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의 용기와 용서

by 파란동화


벌써 한 달도 더 전의 일입니다.




그날 따라 6살 첫째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가족 한명 한명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짜증을 내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받아주다가 중간엔 엄하게 경고하다가 마지막엔 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솔아, 오늘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 있었어?

왜 이렇게 계속 짜증만 내는 거야?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예전에도 몇번 이런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아이는 펑펑 울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었습니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게임을 하는데... 내가 공주를 하고 싶었는데 나는 공주를 못하고 ㅇㅇ이만 계속 공주를 했어... 엉엉엉...."




혹은




"오늘 어린이집에서 역할놀이를 했는데... ㅇㅇ이가 다른 애들이 엄마역할을 할 때는 말도 잘 듣더니, 내가 엄마 할 때는 계속 말도 안 듣고 날 힘들게 했어... 엉엉엉..."




그래서 이번에도 이런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마음이 상한 것이 있는 모양이다 싶어서 가볍게 질문을 던진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제 아이의 대답은 무척이나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엄마... 엉엉엉... 오늘 ㅇㅇ이가 날 때렸어... ㅇㅇ이가 발로 내 눈을 이렇게 팍 때렸어... 엄마 나 너무 아프고 무서웠어. 엉엉엉..."




"뭐? 발로 눈을 때렸다고?


그게 사실이야?"




저는 아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손으로 눈을 맞은 것도 아니고, 발로 다리를 걷어 차인것도 아닌, 발로 눈을 맞다니요? 저로써는 도저히 상상도 안되는 일이었죠.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아이들끼리 놀이를 하다가 실수로 부딪혔다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엉엉엉... 응... ㅇㅇ이가 그랬어. 그거 말고도 세번이나 더 때렸어. 얼굴도 이렇게 때리고 어깨도 이렇게 때리고 발로 내 다리도 이렇게 때리고... 그런데 나 너무 무서워서 아무말도 못했어. 내가 소리 지르면 걔가 더 때릴까봐..."




저는 놀라서 아이의 어린이집 알림장을 살펴 보았어요. 알림장에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적혀있지 않았죠. 낮에 선생님께 전화가 온 것도 없었구요.




"솔아. 니가 그렇게 맞는 거 선생님도 보셨어?"




"응... 봤어..."




"선생님은 뭐라고 하셨어?"




"ㅇㅇ이가 발로 내 눈 때렸을때 선생님이 엄청 화냈어. 선생님이 ㅇㅇ이를 엄청 큰소리로 야단쳤어. 그러고나서 어깨랑 다리는 나중에 맞았는데... 그건 선생님이 못 봤어..."




거의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저는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아닌 카톡을 드렸습니다. 우리 아이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를 여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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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선생님은 카톡을 보자마자 바로 전화를 주셨어요. 그리고... 우리 아이가 한 말이 다 사실이라며 미리 말씀 못드려 죄송하다고 하셨어요. 저는 부들부들 떨리는 감정을 애써 진정시키며 대답하느라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가 지난주에 새롭게 들어온 아이인데, 아이가 예민하고 어린이집에 적응을 잘 못한다고 말씀 하셨어요. 우리 아이뿐 아니라 어린이집의 모든 아이들이 그 아이에게 한두번씩 다 맞았고, 그래서 더욱 신경 쓴다고 썼는데도 이런 일이 생겼다며 죄송하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미리 말씀 못 드린것도 죄송하다고요.




"둘이서 장난감을 갖고 싸우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솔이 말로는 가만히 있다가 맞았다고 하던데요."




"그건 아니구요 어머니... ㅇㅇ이가 거절 당하는 것을 좀 못 견디는 아이에요. 그 아이가 솔이한테 같이 놀자고 했는데, 솔이가 그림 그린다고 집중해서 대답을 못 했나봐요. 그러니까 ㅇㅇ이는 자기가 거절 당했다고 생각하고 그 분노를 못 이겨서 때린 것 같아요..."




제가 최근에 육아서를 읽으며 미리 공부하지 않았다면 예전 성격으로 길길이 날뛰었을 것 같아요. 상대 아이 부모에게 전화해서 큰 소리로 화를 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최근에 육아서와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선생님의 고충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어요. 저는 그 아이의 부모가 아이의 이런 성격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그것이 궁금했어요.




"오늘 있었던 일,

ㅇㅇ이 부모님께도 말씀 안하셨나요?"




"네... 아직..."




"꼭 말씀하셔야 할거 같아요.

이런 일을 아이 부모가 모르고 넘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거 같아요."










선생님과 전화를 끊었지만 해결된 건 하나도 없었어요. 이 모든 일이 사실이라는 것만 확인한 셈이었죠. 그런데 잠시 후, 이번엔 원장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원장선생님께서도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저와 아이에게 사과 하셨어요. 그리고 새로 온 친구에 대해서도 더욱 신경 쓰겠다고 하셨죠.




"어머니, 저희도 그 아이를 지켜보고 있거든요. 솔직히 그 아이 들어오고 나서 모든 선생님들이 다 힘들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아이를 내보낼 수는 없거든요. 아이 부모님과 얘기해보고 아이가 개선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이상행동을 한다고 해서 전적으로 아이탓만 할 수는 없거든요. 저희가 노력을 아무리 해도 개선될 여지가 없고, 어린이집의 다른 아이들이 너무 심한 공포와 피해를 입는다면 이후엔 저도 결단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기다려주세요. "




저는 원장님의 이런 결정이 무척이나 마음에 와닿았어요. 평소에도 인격이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여지없이 '참 좋은 원장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전화를 끊고 거실로 나와 제 아이에게 선생님들과 통화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었어요. 남편도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죠.




"솔아, 선생님이 ㅇㅇ이 많이 야단 쳤다던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또 그러면 가만 안 있는다고, 엄청 야단 쳤다던데."




"응. 선생님이 ㅇㅇ이 10번 야단쳤어.

어... 100번 야단쳤어."




"그러면 선생님이 100번이나 솔이 편을 들어준거잖아! 안 그래?"




"응. 맞아. 어... 그리고... 다른 친구는 나 안아주고, 또 다른 친구는 여기 앉으라면서 나 도와줬어."




"솔아, 물론 ㅇㅇ이한테 맞았던 건 절대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이 모두 솔이 편을 들어준 건 정말 좋은 일이다. 그치?"




"응. 맞아 맞아."




아이는 그제야 자기가 입은 피해와 고통뿐 아니라, 자기가 받은 위로와 관심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았어요.




"솔아, 선생님이 ㅇㅇ이한테 다시 한번 주의 주신다고 했어. 그래도 혹시 ㅇㅇ이가 또 솔이를 때리면 그땐 솔이가 선생님한테 꼭 얘기해야 해. 이건 고자질이 아니야. 선생님이 말해달라고 하셨으니까 말해야 하는 거야. 알았지?"




그랬더니 어느정도 진정 되어가던 아이가 다시 우레같은 울음을 쏟아내는게 아니겠어요.




"으어어어엉... 엄마... 나는 ㅇㅇ이가 너무 무섭다구... 아무말도 못하겠단 말이야... 엉엉엉..."




"알았어, 알았어. 안 해도 돼.

선생님한테 더 신경써달라고 부탁 할게.

괜찮아, 괜찮아."




저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어요.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렇게까지 울까, 얼마나 무서웠으면 선생님께도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고민하고 있었을까... 아이가 안쓰러워 그저 안아주기만 했습니다.










다음 날, 하원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선생님, 오늘 우리 솔이 괜찮았나요? ㅇㅇ이 보고 너무 무서워하지는 않던가요? 둘이 대화는 하던가요?"




그랬더니 선생님은 아주 밝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어머니. 오늘 둘이 아주 잘 지냈어요. 솔이가 먼저 ㅇㅇ이에게 '우리 같이 놀자, 이리 와.' 라고 했어요."




"네? 솔이가 먼저요?"




"네, 어머니! 그랬더니 ㅇㅇ이도 솔이를 잘 따랐어요. 둘이서 함께 놀이도 하고 아주 잘 지냈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아이를 불렀어요.




"솔아, 솔아~ 오늘 솔이가 먼저 ㅇㅇ이에게 '같이 놀자' 했다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생각을 다 했어? 어제는 ㅇㅇ이가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고 했잖아."




"음... 그냥, 내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ㅎㅎㅎ 용기를 내어서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응."




"그럼 ㅇㅇ이 용서한 거야?"




"응. 내가 용서했어. 그리고 같이 놀았어."




"우와~ 우리 솔이 진짜 멋지다! 엄마는 솔이의 용기와 용서에 감동 받았어! 어제는 그렇게 울더니 어떻게 하루만에 이렇게 용감해졌지?"




아이는 뿌듯해하며 어깨를 으쓱 했어요. 저는 이 사실을 아이 할머니에게도 알리고 아빠에게도 알렸습니다. 그 말을 전할때마다 일부러 아이 들으라고 큰 소리로 얘기하고, 할머니와 아빠에게 아이의 용기와 용서를 칭찬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그 날 잠자리에 누워서도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앞으로도 이렇게 멋진 용기와 용서를 보여달라고 말했습니다.




이후로도 가끔씩 저는 아이에게 어린이집에서 누구랑 제일 친한지, 누가 제일 싫은지를 물어봤어요. 콕 찍어서 'ㅇㅇ이가 너 괴롭히지 않니? ㅇㅇ이가 너 때린 적은 없니?' 라고 물어보면 'ㅇㅇ이=나쁜아이'라는 인식이 성립될까봐 나름 고심해서 질문한 것이었어요.




아이는 좋아하는 친구를 얘기할 때 어린이집 친구들 이름을 전부 다 나열하고 '싫어하는 친구는 없어' 라고 대답하거나, '그런데 ㅇㅇ이는 정말로 장난이 심해' 라고 대답했어요. 그러면서 ㅇㅇ이가 자신에게 어떤 짓궂은 장난을 쳤는지 설명했죠. 다행히 그날 이후로 ㅇㅇ이든 누구든, 친구에게 맞은 일은 없었던 모양이에요.










문제의 그날, 남편과 저는 아이가 울면서 쏟아내는 얘기를 듣고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무엇을 어찌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았어요. 몸과 함께 정신까지 마비된 듯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결정과 행동을 보여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죠.




그날은 우는 아이를 달래고 안심 시키는 것이 우선이었어요. 어떤 나쁜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가 지켜주고 도와줄 것임을 인지시키는 것이 우선이었어요. 아이를 지켜주고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더이상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남편은 오전 9시에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새벽에 출근하면 퇴근 전까지는 전화 한 번 없던 사람이 한창 일할 시간에 전화를 걸어온 거에요.




"여보, 어린이집에 전화 해 봤어요?"




"아니요. 지금 어린이집 차량 운행할 시간이라 선생님들 정신 없어요. 나중에 오후에 전화 해보려구요."




"음... 그래요... 그런데... 괜찮을까?"




저는 밤 사이 정리했던 생각을 남편에게 얘기했어요.




"여보. 우리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도 어릴때 친구를 때리기도 하고 친구에게 맞기도 하면서 그렇게 컸잖아요. 물론 솔이가 좀 심하게 맞긴 했지만... 우리 좀 더 지켜보기로 해요. 그 아이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원장선생님과 그 아이 부모를 만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겠죠. 하지만 아직 그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여보... 이런 일들이 우리 아이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기회라고 생각합시다. 고난과 역경이 없는 인생이란 없잖아요. 이런 저런 나쁜일을 전혀 겪어보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버리면 그게 더 문제잖아요. 아이가 자랄수록 다른 어떤 능력보다 나쁜 일을 겪었을때 그걸 헤쳐나갈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이 함께 자라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우리 아이가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해요. 이미 일어난 일이잖아요. 선생님들이 이런 일 또 생기지 않도록 신경 쓰신다고 했으니까, 우리는 아이의 마음에 이 일이 상처로 남지 않도록 신경쓰기로 해요. 알았죠?"




다행히 남편도 제 말을 수긍했어요. 그리고 다행히도 그날 제 아이는, 부모의 생각보다 훨씬 멋진 용기와 용서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구요.










우리의 살아온 인생이 증명하듯, 인생에는 결코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어요. 우리도 다 겪어왔듯 우리의 아이들도 다 겪으며 살아갈 일들인데, 부모가 되면 그 모든 일들을 볼록렌즈로 들여다 보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들도 처음 겪는 일이 당황스럽고 두렵긴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니 아직 어린아이인 우리의 자녀들은 두려운 마음이 더욱 크겠죠. 처음엔 그저 무섭고 떨려서 우는 것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했던 아이도, 다음날엔 아무일 없었던 듯 상대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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