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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Jul 23. 2021

원정 다득점 제도의 폐지와 공정성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화두 중 하나는 '공정성'이다. 작금의 시대는 그 어떤 시대보다 공정성 이슈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령, 공정성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미디어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보도하고, 대중들의 열렬한 조회수를 흡수한다. 또한, 대중들은 관련 사건에 분노를 표출하며 불공정한 사태에 대해 비난한다. 이처럼 공정성은 우리 사회에서 외면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로 작용하고 있으며, 많은 이슈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바야흐로, 공정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UEFA(유럽축구연맹)가 원정 다득점 제도의 폐지를 발표했다. 원정 다득점 제도는 1965년에 도입된 제도로 양 팀의 1, 2차전 합계 득점이 동일할 때, 원정 경기에서 더 많은 득점을 올린 팀이 승자가 되는 제도다. 이 제도는 당시 여러 조건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원정팀에게 어드밴티지를 주어 조금이라도 경기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도입된 지 56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UEFA는 다가오는 2021-2022시즌부터 그들이 주관하는 모든 대회(예를 들면,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등)에서 원정 다득점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원정 다득점 제도가 더 이상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현시대에 공정하지 못한 제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UEFA는 원정 다득점 제도가 더 이상 공정하지 못하다는 근거로 홈 어드밴티지 감소를 내세웠다. 축구는 홈경기의 이점이 큰 스포츠다. 통계상으로도 홈팀이 원정팀보다 승률이 높게 측정된다. 익숙한 규격의 경기장, 홈 팬들의 열렬한 응원과 지지, 부담 없는 이동거리와 그로 인해 적은 피로감 그리고 은근한 판정 이득 등, 실력 외 요소들이 홈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여 승패에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많은 것들이 변화하면서 홈팀의 유리함과 원정팀의 불리함을 상쇄할 수 있는 요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UEFA가 제시한 대로 경기장 품질 향상과 표준화된 규격, 개선된 인프라, 강화된 보안, VAR 기술 도입, 교통˙통신수단의 발달 등은 홈팀과 원정팀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홈과 원정의 경계를 흐리게 하였다. 물론 여전히 홈팀의 승률이 원정팀의 승률보다 높게 측정되지만, 단지 근소 우위를 점하고 있을 뿐이며, 그 차이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UEFA는 통계적 수치를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근거가 합리적임을 보여주었다. 7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홈팀과 원정팀의 승률 변화를 살펴보면, 70년대 중반에는 홈팀과 원정팀의 승률이 각각 61%, 19%였으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각각 47%, 30%로 홈과 원정의 격차가 줄고 있는 추세를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기간 내 홈팀과 원정팀의 평균 골 수 변화 역시 홈팀 2.02골, 원정팀 0.95골에서 홈팀 1.58골, 원정팀 1.15골로 골 수 역시 홈과 원정의 차이가 좁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원정 다득점 제도 폐지론에 쐐기를 박은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였다. 팬데믹 이후, UEFA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 유럽 대항전 1, 2차전 경기를 모두 확산세가 적은 중립지역에서 치르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홈팀이 홈에서 누릴 수 있는 이점을 소멸시키고, 원정팀이 홈팀 이상의 수혜를 받는 상황을 연출시켰다. 홈과 원정의 차이가 없는 중립구장에서는 원정 다득점 제도가 원정팀의 리스크 상쇄가 아닌 특권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연유로 제도의 불공정성과 무용론이 제기되었고, 폐지에 탄력을 가하게 된 것이다.


사진 출처 - UEFA 챔피언스리그 홈페이지


   사실 오래전부터 원정 다득점 제도의 공정성에 의문을 품고 폐지를 바라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아르센 벵거 전 아스널(잉글랜드) 감독은 "애초 의도와는 반대로 홈에서는 수비에, 원정에서는 득점에 전술적인 무게감을 싣게 됐다"라며 규정 폐지를 주장했고, 무리뉴와 에메리 등 다수의 감독들도 "홈경기가 예전처럼 이점이 되지 않는다"며 제도의 재검토를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원정 다득점 제도가 원정팀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 축구팬들에게 긴장감을 선사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2019-202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아약스 vs 토트넘> 경기는 원정 다득점 제도의 묘미를 한 껏 뽐낼 수 있었던 극적인 경기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홈팀의 이점이 감소하고 원정팀의 불리함이 상쇄되는 현시대에 원정팀의 득점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이 제도는 과연 공정한 제도일까? 어쩌면 제프 블래터의 말마따나 원정 경기가 모험 그 자체였던 1960년대에나 유효했던 제도이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현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공정성의 관점에서 볼 때, UEFA의 원정 다득점 제도 폐지 조치는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생각된다. 비록 원정 다득점 제도가 많은 축구팬들에게 극적인 감동과 환희를 선물해준 건 사실이지만, 현시대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불공정한 제도임은 분명한 것 같다. 여러모로 아쉽지만,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다.



원정 다득점 제도의 폐지와 공정성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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