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악당보다 슈퍼히어로가 더 미워지는 느낌을 아시나요

D-day

by 발전소

의사에게 곧 D-데이가 올 것 같다고 말은 했지만 언제가 좋을지 어떤 방식이 좋을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말보다는 글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천천히 모든 것을 다 적어서 엄마에게 전달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이 기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므로 나는 최선을 다해 원하는 바를 얻어내리라.


가능하면 감정을 배제하되 부드러운 방식으로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야 나는 사과를 받을 가능성이라도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내 생애 최고로 긴 편지를 쓰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이 무색하게도 나는 생각보다 빨리 그 때를 본능적으로 낚아챘다.




2019년 9월 13일, 추석날 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진짜 대화를 했다.


명절을 함께 보내고 집에 잘 들어갔는지 걸려온 엄마에게 이런 저런 대답을 하고나서 나는 갑작스럽게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지금이면 될 것 같았다.


엄마, 나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뭐냐고 되묻는 엄마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잔뜩 베어 있었다.


나는 그 동안 상담의 주제가 엄마였는데 그것에 대해 이제는 말을 할 준비가 된것 같고 엄마도 궁금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벌써부터 목소리가 떨리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엄마는 그동안 본인 때문에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차마 들을 용기가 안나서 묻지 못했다며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엄마가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동안 엄마가 나를 장남에 비해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몇 년간 괴로웠다고 말했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엄마가 다 이해되고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는 사소한 일로 나 혼자 예민하게 굴고 있다는 걸 아는데도 나는 계속 엄마를 미워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나는 내 불행의 원인을 엄마에게 돌렸고 그 증거를 장남에게서 찾으려 했던 것 같았다고 했다.


어쩌면 현재의 내 상황이 어려워서 내 나름의 탈출구를 찾아 헤맨 결과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나에겐 엄마를 용서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엄마가 나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 정도가 아닌 것도 알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 화살을 엄마에게 겨누고 있었음을 고백했다.


엄마에게 섭섭했던 것들을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최종 목적은 상처 없이 우리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므로 나는 최대한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막아야 했고 다행히 엄마는 내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었다.


그리고 내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나는 천천히 정성을 들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시 없을 마지막 기회였다.


엄마는 인내심을 가지고 내 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었고 다 듣고나서는 한숨을 쉬었다.


엄마의 한숨소리가 낯설었다. 엄마가 진심으로 가슴아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엄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날 나뿐 아니라 사실 삼남매 모두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다고 했다. 지나고보니 젊을 때 우리에게 푸근하지 못하고 따뜻하게 돌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적이 많았다며 본인은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리는 경주마처럼 살아왔다고 했다. 그 경기장엔 아이 셋을 따뜻하게 보듬을 여유따윈 없었는데 그 이유는 오롯이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하나 뿐인 딸에게도 정을 주지 못했고 그것이 지금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다고 했다.


젊은 시절의 엄마는 경험도 지혜도 없었을 것이다. 고만고만한 아이 셋을 키우는 초보 엄마의 입장에서 여유는 사치였을 테다.


자식에겐 관심도 없는 남편은 엄마로 하여금 자식 셋의 무게를 고스란히 혼자 지고가도록 강요했고 엄마는 나 혼자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길 바랬다고 한다. 배울 것 없고 이기적인 남편 밑에서 살게 하느니 차라리 빨리 탈출을 시키자는 마음으로 내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했다. 아마도 진짜로 탈출하고 싶었던 건 엄마였을 것이다.



엄마에게 돈은 트라우마 자체였다. 자식 셋을 무사히 대학졸업을 시켜 최소한 돈 걱정은 안하게 하고 싶었다며 아직도 가난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엄마는 돈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 하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아버지와 결혼을 하게 됐고 그로 인해 본인의 삶도 힘들었음을 고백했다. 아이 셋을 키울 돈이 있었다면 분명 이혼을 했을 거라며.



엄마는 돈이 없는 자신이 무기력하다고 느꼈기에 여자도 꼭 돈을 벌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건 나에게 특히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시인했다. 그래서 시골 사립학교에 나를 밀어넣은 것은 엄마가 지금까지도 나에게 가장 미안한 일이라며 두고두고 후회 중이라고 했다.






나는 슬퍼졌다.


내 화살이 갈 곳을 잃고 엄마에게 향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보다 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그동안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끔찍히 싫어했음에도 엄마를 더 미워한 이유는 슬프게도 아버지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는 그냥 엄마였다. 자식들에게 애정이 없는 아버지는 애초부터 나를 잘 키워줄 거라는 기대조차 없었기에 실망할 일도 상처받을 일도 없었지만 부모의 역할을 혼자 담당했던 엄마는 달랐다.


나에게 아버지는 만화 영화에 빠지지 않는 악당 같은 존재였고 엄마는 그로부터 나를 보호해주고 지켜주어야 하는 슈퍼히어로였다. 그러나 나는 주인공으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그 원망은 미움으로 커졌다.




어쩌면 내 화살을 받았어야 하는 사람은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의 존재자체를 무시해버렸다. 상담 과정 중에도 아버지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였고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가지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를 부모의 위치에서 동네 불량배로 끌어내려 버렸으므로 믿고 따를 수가 없었고 아버지의 역할은 고스란히 엄마의 어깨로 옮겨졌을 것이다.



엄마는 나와는 또 다른 종류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먼 길을 돌아온 느낌이었다. 결국 아버지의 정서적 부재가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 구나 싶었고 마찬가지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내 남편은 미래의 딸아이에게 어떤 아버지가 될까 걱정스러웠다.






이 쯤에서 정리를 해야했다.


어차피 남 탓을 하자면 끝이 없고 애초에 원인을 밝혀봤자 의미 없는 일이었다. 나에겐 앞으로가 중요했다.


나는 엄마에게 고맙다고 했다. 사과를 해주어서.


엄마는 그동안 나와의 관계가 서먹했음에도 쉽게 물어볼 수 없어서 괴로웠다고 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느끼면서도 때를 기다렸을 뿐 결국엔 엄마와 좋은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직도 엄마가 나한테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증거로 해석해 달라고 당부하며 통화를 마쳤다.






엄마는 생각보다 너무 쉽게 사과를 했고 나를 이해해줬다. 나의 모든 괴로움은 전적으로 본인 탓으로 생각하라며 자책했다. 나는 약해진 엄마를 보며 씁쓸해졌다. 엄마와 원만한 해결을 원했으면서도 저항 한번 하지 않고 이렇게 싱겁게 끝날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지만 감정의 태풍은 좀처럼 잠잠해 지지 않아서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왠지 엄마도 그럴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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