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장줄리앙의 <여전히 거기> 전시가 진행중이고, 마침 벚꽃 인파도 좀 수그러들었다 해서 굳이 1박 2일을 욕심냈다.
부산에서 경주야 1시간 거리고, 웬만한 명소는 다 다녀봤다 여겼는데 유튜브를 보니 아직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들이 남아있었다.
미술관은 다음날 마지막 일정으로 잡아두고 경주 외곽부터 보문단지 방향으로 흘러가보기로 했다.
첫 번째 목표는 감포에서 벚꽃명소로 유명한 감포정이다.
감포로 가려면 부산-울산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경부고속도로에 비해 한가한 도로라 오토 쿠르즈 100으로 맞춰두고 여유 있게 주행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감포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대림물회로 갔다.
가자미로 유명한 감포라 홀서빙하는 분께 가자미 물회인가 물었더니 도다리일걸요?라는 의문문으로 답변을 받았다.
가자미나 도다리나 거기서 거기.
5가지 이상의 과일로 맛을 냈다는 육수물회가 맛있었다.
감포의 바다는 바람을 한껏 품어 동해의 본질에 충실했다고나 할까?
파도가 꽤 풍성했다.
백사장은... 광안리 주민의 눈에 찰 정도는 아니어서 곧바로 감포정에 올랐다.
나름 멋진 벚꽃터널을 이루었으나, 이미 꽃잎의 핑크보다 새 잎의 연두가 더 도드라진 상황.
그럼에도 호수와 바다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감포정 풍경은 감탄을 자아냈다.
감포를 떠나 경주로 돌아오는 길에 기림사와 골굴사에 들렀다.
신앙심은 1도 없지만, 법당에 들어가 불상에 절을 하고 잠깐 명상 시간을 갖는다.
꼬집어 설명할 순 없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근질근질했던 마음이 시원해진다.
기림사는 정원이 아름답기로 소문났지만, 아기자기한 볼거리도 많다.
사천왕상의 얼굴이 엥? 할 만큼 귀엽고, 뜨게 모자를 쓰고 뜨게 복전함을 들고 있는 동자승의 은근한 미소도 재미있다.
거기다 사찰에 뜬금없이 산타등이라니.
처음엔 뭐지 싶다가도 금방 미소를 흘리게 된다.
귀여움으로 몽땅 포용해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골굴사는 매일 3시에 진행하는 선무도 공연이 멋지다.
아이돌 안무를 볼 때도 칼 각보다는 몸의 선을 더 눈여겨보는 스타일인데(그래서 방탄소년단 최애는 지민쒸!), 선무도를 선보이는 승려들의 손과 발이 막힘없이 흘러 다녔다.
숙소는 보문단지의 더케이호텔.
침실에서 보문호수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수십 번 본 풍경, 잠자리는 모조건 가성비다.
벚꽃 시즌 보문단지는 어디로 발길을 돌려도 실망할 일이 없다.
꽃들이 죄다 아스팔트 귀퉁이로 쓸려 뭉쳐져 있었지만 가지는 여전히 붉은 기운을 품고 있어 꽃놀이 분위기를 느끼기엔 무리가 없었다.
저녁은 숙소 옆 시네큐 이층 대게 집에서 해결했다.
우리가 첫번째 저녁 손님이어선지 주인이 적극적으로 말을 붙여왔다.
가게를 연 지 일주일차라 했고, 부산 해운대 출신에, 우리도 종종 가곤 했던 오륙도 근처 커다란 오리집에서 십 년 근무했다는 인연들을 이리저리 엮어서 흥을 돋궜지만, 우리는 그가 권하는 질량보다 500g 모자라게 주문했다.
"남자 둘이 먹으려면 아무래도 이 정도는 시키셔야..."
대게집에 갈 때마다 듣는 소리인데, 경험상 그보다 500g 적게 시켜야 마지막 살 하나까지 냠냠 발라먹고, 게딱지 비빔밥까지 홍홍 먹을 수 있다.
20% 세일을 하는데도, 안타깝게도 다 먹고 나갈 때까지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맛있었으니까 앞으로 손님들이 늘 거예요, 사장님!
요걸루 고향사람인데 홍보 좀 해주세요! 라는 말에 알겠어요, 했던 약속 완수!
더케이호텔의 자랑이라는 온천도 즐기고
야간 벚꽃터널 산책도 하고 나니
완전히 뻗어버렸고,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조식대신 (경주에 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흡입하는) 교리김밥을 먹기로 했다.
오픈 시간이 아침 8시 30분인데, 40분에 도착했더니 벌써 부지런한 손님들로 줄이...
우리처럼 교리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하려는 식객이 많았다.
김밥 한 줄에 5500원, 두 줄 시키고 7500원짜리 국수 하나를 나눠먹었다.
"역시 본점이 더 맛있다."
보문점에서 먹을 때마다 하는 소리인데, 다음에 보문단지에서 자면 또 여기에 올 거다.
내 입엔, 제일 맛없는 지점의 교리김밥이라도 다른 체인점의 제일 비싼 김밥보단 맛있다.
마지막 일정은 지금까지 쭉 소개해드렸던 장 줄리앙의 전시회다.
생각 이상으로 귀여웠고, 꺅! 귀여웠으며, 이히히힝 귀염뽀짝했다.
나이 먹어도 계속 귀여울 수 있는 능력에 연신 감탄했다.
프랑스 남부 출신이어서일까? 화목한 가족에서 자라서일까? 세인트마틴 출신이어서일까?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이 많아서일까? 대학 때 만난 여자친구랑 십년간 사귀다 결혼해서일까? 아이를 둘이나 길러서일까? 100권 가량의 스케치북을 꽉 채울 정도의 노력파여서일까?
그의 귀여움에는 역사와 주변인과 자료가 참으로 풍부하다.
어리지만, 나의 롤모델.
나도 죽는 그 순간까지 귀여움을 놓지 말아야지, 귀여움을 갈고닦아야지, 결심하게 만드는 멋진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