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는 엄마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고 심할 땐 어떤 복수가 엄마를 가장 힘들게 할까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 답은 늘 정해져 있었다. 내가 망가지는 것. 엄마로서 자식이 제 구실을 못하고 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과거의 어린 나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 엄마가 했던 행동과 말이 나에게 어떤 상처가 되었는지를 구구절절 까발리고 싶었다. 까발려서 엄마를 아프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은 꼭 치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이 내달려 엄마에게 깊은 상처를 줄 것만 같았고 나 또한 무사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두려웠다. 그냥 가슴 한구석에 모른 척 묻어버리고 엄마와 데면데면한 일상을 이어가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놓을 수 없었다.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던 나는 그러나 지금은 엄마와 좋은 방식으로 해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동안 의사에게 엄마의 험담을 실컷 늘어놔서 감정이 얼마간 해소되어서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상담 초기에 기록해 놓은 글을 보고 있으면 내가 봐도 서슬이 퍼렇다. 감정을 글로 표현을 하니 더 깊고 진하게 보인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그동안 의사에게 내 감정의 쓰레기를 버렸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다음 단계가 필요했다. 실질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직접적인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의사는 왜 엄마와 좋게 해결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다.
나는 가끔 퀼트를 한다. 퀼트는 많은 천조각들을 끊임없이 바느질을 해야만 완성이 되는 작업인데 이것을 하고 있으면 몰입의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바늘에 실을 꿴 후 보통 매듭을 두 번 정도 만든 후 천조각을 연결하는데 어떤 옷감은 날실과 씨실의 간격이 넓어서 실이 그냥 통과해 버릴 때가 있다. 그럼 한 번 더 매듭을 지어 바느질을 시작하곤 한다.
나는 지금까지 상담을 하면서 엄마, 남편, 직장동료 등 나의 모든 인간관계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아냈다.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실이고 나는 옷감이다. 실에 매듭이 없으면 옷감 입장에선 걸릴 것이 없으므로 무사통과다. 매듭이 하나 정도 있어도 보통의 옷감을 통과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날실과 씨실의 간격이 너무나 촘촘해 매듭이 하나만 있어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옷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매듭이 단 하나만 있어도 나는 무시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매듭 한 개 정도는 그냥 통과를 시키는 데 나는 작은 매듭에도 쩔쩔매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에게 매듭은 엄마의 편애로, 남편의 가정에 대한 소홀함으로, 동료의 배신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나는 그 해결 방식으로 늘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방법을 택했다. 나의 날실과 씨실의 간격을 좀 더 넓히든지 매듭의 크기를 줄여보려는 시도는 해볼 생각조차 안 했다. 그냥 실을 잘라버렸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은 나에게 비겁함의 다른 말이므로 나는 차라리 인간관계를 끝내 버렸다.
인간관계는 옳고 그름이 없고 다만 방식의 문제일 것이다. 나와 맞는 방식인지 아닌지. 왜 나는 그동안 넓고 얕은 관계가 좁고 깊은 관계보다 나쁘다고만 생각 했을까. 방식의 차이일 뿐인 인간관계에 나는 가치판단을 해버리고 규정해 버렸다. 나 스스로 파놓은 좁고 깊은 함정에 빠져버린 건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내 마음의 간격이 좁은 건 생각하지 못하고 왜 실에 매듭이 있는지만을 한탄했다. 세상 모든 실에는 매듭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유난히 빡빡하고 억센 옷감이라 작은 매듭조차 허용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내 기준을 만족시킨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또 매듭에 걸려 더 이상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잘라내 버려야 했던 사람은 몇 명일까.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다.
매듭을 허용할 수 없는 나는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옷감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이러다가는 바늘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더 이상 옷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지경까지 이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의사에게 인간관계에 있어 내가 왜 이런 방식을 사용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부터라도 방식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라고 대답했다. 이 방식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데, 그러므로 나는 과거에 계획했던 것처럼 직접적으로 엄마를 다그쳐서 사과를 받아낼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엄마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 일정 부분 내 책임도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를 포함해 모든 인간관계의 방식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그 첫 대상이 엄마가 된 것이다.
나는 잘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는 엄마 마음을 후벼 파서 일부러 아프게 할 생각도 들지 않으므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유연한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데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원하는 것은 엄마의 사과였다.
이를 위해 나는 엄마와의 대화법을 연구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엄마는 이미 늙어가고 있으므로 과거보다 많이 약해져 있었다. 약한 상대에게 엎드려 절 받기는 싫었다. 나는 엄마가 명료하게 상황을 직시하고 내 상처를 바라봐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단어조차 신중하게 선택해야 함을 직감하고 있었다.
나는 의사에게 그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내 성격상 오래 끌고 있는 걸 싫어하고 이런 마음이 드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에 감정이 식기 전에 추진해야 함을 알고 있다고 했다.
모처럼 숙제를 안고 진료실 문을 나섰다. 생각할 것이 많았다. 시기나 방법 등.
동시에 엄마와 좋게 해결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느껴졌다. 무엇보다 드러내 놓고 싸우거나 가슴에 묻는 두 가지 경우 외엔 방법이 없을 줄 알았는데 더 좋은 옵션이 한 가지 생긴 것이 다행스러웠다.
실을 끊어내지 않으면서도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매듭을 줄여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동시에 내 날실과 씨실의 간격을 넓힐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