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진정한 여행은 히치하이킹으로 완성된다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by 파란동화


군부대를 벗어나자 드디어 국도를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산채비빔밥을 파는 식당도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팠던 나는 일단 식당으로 들어갔다. 산채비빔밥을 주문해서 밥과 반찬을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었다. 평소 내 식사량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양을 한번에 먹어치운 것이다. 그리고 식후 믹스커피를 마시며 지도를 펼쳤다.



통제구간은 모두 건너뛰고 개방구간으로만 가자면 일단은 설악산 국립공원으로 진입해야 했다. 설악산의 백담사로 올라가서 마등령부터 다시 대간을 이어가면 될것 같았다.



식당주인 아주머니께 용대리로 가는 버스가 몇시쯤 오는지 여쭈니, 그 버스는 조금 전에 떠났고 다음 버스는 세 시간이 지나야 올 거라고 하셨다. 하아... 세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나...



3시간 후 버스를 타고 백담사에 도착하면 다시 등산을 시작할 시간쯤엔 이미 해가 지고 있을터였다. 어제의 칠흑같은 어둠을 경험했던 나는 산행 중 해가 지는 것은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살면서 히치하이킹은 한번도 해본적 없었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시골 사람들은 모르는 행인도 잘 태워주는 것 같았다. 나는 식당에서 나와 설악산 방향으로 국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국도를 걸으며 차가 오나 안오나 수시로 뒤돌아보았다. 한적한 시골은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었지만 조금 걷다보니 차가 한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까만색 승용차였다. 나는 택시를 잡듯 손을 들었다. 하지만 차는 멈추지 않고 쌩하니 지나가버렸다.



앗! 뭐지?

못 봤나? 내가 너무

소심하게 손을 들어서 못 봤나봐.

다음엔 더 크게 팔을 흔들어야지.




SE-fafa504e-a2a0-4a3f-8392-61386195613d.jpg?type=w1 © dj_david, 출처 Unsplash




조금 걷다보니 또다시 차 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엔 흰색 트럭이었다. 나는 아까의 부끄러움을 떨쳐내고 운전자가 나를 못 보고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크게 크게 팔을 휘저었다.



다행히 트럭 운전자는 속도를 줄여 멈춰주었고 창문을 내려 무슨 일인지 물어봐주었다.



"안녕하세요~

백두대간 종주 중인데요,

설악산 백담사를 가야하는데

용대리까지만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그들은 흔쾌히 오케이 했고 조수석에 앉아계시던 분은 운전석으로 더욱 밀착하여 내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배낭이 너무 커서 안되겠는데?

배낭을 트럭 짐칸에 실어요."



나는 배낭을 트럭의 짐칸에 던져두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배낭을 올리며 보니 내가 신세 질 트럭은 '공무수행' 이라고 적힌 국립공원소속 차량이었다.



"미안한데 우리가 시간이 넉넉치 않아요. 백담사까지는 안될 거 같고 백담사 들어가는 셔틀버스 승차장까지 태워줄게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버스도 없는 이 막막한 국도에서 태워주신 것만도 감사할 일인데 국립공원 아저씨들은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 하셨다.



"그럼요. 그럼요. 죄송하다뇨. 오히려 너무나 감사해요. 저는 셔틀버스 승차장이 어딘지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아가씨 혼자서 백두대간을 하는 거에요? 와, 대단하네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제부터 시작했는데 첫날부터 길을 잃어서 엉뚱한 곳만 헤매다 겨우 살아난걸요. 백두대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여기서 아저씨들 만난것 보면 진짜 제가 한심해요. 지도도 방향도 볼 줄 모르고..."



"거기서 길을 잃은게 다행인거에요. 길을 잃지 않고 그대로 신선봉까지 갔으면 통제구간에서 국립공원 직원에게 딱지를 떼였을거고, 첫날부터 딱지를 받으면 얼마나 짜증나는지 알아요? 통제구간에서 적발되면 엄청 호되게 야단쳐요. 더이상 등산도 못하게 그 길로 하산시킨다구요."



"아..."



통제구간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던 나는 아저씨들 말씀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첫날부터 산에서 길을 잃는 것 보다 첫날부터 산에서 딱지를 떼고 강제로 하산하는 것이 더욱 우울하리라. 우울하고 짜증나서 그 길로 바로 서울가는 버스를 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가씨가 어젯밤에 도착한 곳은 대간령이 아니라 아마도 마장터였을 거에요. 거기가 옛날에는 장터였는데 말과 소가 거래되었다고 해서 마장터라고 하거든요. 지금은 그저 야영하는 사람들이나 찾는 곳이 되었죠."



"아! 어쩐지 야영한 곳이 엄청 넓었어요. 그리고 야영한 사람들의 흔적도 많았구요. 그런데 이상하게 등산로를 전혀 못 찾겠더라고요. 진짜 샅샅이 찾아봤는데 산 쪽으로도 계곡 쪽으로도 길이 없었어요."



"마장터는 계곡트래킹으로 올라가는 곳이에요. 보통 야영자들도 다 계곡따라 올라가요. 오늘 아가씨가 내려온 그 계곡 그대로 말이죠. 마장터 윗쪽으로는 전부 국립공원 관할 통제구간이라 일부러 등산로를 만들어놓지 않는 거에요."



내가 그토록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던 계곡은 알고보니 오지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법 유명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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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트래킹이나 오지트래킹에 대한 사전정보만 있었어도 나는 소 뒷걸음질 치다 보석을 찾았다며 즐거워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때는 등산에 입문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나는 등산만 소화하기도 벅찬 새내기였다.



설명을 듣고보니 계곡 위 바위에 뜬금없이 달려있던 산악회의 리본이 이해가 되었다. 그들 역시 계곡따라 올라가며 리본을 달았으니 등산로를 찾을 수 없었던 거였다. 리본을 달아놓은 산악회를 욕했던 마음이 미안해졌다.



"백두대간 종주 응원할게요. 아가씨는 그렇게 말해도 백두대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하는게 쉬운일이 아니거든요. 중간에 포기하고 싶기도 할거에요. 그래도 꼭 끝까지 가보세요. 통제구간은 절대 가지 마시구요! 어제 오늘 아주 잘 했어요."



국립공원 직원들답게 마지막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아저씨들은 나를 백담사 셔틀버스 승차장에 내려주고 매표소의 위치도 알려주신 후 차를 돌려 가던 길을 가셨다. 나는 이토록 성공적인 생애 첫 히치하이킹의 기억으로, 이후 대간종주가 끝날 때까지, 끝나고 난 이후에도, 시골여행과 등산에서는 꼭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게 되었다.



백담사까지는 유료 셔틀을 타고 올라가야 했는데 그 거리가 아찔할 정도로 멀었다. 버스로는 15분이 걸리는 거리지만 걸어서 올라가자면 두시간이 넘는 거리라고 했다. 게다가 얼마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는지 버스가 코너를 돌 때마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이었다.



백담사에 당도하자 진심으로 안심이 되었다. 아침의 계곡에서 벗어나 등산로를 찾았을 때도, 군부대를 통과해 국도를 만났을 때도,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는 아직도 불안한 마음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국립공원의 개방구간에 당도하자 그 불안했던 마음이 싹 사라진 것이다.



아! 국립공원이다.

이제 더이상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



백담사를 여유롭게 거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나를 더욱 안도하게 만들었다.



설악산을 사회과부도의 자료사진이 아닌 실물로 접한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3개월 전 지리산을 오르기 전에는 등산을 해본적이 없었고,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포기해야 했기에 설악산은 근처에도 가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설악산이

설악산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이었다니!



백담사 계곡에서 장관을 이루는 수만개의 돌탑에 이미 마음을 빼앗기고, 수렴동대피소로 올라가는 내내 이어지는 계곡의 옥색 물빛과 설악의 기암이 빚어낸 계곡바위에 또 한번 마음을 빼앗겼다.




SE-8ae08b18-b4c4-4fb1-9aa9-0145c345dc67.jpg?type=w1 설악산 백담사 계곡




오전에만 해도

계곡이라면 치가 떨려!

두 번 다시 계곡을 찾으면 나는 인간도 아니야!

라고 했던 내가



설악산에 들어선지 30분도 되지 않아

설악이 품은 계곡에

넋을 잃고 말았다.



지리산에 갔을때도 여느 계곡과는 달리 깊은 초록빛을 발산하는 계곡의 소(沼)에 빠져들었었다. 그 빛깔이 너무 예뻐서 계속 지리산에 가고싶었다. 그런데 설악산의 계곡 소(沼)도 이렇게나 아름답다니!



지리산의 소沼는 깊은 초록에 가까운 물빛이고

설악산의 소沼는 옥색과 청록의 중간 빛을 띈다.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빛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물 속으로 빠져들게 될까봐 두려울 정도로

극히 아름다운 빛이다.




SE-4a70ecac-7559-46b9-96fc-e8183caf3d0c.jpg?type=w1 지리산 피아골 계곡




넉넉잡고 한시간 반이면 도착한다는 대피소까지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이런 아름다움을 두고 서두르는 자는 벼락을 맞으리라!



백두대간 종주 이틀째

대간길에 오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 길이 나에게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그 기대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대간종주를 결심했을 때는 아무도 없는 산길을 홀로 걸을 수 있다는 기대, 산의 정상을 밟은 후 굳이 하산할 필요없이 원하는 만큼 등산을 이어갈 수 있다는 기대로 심장이 두근거렸을 뿐, 그것이 장차 맞이하게 될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산과 자연을 좋아했지만 지리산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지리산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대한민국에 더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리산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바로 여기

설악에 있었다.








< 오늘의 백두대간 >

고산자 지도/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총 24구간 중
24구간
(남쪽 끝이 1, 북쪽 끝이 24)

진행 구간 : 마장터(강원도 고성과 인제의 경계) - 물굽이계곡 - 인제3250부대 - (히치하이킹으로) 인제 용대리 - (셔틀버스 타고) 백담사 - 설악산 수렴동 대피소(강원도 인제군)

진행 날짜 : 2011년 10월 4일 / 화요일

SE-24d90b1c-ff51-474f-9389-40006989f522.png?type=w1 * 지도 : 고산자의 후예들/ 백두대간24 *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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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 목금 주4일 연재합니다.

다음주 월요일에 다시 만나요~






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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