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상담
소개를 받은 의사는 너무나 아리따운 아가씨였다. 당연히 나이가 지긋할 줄 알았는데 젊어서 놀랐고 예뻐서 다시 한번 놀랐다. 상담가의 자질 중에 너무 출중한 외모는 마이너스가 된다더니 그 예로 적절할 것 같은 외모를 지녔다. 게다가 나이도 어려서 과연 내 이야기에 공감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믿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괜히 전문가가 아니겠지.
간단히 인사를 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새로 나온 정신치료법으로 접근을 해보자 했고 이 치료법은 내담자의 주도로 진행이 된다고 했다. 의사는 주로 듣는 역할을 하며 모든 주제는 내가 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치료의 목표 또한 상담을 하면서 정하게 되는 아주 자유로운 방식이었다. 어차피 정신과적 문제는 매우 주관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수긍이 되었다.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상담이라기보다는 내가 말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의사는 주의 깊게 듣는 방식이라 마치 내가 아침프로에 출연한 상담사례자가 된 느낌이었다. 어린 의사에게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좀 거북하긴 했지만 나는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한 주간 있었던 일중에 기억나는 일이나 떠올랐던 생각 같은 것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해서 나는 주말에 대학원 동기들과 졸업여행에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들 힘들게 대학원 과정을 마친 우리들끼리 자축하는 자리였고 나는 휴학 중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좋아서 계속 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누군가 자기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몇 년 전에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된 과정에서 겪게 된 여러 가지 경험이었다. 그녀는 엄마를 갑자기 잃게 되어 그런지 매우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 있던 모두가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슬픈 이야기였고 그녀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가 느껴졌다.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자기 엄마를 한순간에 떠나보낸다는 것이 굉장한 충격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상을 해봤다. 우리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신다면? 일단 놀라고 슬프겠지만 그 보다는 내 마음을 모른 채로 엄마가 떠나서는 안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로부터 상처를 받았는데 정작 가해자가 모르고 가버리면 내가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가해자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엄마를 가해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차마 입밖에는 꺼내놓지 못했지만 나는 엄마로부터 계속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엄마는 가해자가 맞았다. 마음이 무겁긴 했지만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엄마는 그동안 내가 꾸준히 힌트를 주었음에도 가해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예민하고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거라며 결국 내가 문제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럼 피해자는 누구한테 따져야 하는 걸까. 피해자만 있을 뿐 가해자가 없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복수를 위해 오랜 시간 준비를 했는데 알고 보니 가해자는 이미 죽고 없더라는 허무한 이야기. 내가 그 주인공이 될 것만 같다.
의사는 이야기를 듣고 이 치료의 목적이 무엇이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용서를 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나한테 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 좋겠다고. 아니 잘못을 시인만 하면 사과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애초부터 가해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나는 용서를 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해결책은 내 마음을 잘 다스리고 엄마와의 안전한 거리를 찾는 것이 되어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이런 내 마음을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서 해결해 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과거에도 나는 꾸준히 내 상처를 엄마에게 드러내길 원했지만 엄마는 그때마다 회피하고 외면하며 내 입을 틀어막고자 했다. 지레짐작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엄마가 유독 그 부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느껴졌고 내가 건드려선 안 될 부분을 계속해서 자극하면 우리 관계는 파탄이 날 것이 뻔했다. 내가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순간 엄마와의 관계는 마지막을 각오해야 하므로 나는 더 이상 시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도 두 마음이 갈팡질팡이다. 조용히 덮어두는 것과 까발려서 싸우고 싶은 마음. 솔직히 말해 파탄이 나더라도 엄마의 잘못을 들춰내 시인하게 만들고 사과를 받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계속 괴로울 것이고 결국 엄마와의 감정도 해결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상담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입 밖에 꺼낸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렸고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를 범죄자 취급을 해버려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한편으론 엄마와 나의 관계가 가해자와 피해자로 심플하게 정리가 됐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죄책감과 홀가분함 두 가지 마음을 안고 돌아오면서 나는 다음 상담이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