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상담을 한 후 다음 주에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잠깐씩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별 일 아닌 걸로 호들갑을 떨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실제보다 엄마를 더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느꼈다.
상담을 해서 혼란스러움은 커졌지만 어차피 엄마를 미워하는 데 쓰던 에너지였으니 계속해보기로 한다.
다시 만난 의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나이의 나는 이렇게 예쁘지도 않았고 직장에서 찌들어가고 있었는데 이 여자는 모든 걸 가졌구나 싶어서 순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차분하게 인사를 나누고 지난주엔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물어보며 상담을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걸 말해보라고 해서 나는 좀 혼란스럽다고 대답하며 엄마가 좀 더 싫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통화하는 게 싫어서 내쪽에선 전혀 전화를 하지 않으므로 엄마가 가끔 하는데 횟수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아마도 내가 상담을 시작한 것이 본인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더 이상 자세히 묻지는 않는다.
평소 자식일에 관심도 많고 캐묻기 좋아하는 엄마가 내가 일부러 흘리듯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을 했음에도 병원 이야기만 나오면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런 엄마의 태도에 나는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에게 엄마와의 대화는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아니 의미는 있다.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주의 깊게 들으며 장남과 나에 대한 애정도를 끊임없이 비교한다. 말꼬리를 잡아서 엄마의 장남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고 그럼 그렇지, 엄마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며 내가 받은 상처를되새겼고 증거를 모았다.
물론 나 혼자서 속으로만 하는 일이었다.
의사는 엄마와의 대화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지를 물어봤다.
나는 지겹다고 답했다. 엄마는 늘 내 안부를 묻고 걱정을 해주지만 그 끝은 언제나 똑같다. 나이 들어서 젤 위험한 것은 돈이 없는 거라며 모든 걱정의 끝은 돈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고, 자식을 키우는 일이 내 맘 같지 않고, 직장에 어려운 일이 생겨서 당장의 불행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나에게 엄마는 늘 나중을 위해서 지금은 돈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한다.
부부 사이가 안 좋다면 어떻게든 빨리 마음을 합쳐 지금은 돈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를 하고, 아이가 속상하게 해서 힘들다고 하면 지금 그런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늙어서 돈이 없는 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거라고 못 박곤 했다. 직장 내 어려움은 말해 무엇하랴. 직장은 돈 나오는 기계이므로 무조건 감사부터 해야 하고 조용히 오랫동안 다니는 게 정답이라는 것이 엄마의 신념이다.
인생의 모든 대소사를 돈으로 귀결 짓는 이런 엄마를 보면 어릴 때 얼마나 사무쳤으면 이럴까, 가난은 정말 무서운 건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 불쌍해지기도 했지만 지긋지긋함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은 대화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내가 엄마와의 대화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더 큰 이유였다.
나는 엄마가 내 걱정을 해주는 것이 돈에 대한 집착을 확인하는 것 같아서 싫었지만 사실 엄마가 해주는 위로를 듣고 있으면 화가 났다.
엄마 위로의 결론은 돈이라 싫었지만 그 과정 자체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나름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고 힘들어서 어떡하냐는 공감도 종종 해주었는데 나는 그것에도 반감을 느꼈다. 왜 그랬던 걸까?
갑자기 머리를 누가 내리친 듯이 감정이 떠올랐다.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내 걱정을 해주고 있다'
정확하게 이 느낌이다. 이미 나를 심각하게 망가트려 놓고는 밥은 잘 먹냐, 아픈 데는 없냐 하는 걱정이 무슨 소용일까.
그동안 엄마의 위로에서 나는 가소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나한테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나를 위로하고 있으니 나는 귀에 들어 올리도 없거니와 화만 났던 거다.
엄마가 나를 걱정 할 자격이 있는지 당장 묻고 싶어 졌다. 엄마는 나에게 있어 가해자이므로 사과를 하는 것이 맞지 위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의사에게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몰랐던 나를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너무도 정확하게 표현을 해내서였다.
의사도 내가 말하는 바를 정확히 느낄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무나 큰 일을 치른 사람처럼 피곤해졌다. 나 조차도 감당이 안 되는 감정을 확인해 버렸고 그걸 내가 직접 건져냈다는 사실이 좀 무섭기까지 했다.
엄마에 대한 감정이 더욱더 부정적으로 흐를 것만 같아서 상담을 계속하는 것이 맞나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