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이름은 부모의 강력한 기도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이름은 제가 지었습니다. 문학을 좋아했던 저는 소설을 쓰기 위해 어릴때부터 이름 짓는 것을 좋아했어요.
나중에 커서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들의 이름도 내가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첫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의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이의 이름을 '감히' 제가 지어도 될지 약간의 걱정은 있었죠.
사주나 팔자에 대한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전통을 중시하고 혈연을 중시하고 집안의 중요한 일은 가장 높은 어른들이 결정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문화니까요.
저희집엔 시아버님이 안계세요. 제가 시집오기 6년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제가 아이의 이름을 고민하자 남편과 시엄마는 '그 이름 괜찮다, 그건 좀 별룬데?' 하는 의견을 보태주었어요. 누구도 '왜 네맘대로 이름을 정해?' 라거나 '아이 이름은 철학관에서 짓자' 라며 반대하지 않았어요.
어머님은 "내가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도 너희들 아버지가 붓펜으로 이름을 써가며 아이들 이름을 고민하셨지" 라며 추억에 잠겼어요.
첫째와 둘째의 이름은 모두 제가 지었어요. 한글이름이고 외자에요. 특별하지만 너무 튀지 않는, 부르기 쉽지만 너무 흔하지 않는, 그런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어요.
첫아이 '솔'은 소나무라는 뜻이에요.
둘째 '람'은 쪽빛새벽하늘 이라는 뜻이죠.
등산을 다니며 삶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된 저는 산행 중 저에게 희망을 줬던 대상을, 아이의 이름에 담고 싶었어요.
소나무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제 빛을 잃지 않아요. 그래서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짙은 안개가 낀 날처럼, 세상 모든 것들이 제 빛을 잃어갈 때 그 어두운 산에서 홀로 청청한 빛을 발산하죠. 제 아이도 그런 삶을 살길 바랐어요.
세상이 바뀌고 삶이 힘들어도 본연의 빛을 잃지 않는 사람, 제 안의 빛으로 스스로의 길을 밝히고 주변에까지 한결같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그런 인생 말이죠.
지금처럼 추운계절에 깊은 새벽하늘을 바라보신 적 있나요? 새벽하늘은 결코 어둡지 않아요. 하나의 커다랗고 깨끗한 쪽빛이 눈 앞 지평선에서부터 등 뒤의 세상까지 모두 감싸 안아주고 있죠. 그 쪽빛의 품 안에서 만물은 피로를 풀고 다시 살아갈 기운을 채우는 거에요. 제 아이도 그런 삶을 살길 바랐어요.
세상 어느곳이든 평등하게 내려앉는 쪽빛의 새벽하늘 처럼,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관대하고 포근하게, 삶에 장애물을 만나게 되더라도 언제금 다시 에너지를 채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인생 말이죠.
아이의 이름에는
그 이름자 뜻대로 살길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담아
아이의 이름을 불러줄 때 마다
그것은 아이를 향한
강력한 기도가 되는 셈이죠.
줄 것 없는 엄마는 오늘도 아이의 이름을 정성껏 불러주는 것으로 모든 기도를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