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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Apr 16. 2020

봄을 기다리며

- 일상 에세이


2020.03.03


   나는 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봄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봄이 전하는 따스함보다는 가을이 주는 외로움과 겨울이 주는 차가움이 내 존재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수에 찬 눈빛과 차가운 도시 남자의 이미지는 나를 겨울의 어느 끝자락에 줄곧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흩날리는 벚꽃잎보다는 사뿐사뿐 내려앉는 눈송이가 더 좋다.

   나는 봄을 그다지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꽃을 피우길 기대하며 봄을 기다린다. 봄이라는 계절 속에 담긴 희망이라는 새싹은 봄비를 맞으며 한 움큼 돋아나고, 잎사귀를 비추는 아침햇살에게 첫인사를 할 테니까. 그러나, 봄이 와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어야 하는 누군가에겐 봄은 마주하고 싶지 않는 계절일지도 모르겠다. 봄이 와도 밤은 매일매일 찾아오니까. 그래서 나는 봄의 인사를 유예하고 싶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와도 우린 시들어버린다고 말하는 어느 노래의 가삿말이 떠오른다. 꽃피는 봄에도 시듦이 존재한다. 그래서 봄이 되어야만 사랑을 하고, 봄이어야만 희망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타 계절에 대한 차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사계절 속에서 흥망성쇠와 희노애락을 경험하며 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나는 봄을 기다리기보다는 빛을 기다리고 싶다. 봄도 피할 수 없는 캄캄한 밤을 밝히는 빛을, 내 삶을, 내 존재를 환하게 밝혀주는 빛을, 어둠이 가고 아침이 오면 떠오르는 태양빛 같은 그런 빛을.

   그래서 나는 내 이름에 새겨진 ‘Sun’이라는 단어가 좋다. 그늘진 나를 밝게 비추어주는 단어라서. 그래도 어쩌면 태양(Sun)이라는 이름을 가진 내가 이 세상의 작은 빛이라도 될까 봐.

  여름빛, 가을빛, 겨울빛 그리고 봄빛으로


#일상 #에세이 #봄

#SUN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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