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엄마가 해주는 김치의 속뜻은

네 번째 상담

by 발전소

상담을 하면서 내가 내 행동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인데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특히 엄마에 관해서는 더 예민해졌다. 상담을 하는 것이 과연 나한테 도움이 될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의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해 달라고 했다. 다행히 아빠의 칠순이 다가오고 있어서 이것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게 되었다.




칠순을 기념해 가족끼리만 식사를 하기로 했다. 엄마는 늘 가족모임이 있기 전에는 김치를 담그고 가까운 청과물시장에서 과일을 가족수대로 박스채 사두었다가 돌아가는 길에 쥐어준다. 여기까지 들으면 엄마가 자식들 먹이려고 준비하는 따뜻한 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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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김치를 담그고 나면 나에게 꼭 전화를 건다. 며칠 전부터 시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어서 이제야 다 끝났다며 한숨을 돌리고 전화를 하는 것이다. 며칠 동안 이걸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푸념을 하고 이번에는 평소와 다르게 보리풀을 쑤어서 담갔다느니 배추가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나나 동생들이 김치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는 부탁한 적도 없는 엄마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호의가 아니었으므로.


무슨 김치가 필요한지, 어떤 과일이 먹고 싶은지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본인이 좋은 대로 한다. 그러고선 감사함을 강요한다. 감정적으로만 감사함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닌 걸 알게 된 건 몇 년 전에 통화를 하다가 언쟁을 하고 나서다.




평소 엄마와의 통화가 즐거울 리 없는 나는 그날도 지난주에 가져간 김치를 먹어봤냐는 엄마의 질문에 또 시작이구나 하며 지겨워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음먹고 말을 해버렸다. 언젠가 한 번은 말하고 싶었다.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 솔직히 엄마가 해준 것들 반은 버리게 된다, 나는 딸이니 말을 하겠지만 며느리들은 말도 못 하고 그냥 가져가서 버릴 수도 있다. 왜 아무도 부탁하지 않은 걸 힘들게 하느라 고생하느냐며 자식들 입장에선 엄마가 기껏 해놓은걸 그냥 두고 올 수는 없어서 가져오는 측면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는 일단 가져가면 먹지 않느냐며 가져가 놓고선 말이 많다고 했고 나는 한 번도 우리가 엄마에게 김치를 부탁한 적이 없음을 상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계속하겠다면 오롯이 엄마의 자기만족으로 하는 일이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몰아세웠다.


엄마는 우리에게 김치를 해 주는 것이 본인 만족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네가 가져가는 김치, 과일, 반찬 등이 돈으로 치면 무시 못할 액수'라는 말을 뱉었다. 역시 또 돈이었다. 솔직히 그동안 김치 가져가며 용돈이라도 내놓은 적이 있냐며 흥분했다.


나는 또 진절머리가 났다. 왜 마음대로 해놓고 보답을 바라는 걸까. 자기가 해주고 싶은 것들을 자기 방식대로 줘놓고 다시 돌려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엄마를 이해시키고 싶었다. 엄마의 어떤 면이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엄마에게 '호의'나 '선물'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다. 나는 그동안 엄마가 해 주는 것들이 나에 대한 사랑이고 호의라 생각해 왔고 그것에 대해 감사는 하지만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감사의 표시를 물질로 할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소관이고 엄마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낄 때 나오는 결과라는 점을 설명해야만 했다.


엄마는 내 말을 진지하게 듣더니 본인은 '기브 앤 테이크'가 좋다고 대답했다. 본인이 자식들에게 이만큼 해주면 자식들도 나한테 어느 정도는 해주겠지라는 마음이 있다고 실토했다. 물론 물질적인 것만 뜻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마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결국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보답을 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것이 당장의 용돈이든 먼 훗날 자신의 부양이든.


엄마는 본인이 건강할 때 뭐라도 해줘야 나중에 병들었을 때 너희들이 돌봐줄 거 아니겠느냐며 먼 미래의 거래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엄마가 아무것도 안 해준다고 나중에 우리가 엄마를 버리겠느냐며. 엄마는 그래도 그게 아니라고 했다. 그게 아닌 게 뭔지 더 따지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도대체 엄마의 결핍과 끝없는 걱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늙어감에 따른 불안인가?


젊은 시절의 가난 때문인가?




그 날은 상담실에서 나오는 순간 갑자기 깨닫게 된 게 있었다.


'기브 앤 테이크'가 좋다는 엄마가 나보다 장남을 사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나중에 자신을 부양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자식에게 '기브'를 많이 해둬야 하므로 엄마는 자연스럽게 나보다는 장남에게 신경을 쓰게 되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나중에 장남으로부터 받을 걸 생각하고 미리 더 주었던 건 아닐까? 물론 본인도 몰랐겠지만 말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난 억울할 필요가 없다. 나는 엄마에게 갚을 것이 적지만 동생은 잔뜩 빚을 지고 있으므로.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또 하나 있다. 상담을 할 때보다 오히려 끝나고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사에게 내가 했던 말을 곱씹으면서 정확히 설명한 게 맞는 건지, 그 순간에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등을 생각하다 보면 모호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꽤 정확하게 내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엄마에게 빚진 것이 적은 나는 모처럼 마음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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