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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와 짝퉁사이

날아간 펜더 Fender

by 박미선 Apr 08. 2025

집에 있는 손목시계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천만 원에 달한다.

남쇼 NAMM show:

(음향 기기 국제 무역 박람회)

제품 개발을 위해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구매한 것이다.

촉박한 시간과 빠듯한 출장경비를 쪼개서 구매한 목록은?

롤렉스, IWC, 까르띠에, 루이비똥, 니 똥, 내 똥, 개 똥 등등.



어느 날 내 손목 위에 까르띠에 시계가 멈췄다.

자기야? 이 시계가 멈췄어.
가끔 때려줘.


한마디로 짝퉁이란 말씀이다.

그 후 수년이 지났고 짝퉁 시계들은 세월도 잊은 채

혼자 나이를 먹지 않고 있다.

먼지만 머금은 시계에 윤기를 내는 오드럼.

어디가?
(갑자기 짝퉁 시계 찰 일이 있나?)
이거 팔렸어.

당근 마켓에서 구매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짝퉁인걸 알렸느냐고 했더니 당연히 알렸단다.

시계도 잘 안 가잖아.
얘기했어.
사람이 차고 있어야 시계가 간다고.

(말이야? 방귀야?)

아무래도 때려야 간다는 말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이미지라는 허깨비를 위해

무려 십오만 원이나 주고 사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짝퉁 시계를 판 돈은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스무 살 딸의 소주값으로 휘리릭~

지가 무슨 인생의 쓴맛을 봤다고

몇 날며칠 성인인증 선전포고를 해댔다.

모든 게 허깨비 같다.

그 사람(짝퉁 구매자) 어때 보여?
나이는 사십 대 중년이고 체격은 왜소해

허깨비 중년 남자가 짝퉁 시계라도 차고 폼을 잡게 되면 다행이다.

길을 가다가 번쩍 거리는 손목시계를 찬 사람을 보거나

자기 손목을 자꾸 때리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돌아볼 것 같다.

당신은... 혹시... 공유가 나왔던 도깨비가 아니라...

짝퉁을 공유한 허깨비 아니신가요?




놓쳐 버린 건 뭐든지 아쉽다.

코앞에서 놓쳐 버린 버스, 놓쳐 버린 사람, 놓쳐 버린 세월과 기회들.

당근 중고마켓에서 단 몇 초 만에 '펜더'를 놓쳐버렸다.

중국으로 날아간 푸바오 판다 이야기가 아니다.

수백만 원짜리 명품 펜더 기타가 단돈 수십만에 나와서 흥분 중인 오드럼.

설마 그럴 리가? 짝퉁이겠지
내가 전문가인데 그걸 모를까?
시리얼 넘버까지 다 있다고
요즘 짝퉁을 모르시는구먼.

요즘 짝퉁은 시리얼 넘버뿐만 아니라 제품보증서까지 다 있다.

오드럼이 웃돈을 얹어 주겠다고 제안까지 했으나

펜더기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새 주인에게 날아갔다.

얼마나 아쉬웠으면 떠나간 연인을 생각하듯 하루 종일 '펜더' 기타 생각이다.


한 밤중에 거실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기타를 치며 열심히 작곡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다

제목은 <널 그리며>.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건지 펜더 기타를 그리워하는 건지 모를

정체불명의 자작곡.

방혜연 노래네

방혜연은 오드럼의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이다.

곡이 너무 구려.
이상하게 계속 쌍팔년도 스타일이 되네

오드럼 몰래 긴급작전을 펼쳤다.

-방혜연이나 찾아줘유

콘서트 때 첫사랑인 방혜연이 똭~ 하고 앉아 있으면?

생각만 해도 감동적인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기타 구 씨가 대뜸 이런다.

-죽었슈
헉. 진짜예요?
살아도 죽은 것이여,
죽어도 죽은 것이여
추억으로 묻어유
꼭 만나게 해 주고 싶은데요?
죽었당께
내년까지 꼭 찾을 거예요.
모셔놓고 김성호의 '회상' 연주할 거예요.
추억이 아름다운 거지.
세월에 긁히고 찌들어 추해유.

아무튼 방혜연도 펜더 기타도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드디어 오드럼이 애정하는 작곡가에게 곡이 도착했다.

내가 작사한 <알래스카> 가사로 만든 곡이 도착한 것이다.

음원을 듣고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콩벌레가 되어 또르르 방바닥을 굴러 장롱밑으로 숨고 싶었다.

뭐야? 실력이 이 정도였어?
완전 대 실망이야

좋았던 점은 단지 여성보컬의 흠잡을 데 없는 목소리였다.

근데 노래는 대체 누가 불렀대?
AI, 남성 AI버전도 있어.
들어볼래?
싫어.

AI가 예술의 영역까지 침범한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직접 경험하니 놀라울 뿐이다.

나는 밴드 짝꿍인 기타 구 씨에게 노래를 전송했다.

술이 안 깰 때 들으시면 좋아요.
단박에 깨 드립니다.
술맛이 확 떨어지거든요.

노래를 다 듣고 나서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영화 한 편의 느낌이 나야되는디,
겁나 구리네.

내친김에 퀴즈를 냈다.

노래는 누가 불렀을까요?
저 여자 알아유.
누구예요?
예전에 음악 경연대회 비슷한 거
텔레비전에 기타 치며 노래하는 여자.

그럼 그렇지. 이걸 알아맞힐 리가 있나?

맞추면 제가 쐬주 쏩니다.
목소리가 좀 독특해유.
어디서 봤는디.

그는 몇 번의 기회를 날려 버렸다.

땡. 인간이 아니옵니다. AI. 놀랍죠?
아. 그놈이유? 참 세상.
그놈 아니고 그 년이에요.
사실 저도 AI입니다.
주인님이 하도 바쁘셔서 저를 작동시키셨습니다.

그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온양 아저씨를 너무 놀라게 했나?

에잇. 농담입니다.
아니, 그럼 쐬주 살 생각은 전혀 없던 거 아녀유?
핫한 신문물을 몰라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알래스카> 자작곡의 쓸모는 결국 농담 따먹기의 소재로 전락해 버렸다.

나는 작곡가와 기타 구 씨에게 조카의 음반 곡을 전송했다.

제목은 <사랑 따위>/ 실버베리(유튜브와 네이버 음악에서 검색가능)

작곡가는 커버곡인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

구 씨는 이곡이 백번 낫다는 찐 반응을 내비쳤다.

오드럼이 신뢰하는 작곡가의 곡이 유치 찬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만화주제가에 특화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기가 막힌 멜로디를 찾으려고 흥얼거렸다.

들어봐. 지금 생각한 멜로디야

오드럼이 한참 듣더니 못 들어주겠다고 한다.

나는 이상하게 노래가 자꾸만 동요스러워지네.

그럼 그렇지.

모두 자기가 몸담고 있는 분야는 어느새 스스로에게 스며든다.

작곡가는 만화주제가스럽게 오드럼은 쌍팔년도스럽게,

나는 동요스럽게.

내가 펜더 기타는 죽기 전에 꼭 갖고 싶었는데....
그 기타로 작곡하려고 그랬거든.


우리는 아마추어다.

알래스카 밴드도 아마추어.

살림? 솔직히 프로페셔널해지고 싶지 않다.

요리? 다 귀찮다.

결혼생활? 그거야 말로 아마추어 절대 강자다.

오늘 저녁엔 오드럼이 징징댔다.

자기야! 나 지금 3일째 미역국 먹고 있어.

지금 나는 생리랑 작별 중이라오.

내 몸은 '프로'처럼 많은 걸 생산해 냈다오.


아마추어는 취미 삼아 즐겨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신시사이저 멤버이지만 사실 아마추어축에도 끼지 못할 실력이다.

차라리 '도전자'라고 부르는 게 마땅할지도 모른다.

'구경꾼'에서 '도전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게 겨우 1년이니까.

전문가가 되기 전의 과정이 '아마추어'가 아니다.

나는 전문가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

도전의식을 가지고 순수한 열정과 즐거움으로 임하면 모두 아마추어다.

아마추어라는 말속에 있는 취미가 나를 끌어당겼다.

인생의 즐거움은 취미의 가짓수에 비례한다고

100살 된 하시모토다케시가 말했다.

그가 100살에 책을 내면서 멋진 말을 했는데

나는 그걸 '샛길' 론이라 부른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직면할 것들 속에서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럴 때 '샛길'에 빠져 본 경험이 많을수록

다양한 사태에 대한 대응 능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샛길' 하면 오드럼을 빼놓을 수 없다.

'샛길' 간접체험자인 나는 오드럼 덕분에 삶에 대한 대응력이 커졌다.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가장 극명하게 가르는 것은 뭘까?


그건 바로바로 돈이다.

아마추어는 돈을 못 번다. 아니 오히려 돈을 쓴다.

우리도 엄청 돈을 쓰고 있다.

( 개인 악기 구입비, 레슨비, 연습실 임대료, 유지비등)

그러나 프로페셔널은 돈을 번다.

아마추어가 순전한 자신들의 기쁨을 위하는 것과 달리

프로페셔널 연주자는 연주 활동으로 생계를 꾸린다.

세상만사 돈을 벌겠다고 달려들면 이거 이거 피곤한 일이다.

돈 쓰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쉽고 돈 버는 게 가장 어렵다.

자뻑에 취해 음악 허세 좀 부리면 어때?

음향 볼륨을 최대치로 올리고 틀려도 좋아 마음껏 뚱땅뚱땅.

스트레스받고 병원비로 날리느니 돈 좀 들어도 이런 취미가 낫다.

신나게 침 팍팍 튀기며 노래도 부르고 가끔 고성도 날리고.

'이래서 우리나라에 노래방이 많고 라이브 카페가 많구나'

그러다가 어김없이 누군가 나타난다. 불청객이다.

학교 선배라는 건물주가 지하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분은 같은 건물에 공구상을 운영 중이며 건물 꼭대기는 자택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갓물주가 우리를 단속하러 오시는 거다.

월세도 꼬박꼬박 내고 있다고요. 이러실 거면 왜...

니들 연주 방금 지상으로 삐져나온 거 들었거덩?
나오지 못하도록 해라이!

우리는 종종 연주 전에 갓물주의 동태를 살핀다.

하지만 나는 갓물주의 저주를 풀고 우리의 음악이 지상으로 올라가는 꿈을 꾼다.

은행나무길이 아름다운 현충사 곡교천에서 버스킹 하는 꿈 말이다.

생각만 해도 몸속의 세포가 벌써부터 춤을 추고 난리다.

아마추어면 어때? 당신들에게 돈 달라고 빈깡통을 둘 것도 아닌데..

갓물주가 돌아가고 나면 우리는 욕랩을 퍼붓는다.


아마추어리즘이 다소 부정적 뉘앙스를 갖기도 한다.

프로가 아니라서 받게 되는 평가절하는 아마추어의 숙명이다.

근데 니들이 게 맛을 알아? 밴드 맛을 아냐고?

난 아마추어의 자유분방한 자세와 흥과 멋이 좋다.

프로의 세계는 프로에게 맡기자.

그 세계는 원래 협소하다.

인생 저변을 차지하는 아마추어들의 세계가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그들이 프로를 살린다.

그들이 경제를 살린다.

아마추어들이여! 당신들이야 말로 뭘 좀 아는 사람이라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들이 없다면 프로? 그까짓꺼 별거 아니다

프로들이 남긴 것을 향유할 여력은 아마추어들에게서 나오는 법이다.

아마추어가 갑이다.

끝내 아마추어로 남아 프로들을 소비하련다.


명품처럼 또박 또박 오늘도 흘러간다.

아마추어의 시계는 그냥 흐르지 않는다.

삶을 모래시계처럼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자기 삶의 연료를 찾아내는 사람들.

아마추어(amateur)의 어원은 라틴어 amator (사랑하는 사람)에서 왔다.

아마추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고로 이들이야말로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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