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떨어지자 의사는 나에게 엄마와의 관계가 사회생활에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물어봤다.
이 부분은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도 고민하던 부분이었다. 직장 내 문제로 병가를 내게 된 것도 결국은 인간관계 때문이었고 그것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관련된 것이므로 나는 엄마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던 중이었다.
나의 사회생활은 한마디로 '소수와 깊은 관계 맺기'로 정리할 수 있다. 넓고 얕은 관계를 태생적으로 싫어했고 심지어 그런 식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며 야비하다고 까지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람은 세상에 없고, 그저 그런 친구 열 명보다는 확실한 친구 한 명이 훨씬 나으므로 나는 기꺼이 좁은 인간관계를 선택했다.
그런데 직장에서 겪은 일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려운 일을 겪어보면 피아가 구분된다고 하는 말을 몸소 체험하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어떤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는지도 자각하게 되었다.
얼마전 직장에서 복잡한 사건을 처리하는 입장이었던 나는 원치 않게 여기저기 휘말리게 되었고 윗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여러 가지 실망스러운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괴롭힌 건 '배신감'이었다.
사립학교가 가진 조직의 쓴 맛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직에서 입바른 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내 가정의 가장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편인 줄 알았던 후배가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님을 확인했을 때는 분노가 치밀었다.
평소 학교에서 부당한 일이 있을 때면 함께 고충을 토로하며 위로하던 사이였다. 십 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함께했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내편이 되어 줄 것이라 확신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큰 일을 겪게 되고 나와 친하다는 것이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안 되겠다고 판단되었는지 손을 놓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결국엔 내 자리에 후임으로 앉게 되고 내 업무를 고스란히 받게 되었는데도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아무리 그도 가장이라고 나를 이해시켜보려 노력을 해봐도 용서가 불가능했다.
복수를 결심했고 꼭 응징을 해주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를 이렇게 날것으로 미워해 보기는 철이 든 이후로 처음이었다.
병가를 내고 얼굴을 안 보고 사니 살 것 같았다.
한 숨 돌리고 나니 그동안 무엇 때문에 그 후배를 이토록 미워하고 필요 이상으로 복수심에 불탔는지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면 그냥 남이었다. 가족이 아닌 남이므로 어쩌면 직장에서의 배신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남을 그렇게 미워할 수도 있다는 게 놀라웠다. 친한 동료들은 내가 그 후배를 너무 사랑했나 보다고 실없는 농담을 했다.
나는 상담을 시작하기 전부터 직장 내에서 받은 상처에 내가 너무 깊이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직장생활 20년 차면 한 두 번 뒤통수를 맞는 경험이 있는 것은 당연할 텐데 나는 남을 남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의리를 저버리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요즘 시대에 걸맞지 않게 의리라니...
어쩌면 나는 그동안 주변에서 '확실한 내편'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확실함은 결코 채워질 수 없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내 기준을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 내편을 찾으려고 헤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가 있다고 느껴졌다.
내가 이런 식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의 근본에는 엄마가 확실한 내편이라는 확신이 없어서일까? 만약 거기서부터 비롯된 게 맞다면 이제부터라도 그저 그런 친구 열 명을 사귀는 방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에게 내 가설이 맞는지 물어봤다. 역시나 그럴 수도 또 아닐 수도 있다고 대답하며 중요한 건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내 인간관계의 방식을 바꿔보고 싶다는 결심은 확고해졌다. 좁고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내 욕구는 결코 충족될 수 없고 나만 상처를 입을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는 내 곁에 아무도 남길 수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