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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Jan 28. 2021

주인의식(ownership)에 대하여

- 일상 속 인사이트


   회사 문 밖을 나서니 차가운 겨울바람이 노동의 스트레스를 흩날려준다. 아침의 쌀쌀한 바람과는 달리 저녁의 바람은 시원하다. 출근길과 퇴근길의 온도차가 미묘하게 다름을 느낀다.


   슬픔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슬픔을 견딜 수 있듯이, 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노동의 무게를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같은 부서 선생님과 퇴근길을 걸으며 오늘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요 근래 며칠 동안 내 마음 상태를 지배하던 감정과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한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왜 일을 하는데 보람이 없을까요?"



   내 말을 듣자마자 선생님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이 나지막이 웃으며 내게 답했다.



"주인의식이 없어서 그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일을 하고도 보람이 없는 이유, 그것은 주인의식이 없어서였다.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었다. 내 일에 대한 애착이 없는데 어떻게 보람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그럼 내가 애착을 가지려 노력하고, 의식을 일깨워 주인처럼 일하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다 문득, 현대 사회와 직장 내 현실에서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불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주인의식에 대하여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브런치에 '주인의식'이라 검색하고 여러 글을 찾아 읽어보았다.


   대략 20편 정도의 글을 읽어보았다. 주인의식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은 주인의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주인의식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등등 다양한 글들이 있었다. 하나하나 읽다 보니, 역시나 주인의식에 대한 논쟁은 '주인의식은 가질 수 있다'와 '주인의식은 가질 수 없다'라는 두 입장으로 갈렸다.


   그렇다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주인의식은 가질 수 없다


   주인의식에 관한 대다수의 글들이 주인의식은 가질 수 없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주인과 비(非)주인이라는 포지션의 문제였다. (물론 주인과 비주인의 사이에는 수많은 위계질서들이 있지만, 이 글에선 간단명료화를 위해 생략하고 이분법으로 환원하고자 한다) 각각의 자리에는 그 자리만큼 할당된 책임과 권한 그리고 보상이 있다. 또한 그 자리만큼의 목표치가 있다. 주인은 조직의 안위와 이익 창출을 목표로 하고, 비주인은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보상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책임과 권한은 물론 보상과 목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비주인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신 승리에 가까운 요구다. 주인의식은 주인만이 가질 수 있는 의식이다. 비주인은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 근로자는 근로자 의식을, 직원은 직원의식을 강조하는 것이 마땅하다. 주인에게 직원의식을 가지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또 다른 견해로는 구조의 문제를 거론한다. 회사의 구조가 대체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라는 사실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 것이다. 회사 조직의 메커니즘이 그렇다. 근대 이후로 산업화와 분업화를 거치면서 회사는 대체로 관료제적인 시스템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회사 내 구성원을 흔히 부속품이나 톱니바퀴로 비유하면서 구성원의 비인격화 현상을 만들어낸다. 한 마디로, 마르크스가 말했던 노동으로부터의 인간 소외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인데, 마르크스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말했던 내용을 간과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그 밖에도 주인 때문에 주인의식을 가지지 못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주인은 비주인에게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동기를 부여하고 같이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게 해야 한다. 이렇게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주인으로서의 덕인데, 오로지 노동력 착취만 갈구하는 주인과 일하게 되면 주인의식을 가지기는커녕 모든 것이 열정 페이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 주인의식은 가질 수 있다


   주인의식은 가질 수 없다는 대다수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들도 종종 있었다. 가장 전통적인 차원의 견해는 주인의식은 태도라는 것이다. 상호 합의 아래 계약을 했으니, 계약에 대한 의무를 성실히 임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본인이 맡은 바에 대한 책임감이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통로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의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주인의식을 자기 성장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견해도 있었다. 개인이 성장하는 의식이 주인의식이라는 것이다. 앞선 견해와 결이 조금 비슷하지만, 주인의식은 주인에 대한 충성이 아닌 스스로의 삶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혹은 알 수도 있는 주인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아닌 스스로의 주인인 내가 내게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이 주인의식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견해들은 주인의식과 자기 주도성의 차이를 간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의식은 성격이다라는 견해도 있었다. 자기 일을 완벽하게 끝마쳐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은 자체적으로 주인의식을 발휘할 수 있다는 나름 신선한 견해였다. 다만 이럴 경우, 성격이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주인의식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물론 성격을 학습할 수 있다는 관점이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밖에도, 주인의식을 생기게 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해서 회사에 적용하면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질 것이다라는 견해, 주식이나 보너스와 같은 가시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함으로써 주인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견해처럼 구조와 체계를 통해 주인의식을 발현시킬 수 있다는 견해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견해들은 주인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의 접근이나 외부적 요소에 기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주인의식에 관한 다양한 글들을 참고해 나만의 생각, 나만의 결론을 도출해내야 한다. 그러나, 여러 글을 읽어보아도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에 대한 나의 의문을 명쾌하게 해소해줄 만한 글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주인의식에 대한 개념을 먼저 이해하자는 근본적인 접근으로 돌아가자 주인의식에 대한 나만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ㅣ주인의식(ownership)
일이나 단체 따위에 대하여 주체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이끌어 가야 한다는 의식


   구글에서 검색한 주인의식의 사전적 개념은 위와 같다. 언뜻 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고 뻔한 개념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번역에서 한글 단어와 영어 단어의 결이 무언가 다름을 느꼈다. 영어 단어 ownership은 의식보다는 권리 소유에 더 가깝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유권으로도 해석된다)


   따라서, 내가 얻은 결론은 주인의식은 개념 자체가 잘못된 용어다라는 점이다. 주인은 주인이기 때문에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비주인은 그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이러한 연유로 주인이라면 비주인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직원의식, 도덕의식, 윤리의식, 책임의식 같은 단어들로 대체해서 말하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주인의식은 주인의 권리를 소유할 수 없는 비주인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잘못된 용어이기 때문이다.



#주인의식 #개념 #의미

#SUN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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