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큰 아이는 6살 입니다.
사교육에 관심이 없는 무책임한(?) 엄마는 지금껏 어린이집 외에 아이에게 돈 들어가는 교육을 시킨 적이 없어요.
일주일에 한번, 하루 15분, 선생님이 눈도장만 콕 찍고 가는데, 한달에 5~6만원 하는 학습지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인터넷으로 2~3만원 하는 워크북을 하서 집에서 한글, 수학, 영어를 직접 가르치는 짠돌이 엄마에요.
공부든 뭐든 당장 능력이 나타나는 '결과'보다 그것을 '꾸준히 하게 하게 습관'을 키워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제 관점에서 보면, 고작 일주일에 딱 하루, 고작 일주일에 15분 하는 학습지가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어요.
한글, 수학, 영어는 엄마가 집에서 충분히 가르칠 수 있지만 예체능은 엄마가 가르쳐 줄 수 없어요. 그래서 올해 5월부터 피아노학원에 보내줬지요.
아이에게 피아노학원이 좋은지 수시로 물어보며, 아이가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면 엄마와 원장님이 작당(?)하여 아이가 좀 더 흥미를 가지고 피아노를 배울 수 있도록 하였어요. 그것이 무엇이든 한번 배우기 시작하면 '실력'이라는 것이 생길때까지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아이가 진짜로 다니고 싶어하는 학원은 '미술'이었어요. 우리집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 하거든요. 미술학원은 추석 이후로 가을부터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추석 이후가 되어버렸지요.
아이가 태어나면 여기저기서 용돈을 보내줍니다. 시댁에서도 돈을 주시고 친정에서도 돈을 보내줘요. "아이 옷이라도 한 벌 사 입혀라." 라고 하시지만, 사실 옷 열 벌은 살 수 있는 돈을 보내주시죠.
그래서 아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그렇게 받은 용돈들을 차곡차곡 모아 주었어요. 명절이나 생일마다 받은 돈을 모았더니, 그 돈이 벌써 600만원이 넘더라구요. (엄마 아빠의 용돈 통장에는 10만원도 없는데 말이죠... ㅎㅎㅎ)
"엄마~ 엄마~
추석이 지났어요! 그럼 나 이제 미술학원 가는 거에요?"
"그러엄~!
안그래도 엄마가 미술학원 원장님한테 말씀드려놨어. 다음주부터 미술학원 가면 돼."
"와아~ 감사합니다 엄마!"
"그런데 솔아, 학원에 다니려면 돈이 필요해.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도, 피아노학원도, 미술학원도 다 돈이 있어야 다닐 수 있는거야. 그래서 엄마 아빠가 토요일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야. 우리 솔이 람이 배우고 싶은 것 다 배우게 해주려고 말이야.
솔이 어린이집 특별활동비랑 피아노학원비는 엄마 아빠가 열심히 번 돈으로 보내주는게 맞아. 그런데 미술학원은 솔이의 용돈을 모아서 가는 거란다. 이번 추석때도 솔이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용돈 많이 받았잖아. 그 돈을 엄마가 은행에 다 저축해 두었거든. 솔이가 지금까지 살면서 받은 용돈을 다 저축해 두었어. 그렇게 저축한 돈으로 솔이 미술학원 다니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 아빠 돈이 아닌 너의 돈으로 미술학원을 다니는 거지.
이건 정말 굉장한 거야! 어린이집 가서 자랑해도 돼! 자부심을 느껴도 되는 거야!"
"와~ 정말요? 와아아아~!!!"
저희집에서는 요즘, 아이들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면 이렇게 말합니다.
"솔아, 장난감을 사려면 돈이 필요해. 돈이 있다고 다 써버리면 솔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된단다. 장난감이 갖고 싶다고 그때마다 사버리면 솔이는 미술학원을 갈 수 없게 돼. 장난감 사는데 돈을 다 써버렸으니까. 솔이는 장난감이 더 좋아, 미술학원이 더 좋아?"
그러면 아이는 장난감을 깨끗하게 단념해요.
"엄마~ 저는 미술학원이 더 좋아요!
장난감은 집에 있는 걸로 가지고 놀게요."
사실은 집에 돈이 없어요.
가세가 많이 기울었거든요.
우리집은 올해 초, 생각지도 못한 풍파를 겪어야 했어요. 대출 하나 없이 매달 적금이 불어나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던 우리가족은, 갑자기 들이닥친 대출이자의 파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요. 열심히 노력하고 제법 아끼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일이 되어 버렸어요.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져서 아이 피아노 학원도 끊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었어요. 그때 남편이 그러더군요. "내 용돈을 없애더라도 아이 피아노 학원은 끊지 말아요. 그건 정말 내 마지막 자존심이에요. 제발 나 비참하게 하지 말아줘요." 라구요...
저도 어린시절 엄청나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어렸을 때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우리집에 돈 없다. 돈 없어서 못 준다. 학생이 교과서만 있으면 되었지." 였어요. 그래서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져도 아이들에게 "돈 없다."는 말은 하고싶지 않았어요.
아이들의 용돈은 차곡차곡 모아서,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주고싶었어요. 제가 이십대였을 때, 돈 한푼이 없어서 정말 정말 힘들었거든요. 우리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 꿈을 접는 일은 없길 바랐어요. 돈이 없어서 잠을 못 자고 알바지옥에 빠지는 일도 없길 바랐어요. 그래서 아이들 용돈 통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었어요.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었죠.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지 못하고 자라다가 성인이 되었을때 이천만원 정도의 돈이 갑자기 생기는 것 보다, 자신의 명의로 모은 용돈으로 자신의 학비에 보태며 시기에 맞게 꿈과 실력을 키워가는 것이 훨씬 가치있고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아이에겐 설명만 잘 하면 되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도 천차만별이니까요. 부모는 돈을 벌어 자녀를 교육하고 양육할 의무도 있지만, 돈의 관념을 올바르게 심어주어 스스로 돈을 벌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줘야 하니까요.
지난달까지만 해도 아이가 원하는 미술학원에 보내줄 수 없을 것 같아서 불안했어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했더니 다행히 아이도 남편도 다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네요. 아이의 통장을 헐어 쓰면서도 남편과 저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되었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