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쿨 하지 못한 사람이 쿨 한 척을 하게 되면

일곱 번째 상담

by 발전소

일곱 번째 상담은 늘 만나던 방이 아닌 다른 방으로 배정이 되어서 그런지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인사를 나누는 의사의 얼굴에는 피곤이 묻어났고 나는 뉴스에서 본 과로사 한 의사가 생각났다. 어쩌면 학교와 마찬가지로 그저 그런 행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작 교실에서는 피곤할 수밖에 없는 교사와 비슷한 면이 있겠다 싶었다. 더구나 연차도 적은 신임이므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겠지. 안쓰러운 마음이 일었다.


초임 시절,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서 미처 나를 돌보지 못한 부작용을 지금 겪고 있는 나를 생각해 보면 의사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자신을 돌보면서 살라고.


역시나 성실한 신임 의사는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자 했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나 떠오르는 생각을 말해보라며 자신을 추스르고 상담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미안하게도 지난주에는 별 생각이 나지 않았고 엄마에 대한 불만은 이미 많이 이야기 한 터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의사는 질문을 했다.


엄마는 사랑조차 대가를 바라는 사람이고 장남을 좋아하는 것도 결국은 나중에 본인을 부양할 자식이기 때문이라는 내 생각의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다. 엄마가 더 나이가 들면 장남으로부터 부양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직접 한 적이 있는지도.


물론 엄마가 직접적으로 자신의 부양에 대해 말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젊을 때부터 밥상에 아빠 다음으로 장남의 밥을 올렸던 엄마는 자신의 마지막 부양자가 장남일 확률이 높다고 믿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더구나 엄마 곁으로 이사까지 온 장남이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한 것을 엄마는 내심 감동하는 눈치였다.


의사는 만약 엄마가 나에게 부양을 부탁한다면 어떨 것 같으냐 물었다.


생각을 안 해본건 아니었다.


사실 장남의 처는 외동딸이고 고등학생이던 남동생을 사고로 잃은 아픈 경험이 있어서 남은 가족들이 유난히 서로를 챙겼다. 처가 부모님을 모시고 곧잘 여행도 다니고 장모님이 몇 년간 아이도 돌봐주었기 때문에 장남은 처가 부모님을 나 몰라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 나중에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시고 나면 골치가 아파질 것이 뻔했다.


또한 엄마는 결코 녹록지 않은 시어머니다. 그러므로 며느리보다는 혈육인 내가 모시는 게 고통의 총량이 적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므로 나는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분명히 때가 올 것이고 나는 결국 엄마를 부양하는 건 맏딸인 내가 하게 되었지 않느냐며 큰 소리를 치는 상상도 해본 적이 있다.


나는 의사에게 만약 엄마가 나에게 부양을 부탁한다면 부담스럽긴 하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상태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만약 진짜로 함께 살게 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한 다음이어야 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비슷한 이야기를 몇 마디 더 주고받은 후 의사는 늘 그렇듯 오늘 상담이 어땠냐고 물어본다.


상담이 끝나가면 늘 이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은 나를 갑자기 상담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어 잠깐 어리둥절한 느낌을 갖게 한다. 또다른 내가 나를 설명하듯 오늘의 상담 내용을 정리하면서 어떤 감정이 드는지 말해 보는 것이 상담의 진행 정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긴 하다.


오늘 상담은 전처럼 감정의 격동은 없었지만 좀 차분해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나도 모르게 단편적으로 스쳐 지나간 감정들이 여기 오면 통합이 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아마도 기록을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더니 의사의 눈이 커졌다.


의사는 기록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었고 나는 '시간이 많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는 사람이 가장 부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나는 지금 바로 그렇게 살고 있다.


이미 부자로 살고 있는 나는 이 잉여를 나를 탐구하는 데 써보기로 했고 이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엄마 문제로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남편이나 직장동료 등과도 결국 나는 인간관계를 힘들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그냥 인간관계가 서툰 사람이고 나름 혼자서 그 원인을 찾다 보니 엄마가 만만했던 걸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엔 나를 키운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엄마든 남편이든 직장동료든 나는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었다. 뭐 그게 내 성격이므로 당연하겠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 나를 아프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쿨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작은 상처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발견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을 내쳤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에 미지근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내가 아닌 남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강해서 상대가 나를 조금이라도 섭섭하게 하면 나는 관계를 아예 끊어버리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끊을 수 없는 관계도 있다. 그 힘이 가장 강한 것이 나에겐 엄마일 것이다.


끊어버릴 수 없는 관계인데 확실한 내편이라는 확신도 가질 수 없으므로 나는 그동안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준 부정적 감정이 나의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겠지만 나는 원래 상처를 두려워하는 성향이었던 거고 엄마 또한 내 인간관계의 대상 중 하나였을 뿐이다.


나는 방식을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꾸 원인을 찾는 데만 집착해 봤자 얻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찾아낸 원인이 백 프로 엄마 때문인 걸 알아냈다 한 들 내가 행복해지는 데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아낸 다음에 할 일은 결국 방법을 찾는 일이므로 나는 그것에 초점을 맞춰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문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인간관계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그동안 내가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고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며 아마도 기록을 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동의했다. 늘 상담이 끝나고 집에 가서 기록을 하면 내 감정이 좀 더 명확해지고 선명하게 보였다.


의사는 앞으로가 기대된다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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