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마음도 생기게 하는 사랑고백의 마법

시엄마와 며느리

by 파란동화


몇 년 전에 남편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랑 나 다 합쳐서 우리에게 부모님은 엄마 한명 뿐인데 우리가 더 잘하자. 엄마 돌아가시고 나면 우린 진짜 고아가 되는 거잖아."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두려움이 훅 끼쳐왔어요. 시엄마가 돌아가시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함께 밥 먹고 전화해서 안부는 묻는 작은 일부터, 어버이날이 되어도 챙겨드릴 부모가 없게 되리라는 공허함을 거쳐, 명절과 집안의 대소사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어른 없이 우리가 모든것을 처리해야 한다는 공포가 점점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평소엔 깨알보다 작은 점으로 일상에 전혀 불편을 끼치지 않던 '그 작은 두려움'이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와 제 눈 앞을 다 가린 기분, 분명 깨알보다 작은 점이었는데 그것에 동공이 가리우니 모든 세상이 그것으로 다 덮여보이는 기분, 느껴본 적 있으실까요?



100세까지 무병장수할 수도 있지만, 내일 당장이라도 사고로 운명을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에요. 그러니 사람의 앞날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특히나 저는 어릴때부터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너무나 자주 봐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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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그런 대화를 주고받은 며칠 뒤, 시엄마랑 통화를 할 일이 있었어요.



"어머니, 며칠 전에 남편이랑 얘기를 하는데 남편이 그러는 거에요. 우리가 엄마에게 더 잘하자구요. 엄마 돌아가시면 우리 부부에게 부모님은 아무도 없게 된다구요. 그 말 듣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그러니까 어머니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어머니 돌아가시면 우리가 누구에게 의지해 살겠어요."



통화를 하며 저도 울고 시엄마도 울었어요.



그때부터 였던거 같아요. 어머니가 저를 며느리 이상으로 정말이지 딸처럼 친근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이요.



그 전에도 우리는 나름 살가운 고부관계였지만 그래도 시엄마라는 어려움, 그래도 며느리라는 조심성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날의 통화 이후로 눈에 보이지 않던 그 얇은 막이 녹아 없어진 것 같았어요. 어머님이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도 집안의 청소상태나 뒷일 걱정없이 그저 반가운 마음이었고, 어머님은 제가 없는 우리집에서 청소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딸집을 찾아온 엄마같았죠.



그래서 우리는 합가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연애하는 커플들이 빨리 결혼해서 만나고 헤어져야 하는 불편을 덜고 싶어하는 것처럼, 우리도 빨리 합가해서 이집 저집 왕래해야 하는 불편을 덜고 싶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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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거에요. 좋은 감정이 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놔두지 않고 반드시 표현을 한다는 것이에요.



어릴땐 그걸 몰랐어요. 감정이 메말랐고 표현에 서툴렀죠. 좋은 감정이 들어도 표현할 방법을 몰랐고, 그런걸 굳이 표현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살아보니 알겠어요. 겪어보니 더욱 선명히 알겠어요.




좋은 감정이 들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굳이' 표현해야 하는 것이
맞아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각자의 결핍을 안고 살아가요. 누구나 칭찬받고 싶고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해요. 그런데 그런 것이 아주 큰 것이어만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모든 것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돼요. 그 작은 씨앗이 자궁에서 자라 결국 180cm가 넘는 커다란 사람이 되는 것처럼, 서로에 대한 감정도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 결국은 무엇으로도 깨지지 않는 단단한 결속이 되는거에요.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 사랑의 감정은

"오늘 커피 참 맛있네." 처럼

아주 사소한 말로부터 시작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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