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고등학생으로 자라는 시간동안 나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엄마는 그때마다 꾸준히 날 괴롭게 했고 그럼에도 나는 엄마를 심리적으로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보통의 다른 엄마들과 많이 다른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본인의 젊은 시절 때문에 돈에 집착하는 엄마를 이해 못할 것 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데 에너지를 모으기 보다는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한 겁을 주기에 바빴다. 남편과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살아온 경험으로 어떤 식으로 해결을 하면 좋을지 조언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이혼을 해버리면 너는 이혼녀가 되어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라는 식이었다.
나는 이제 엄마의 속내를 정확히 읽을 줄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불행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해주기 보다는 또 다른 걱정거리를 만드는 게 싫어서 내가 큰일을 벌이지 않기만을 바랬다. 이제야 비로소 자식들을 모두 결혼 시킨 걸로 인생의 과업을 끝냈는데 행여 그걸 깨는 상황은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점점 엄마와 통화를 하는 것이 싫고 피곤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늘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엄마와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생들이 모두 결혼을 하고 난 후엔 나 모르게 슬쩍슬쩍 아들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고 가지고 있던 오래된 상가주택을 동생 둘의 명의로 돌려준 걸 알게 된 후론 가족들끼리 모이는 자리에도 빠지고 싶어졌다.
돈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가 나빼고 아들들한테만 돈을 줬다고 생각하니 역시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게 확실하다 싶었다. 언젠가 우연히 말할 기회가 와서 내가 이미 알고 있다며 넌지시 왜 그랬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조금 당황하는 듯 하더니 너는 딸이니 시댁에서 받으면 되는 거란다.
나는 엄마 딸이지 시부모님 딸이 아니라고 말했다. 엄마는 원래 그런 거라며 나보고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라 했다.
순간 외할머니가 살아 돌아오신 줄 알았다. 엄마의 논리대로라면 엄마도 외할머니를 욕해선 안 되는 거였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대로 똑같이 나를 대하고 있었다. 엄마에게서 사랑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다른 형제들과 똑같이 받지 못했다는 결핍으로 상처를 받았던 엄마는 나에게 같은 상처를 주고 있다는 걸 모르는 듯 했다.
나는 오기가 생겨 엄마가 이렇게 하면 외할머니와 다를 게 없다는 점을 자세히 설명했다. 엄마는 펄쩍 뛰며 자신이 나에게 못 해준 게 뭐가 있느냐며 화를 냈다. 외할머니는 오빠와 자신을 진짜 차별한 것이고 나에게는 욕심이 지나치다고 말했다. 종단에는 내 돈으로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며 버럭 했다. 엄마 돈을 욕심내지 말라고 했다.
막장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엄마의 잘못을 핑계 삼아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나쁜 딸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워졌다.
엄마가 길길이 날뛰니 정말로 내가 속물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고통스러웠다.
이 일이 있고나서 꽤 오랜 기간 힘들었다. 아니 지금도 힘들다. 엄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었지만 마지막엔 그래도 엄만데 라는 생각에 미치면 나는 역시 엄마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식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동시에 내 아이를 조심해서 키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중요하게 강조했던 가치관과 생활습관이 커가는 아이에게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면 책임감이 막중해졌다. 인생을 살면서 꼬이거나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걸 알기에 특히 조심했고 돈은 무조건 행복보다는 차 순위 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키웠다.
나 자신이 엄마에 대한 상처와 결핍이 있으므로 이로 인해 2차 피해가 생기면 안 된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아무리 나보다 어리더라도 그 나이에는 그 나름의 논리를 존중해주며 가능한 수용해 주려고 애썼다. 힘들었지만 나는 정상(?)이 아니므로 아이를 온전히 키우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수 밖 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키울수록 나는 엄마가 더 야속해졌다. 어린 나에게 엄마는 무자비했고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며 나를 이용해 먹기 바빴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너무 싫었다.
엄마를 싫어하는 나도 싫었다.
나는 엄마를 내 인생에서 몰아내기로 마음먹었다. 내 뇌에서 엄마와 관련된 부분은 정지시키기로 했다. 더 이상 과거의 상처를 되짚지도 말고 그냥 남처럼 생각하면 못할 일도 아니다 싶었다. 사람들을 차갑게 대하는 데는 자신이 있는 나였다.
결코 내가 먼저 안부를 묻는 일은 없었다. 엄마가 전화를 걸면 두 번 중 한 번은 받지 않았다. 엄마는 내심 섭섭했는지 엄마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으냐고 했다. 나는 그 동안 엄마가 강조한 대로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해야 하고 아이도 챙겨야 해서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얼른 끊었다.
어쩔 수 없는 가족 행사에만 얼굴을 비추고 그나마도 고등학생이 된 딸을 혼자 두고 가기 싫다며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원래 예로부터 딸이 친정행사에 자주 참석하는 것은 며느리들 보기에도 그렇고 아니지 않냐고 떠봤다. 엄마는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냐며 핀잔을 주었다. 자기 마음대로 남녀평등과 조선시대를 넘나드는 참 편리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안 해도 되어서 좋았다. 그 동안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실제론 엄마한테 너무 기대고 있었다는 자각도 하게 되었고 더 이상 나를 상처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도 했다.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게 엄마와의 고리를 끊어내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이제야 나는 엄마와의 적절한 거리를 찾아낸 듯 했다.
나는 내안에서 오랜 기간 이어졌던 엄마와의 싸움을 끝내고 감정을 정리 해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엄마가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의사의 반응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