하며 바닥을 더듬어 라이터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얼굴 가까이에 불을 들이댔다. 오해가 아니었다. 영수였다. 피로 얼룩진 그의 얼굴, 벗겨진 셔츠에 묻은 핏자국까지 모두가 진짜였다. 나는 다시 한번 라이터를 떨어뜨렸다. 그렇게 몇 번을 되풀이하다가야 비로소, 술에 취해 잃어버렸던 기억의 파편들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기억은 테이블 밑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술에 취해 그곳에 기어들어가 있었다. 손님들이 수군거렸고, 마담은 나를 끌어내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바닥에는 깨진 술잔과 쏟아진 양주병 조각이 널려 있었다. 결국 영수가 다가와 고함을 질렀다.
“정말 이러실 거예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그 말이 심장을 후벼 팠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것도 죄야? 이런 얼굴이면 사랑도 하면 안 되냐고!”
그의 표정은 냉소로 얼어붙어 있었다.
“계속 이러면 경찰에 신고한다? 이게 어디 와서 행패야.”
그 말이 결정타였다. 테이블 밑이 더 이상 내 안식처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계산할게요. 미안합니다.”
옷을 챙겨 카운터로 걸어갔다. 영수와 마담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들은 경계의 눈으로 날 보면서도 계산이라는 말에 카운터로 몸을 움직였다. 그때 난 카운터 뒤가 주방이라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주방엔 가스 밸브가 있었다. 그다음부턴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나는 카운터를 뛰어넘다 넘어졌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홀 안을 채웠다. 영수가 달려왔다. 나는 주방문을 열고 가스 밸브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연결 튜브를 뜯어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악취가 코를 찔렀다.
문이 열리고 영수가 들어왔다. 나는 손에 잡히는 것을 휘둘렀다. 프라이팬이었다. 영수가 쓰러졌다. 이어 마담이 냄새를 맡고 황급히 도망쳤다. 나는 미친 듯이 웃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날 놀리던 나쁜 녀석들, 날 봉으로만 생각하던 모든 악당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기뻤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그때 머리가 멍해지고 눈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가스가 허파 깊숙이 차올랐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무릎이 꺾였다. 영수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이 두려웠다. 욕을 퍼붓고 나를 저주할 것만 같았다. 나는 무릎으로 기어가 프라이팬을 다시 휘둘렀다. 피가 튀었고, 머리에서 뇌수가 흘러나왔다. 멈추지 않았다. 피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뇌수가 흐를 때까지 나는 휘둘렀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몸을 뉘일 공간이 필요했다. 퀴퀴한 냄새와 먼지가 감싸는, 누구도 나를 찾지 못할 은신처. 그때 눈앞에 커다란 냉장고가 들어왔다. 내 몸 하나쯤은 거뜬히 들어갈 만한 공간이었다. 어쩌면 한 명을 더 수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영수를 끌어다 냉장고 안에 넣고, 그 옆에 몸을 구겨 넣었다.
문이 닫히자마자 폭발음이 귀를 찢었다. 냉장고 안에서 우리의 몸이 튀어 올랐다. 그게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그런 거였구나. 그런 거였어.”
난 미친 듯이 웃었다. 나에게 닥친 행운이 믿어지지 않았다. 가스 폭발로 밖의 세상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한 가지 있었다. 평생 나를 괴롭히던 폐소애호증이 내 목숨을 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건 영수가 죽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분명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건 무엇이란 말인가?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가락조차 까딱할 수 없을 만큼 공포가 엄습했다. 영수가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그의 머리에서 뇌수가 솟구치는 장면을 똑똑히 봤다. 그런 상태에서 살아날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들리는 이 소리는 대체 무엇인가.
라이터를 다시 켜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피와 뇌수로 범벅이 된 그의 시체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옆에서 무언가를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가래 섞인 숨소리가 함께 들렸다. 무언가가 점점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기적처럼 문이 열렸다.
"여기도 시체 두 구 있습니다."
말과 동시에 다시 문이 닫혔다. 여기 사람 있어요,라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놀라 정지상태로 입만 벌리고 있었다.
완벽한 어둠이 다시 공간을 채웠다. 시체의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는 이제 턱 밑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방금 전 문이 열렸을 때 보았던 광경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창백한 조명 아래, 검게 탄 시체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시체를 커다란 흰 백에 밀어 넣고 있었다. 이 지옥이 현실임을 설명해 주는 풍경이었다.
냉장고 안을 휘몰아치던 냉기에 이윽고 내 머리 속도 얼기 시작했다. 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두 번 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난 의식을 잃었다.
* 처음 소설을 습작할 때는 재미있게 읽은 소설의 배경을 가져와서 새로운 창작을 하거나 주인공들을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바꿔보곤 했다. 이 소설도 그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너무 오래 전 작품이라 원작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재미로 봐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