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일주일이 흘렀고 의사와 마주한 나는 지난주에 내 마음은 좀 우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에 대한 감정이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된다고도 했다.
의사는 앞으로 상담을 진행하면서 이런 감정은 계속 일어나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한다며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라고 했다. 이어서 일주일 동안 떠오르는 감정이나 생각이 있었냐고 물었고 나는 이외에는 특별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 오늘은 다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나는 좋은 화젯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 특히 장남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다.
내가 엄마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동생들은 조금씩 알고 있었다. 몇 개월 전에는 엄마에게 또 실망을 하고 순간 너무나 화가 나서 막내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결혼 후 동생들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기에 이날은 이례적이었다. 누군가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 싶었고 엄마를 모르는 남한테 할 수는 없어서 막내와 통화를 하게 된 거였다.
이날 막내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부분적이었지만 터놓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는데 막내도 엄마가 장남을 편애한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비정상이 아니었다. 나 말고도 엄마가 장남을 이뻐한다는 증인이 나온 것이다.
내친김에 장남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나와 막내는 엄마가 너를 편애한다고 생각한다는 걸 말할 수는 없어서 내가 엄마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많은데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잘 모르겠다'였다. 엄마가 고집 세고 독선적인 면이 있는 건 알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 아니겠냐며. 뭐 충분히 예상 가능한 답변이었다. 풍족하게 사는 사람들은 가난의 불편함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때 불현듯 십 수년 전 어느 여름날 밤이 생각났다.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그 순간 장남에게 따지고 싶어서 떠올랐을 것이다.
장남은 군대를 마치고 복학을 준비하던 중이었고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밤 중에 우리 셋이 모여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던 중 내가 물었다. "엄마가 너를 제일 좋아하는 거, 너는 알고 있니?" 그때 장남은 호기롭게 웃으며 '알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을 때라 내 추측이 맞았다는 기쁨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엄마한테 야단을 많이 맞고 자랐는데도 자신이 셋 중에 가장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엄마는 늘 자신이 장남에게구박을 많이 해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그랬는데도 본인이 편애를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니.
똑같은 질문을 지금 다시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했지만 이 나이 먹고 유치해지는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어쩌면 장남은 본능적으로 엄마의 사랑을 느끼며 자라왔고 그래서 무의식 중에 어른이 되면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얼마 전 엄마 집 근처로 이사를 왔고 종종 드나들며 챙기는 눈치였다. 한편으론 나라도 저렇게 챙기면 좋아하겠다 싶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장남이 젤 정이 많고 착하다는 말을 했었다.
착해서 좋아하는 걸까, 좋아하니 착해 보이는 걸까.
착한 장남은 그냥 본인이 생긴 대로 살뿐이고, 엄마는 본인에게 잘하니 당연히 좋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만 이런 생각에 갇혀 있는 걸까.
의사는 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나한테 아버지는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 거의 모든 집에 있는 아버지 그 자체. 아, 무식함과 저급함이 추가되어야 한다. 형제 많은 집에서 돈만 많은 환경에서 자라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보고 배운 게 없으니 당연히 자녀교육이나 가정에는 관심도 없었고 자연스럽게 그 자리는 엄마 차지였다. 엄마는 우리에게 부모의 역할을 다 수행하려니 억세고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강한 엄마를 무서워했었다.
어쩌면 지금도 무서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직접 따지지도 못하고 이렇게 혼자서 끙끙대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