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물에 젖은 파를 먹는 기분은

다섯 번째 상담 1

by 발전소

엄마의 편애가 조건부 사랑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엄마는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이고 가난까지 겹쳐 세상에 공짜가 없는 현실을 너무 일찍 몸으로 익혀 버렸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엄마가 잠깐 불쌍해진다.


어쩌면 엄마는 내가 부모가 되어 느끼는 걸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아이에게 했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심사숙고하고 사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엄마는 다른 부모에 비해 특별하거나 모자라지 않다.


그렇다면 역시 내가 문제인 건가.




이제는 친숙해진 의사와 인사를 나누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지낸 지난주를 간단히 설명했다. 의사는 엄마와의 관계로 인한 상처가 다른 가족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느냐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대표적으로 내가 딸을 키우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엄마에 대한 원망도 내가 아이를 키우며 시작되었는데 엄마가 되어보니 아이에겐 엄마가 절대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엄마의 말 한마디와 행동을 어떤 식으로 아이가 받아들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며 나 자신이 이미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이므로 딸을 대할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다고 했다.





나는 국과 찌개에 들어있는 파를 싫어한다. 어릴 때 미끄덩하고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물에 젖은 파를 먹는 것이 너무나 싫었는데 엄마는 억지로라도 먹게 했다. 편식을 막는다는 게 이유였지만 먹다가 구역질이 올라오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파가 들어간 시금치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고 학교에 다녔던 기억 때문에 어른이 되고 나서 한 동안은 된장국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내가 엄마가 되어서는 아이가 싫어하는 반찬을 먹이고 싶을 땐 모르고 먹을 수 있게끔 만들어 주고 그래도 거부하면 주지 않는 쪽을 택했다. 세상의 모든 식재료를 빠뜨리지 않고 먹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려서 그럴 수도 있으니 좀 커서 다시 시도해 보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진로를 고민하면 공부를 잘해봤자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고 정답도 아니라고 말해줬다. 다만 가난해지지 않을 확률이 좀 높아질 뿐이고 앞으로 돈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며 살아갈 것인지를 천천히 고민하면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조언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했더니 딸은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착실하게 월급을 모으는 삶이 왜 나쁘냐고 반문한다. 나는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며 다만 그 기준이 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부연 설명을 해줬다.




그런데 말을 하고 보니 나의 교육관은 모두 엄마와 정 반대에서 시작됐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엄마의 방식이 싫어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기준이 되는 건 아직도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엄마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머리칼이 쭈뼛해졌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정신을 더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와 무조건 반대로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나 스스로에게 다그치며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내 아이를 키우는 데 방해가 된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하지 않을 수는 없다. 어쨌든 양육은 언제나 선택을 요하고 그럴 때의 기준은 부모의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편견 없이 키우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설령 그렇게 키웠다고 해도 아이는 성인이 되었을 때 만족할 수 있을까?


딸은 성인이 되어서 나를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돈보다는 일상의 행복이 중요하고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별 볼일 없다고 말하는 엄마 때문에 세상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며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그럼 내 아이도 나처럼 엄마를 미워하는 딸이 되는 건가.


갑자기 어려워졌다.


나는 해결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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