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한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을 꺼내놓는 것이 두려웠다. 다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곁에서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쁜 딸인 것 같아 어디 가서 말도 못 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사실 엄마와 좋은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선의가 있는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배수의 진을 치고 싶었다. 나에게 족쇄를 채워서라도 어느 쪽이든 결판을 내고 싶었기에 결과를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저질러 보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기분 나쁘게 살기엔 남은 인생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연한 기회를 행운으로 만들고 싶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노트북에 내 감정을 정리해 둔 10페이지 분량의 독백이 시작이었다. 그 글을 적으며 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한 번도 입밖에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가면서 누군가에게 내 상처를 내 보이고 일러바친 기분이 들어 잠시나마 마음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상담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록하기 시작했고 글이 어느 정도 모인 후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공유하면서 부끄럽고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남을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도 남겨 둘 수 있으니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실제로 기록을 한 것은 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상담을 처음 경험해 본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의사가 너무도 하는 일이 없어서였는데, 뭔가 적극적인 치료를 기대했던 나는 김이 새고 본전 생각까지 날 정도로 다소 무성의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초반에는 그럴 수밖에 없지 싶다. 일단 내가 배설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었던 것 같다. 상담 중반이 되어서야 좀 정신을 차리고 이제 수습해 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는데 아마도 그것이 감정 해소가 되었다는 신호인 듯하다.
감정이 해소되고 나선 해결 방법을 찾고 싶어 졌다. 더 이상 원인에 집착하지 않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져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연스럽게 나에 대해 깊이 탐구하게 되었고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시간이다.
보고 싶지 않았던 내가 보였고 강하고 싶지만 사실은 한없이 약한 사람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는 그 간의 내 행동이 설명되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나를 모르고 있었던 거다.
물론 이제 진짜 나를 발견하게 됐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앞으로 또 어떤 나를 만나게 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으므로. 그러나 내가 몰랐던 나의 일부를 발견한 것이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일단 전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최소한 내가 나를 혼란스러워하는 상태에서 행복하기란 불가능하므로 나는 이 혼란이 없어질 때까지 더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초보적인 글쓰기 솜씨도 없는 내가 그래도 몇몇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최대한 담백하게 쓰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수학을 하는 사람인지라 말을 길게 하지 못하는 내 성향이 오히려 치료과정을 건조하게 기록하기엔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해 용기를 냈지만 지금으로선 확신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이 글을 끝까지 쓸 수 있던 원동력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격려와 위로였다는 것에 내가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또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을 쓰면서 사고와 감각이 명료해지는 것이 좋았기에 지속할 수 있었고 단 한 명이라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의 힘으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