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등산이 원래 이렇게 스펙터클한 거였나요?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by 파란동화

계곡을 건너기 위해 등산화를 벗었다 신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일반 운동화라도 연이어 벗고 신는 행동은 귀찮은 법인데, 등산화는 목이 길어서 벗을때마다 끈을 풀어야 했고 신을때마다 다시 끈을 묶어줘야 했다.



그래서 어느 결엔가 더이상 등산화를 신지 않게 되었다. 물 속을 걷다가 물 밖 바위를 걸을땐 매끈한 바위덕에 오히려 맨발이 기분 좋았고, 물 속을 걷다가 물 밖 흙길을 걸을땐 어차피 또 물 속을 걸어야 할테니 걱정이 없었다.



그러다 그만 그 녀석을 만나고 말았다!

요염하게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는 녀석!

주변 풍경을 보다가 발치를 내려다 본 순간, 나의 맨발을 조준하며 어디를 물까 고민하는 뱀의 머리가 보였다.



헉!!! 주변 풍경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한 발을 더 내디뎠으면 그대로 녀석의 주둥이가 나의 발에 박혔을 것이었다. 머리칼이 쭈뼛거린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나는 급하게 뒷것음질을 쳤다.



다행히 녀석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은 상당히 널찍한 바위여서 나는 천천히 등산화를 신고 녀석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가을뱀은 독이 오를대로 올라있다고 들었다.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에 영양분을 비축해야 하기에 가을뱀은 특히 독이 강하며 그래서 까딱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수도 있다고. 이후로도 등산을 하며 뱀을 만난적은 숱하게 많았지만 그때처럼 큰 뱀은 만나지 못했다.



아 젠장... 이놈의 계곡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지도를 봐도 나의 위치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 어제 내가 잠이 든 곳이 어디였는지, 오늘 아침 내가 출발한 곳이 어디였는지도 모르는데 지금의 위치를 어찌 알겠어.



또다시 절벽에 가로막혀 등산화를 벗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직전의 사건으로 등산화를 벗는 것도 무서워진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계곡 바위에 앉아 양갱을 우걱 씹었다.



아... 젠장... 배고픈데...

반찬도 없고...

밥맛도 없고...

아... 귀찮아...



계곡을 걷기 시작한지는 두시간 반쯤 지났고 아침식사로부터는 세시간 반이 지나고 있었다. 평소에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끼니도 챙겨먹지 않아서 하루 두 끼 식사 외에 간식도 거의 먹지 않던 내가, 고작 세시간 반 만에 허기가 진 것이다. 평소와 같이 밥을 너무 적게 먹은것이 문제였다.



평소처럼 한공기도 안되는 밥을 아침이라고 먹었다. 반찬은 하나도 없었고 오뚜기 말린국 블럭을 물에 넣어 끓인 국이 전부였다. 게다가 어제 저녁에도 밥을 먹지 못했고. 산채나물 정식이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나는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 와중에도 먹고싶은 것은 산나물이 유일했다.



앗! 그런데

저게 뭐지?



맛도 모르고 멍하니 양갱을 우걱거리던 나의 눈에 뭔가 빨간 물체가 잡혔다. 아니 저것은, 아니 저것은? 꺄악~!!! 산악회의 리본이다!!! 꺄악~~~ 살았다 살았어!!! 저기에 등산로가 있는 것이 틀림없어!! 드디어 길을 찾았다!!!



나는 급하게 남은 양갱을 입 안에 밀어넣고 등산화를 벗어 계곡을 건넜다. 건너편의 커다란 바위 위에 누군가 남기고 간 산악회 리본이 팔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계곡의 비탈을 딛고 바위 위로 올라가는 게 진땀나게 어려웠지만 등산로를 찾았다는 기쁨에 그 무거운 박배낭을 메고 기어이 바위를 기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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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백두대간 종주팀의 리본이 아닌 일반 산악회의 리본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이곳 역시 누군가 다녀간 길이었다. 살았다! 역시 이곳도 등산로가 있는 산이었던 거야. 내가 방향을 몰라서 등산로를 찾지 못했을 뿐이었던 거야.



그런데



저 리본을 달아놓은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리본이 달린 주변에도... 길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저 리본을 달아놓은 사람은 땅에서 솟아나서 하늘로 사라진 모양이었다. 허탈함이 말도 못하게 밀려왔다. 서울로 돌아가면 어떻게든 저 산악회를 찾아서 멱살을 잡고 따질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산악회의 빨간 리본에 속은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에너지가 급격히 소진되기 시작했다. 체력도 없고 기운도 없었지만 이 차가운 계곡물을 다시 건널 용기가 더욱 없었다. 가을의 계곡물은 정말이지 심장이 얼 정도로 차가웠고 나는 내 발이 동상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을 해야할 지경이었다.



길이 없어도 어떻게든 산비탈을 헤치고 나아가기로 했다. 비탈을 지나가려니 다시 어제처럼 무릎이 후들들 떨렸다. 그러고도 절벽에 가로막혀 두 번이나 더 계곡물을 건너야 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지만 않아도 좋겠어, 라는 생각으로 비탈을 헤치며 나아가다가



드디어!

드디어!

길을 발견했다!!!

꺄아아아아~~~!!!!



이것 역시 가다가 끊어지는 길일까봐, 사람이 만들어낸 등산로가 아닌 우연히 빗물이 만들어낸 길일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걸었는데 웬걸! 길이 없어지거나 좁아지지 않고 점점 넓어지는 게 아닌가!



살았다!

진짜 등산로를 찾은거야!

드디어 찾았어!



기쁨에 겨워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다가 저기 앞에 무언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거의 혼절할 지경이었다. 표지판은 등산로 입구쪽을 향해있는 듯 내려가는 방향에서는 뒷면만 보였는데, 그래서 그것이 무엇을 설명하는 표지판일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제발 '산불조심' 따위가 아니기를!

제발 '등산로 안내' 표지판 이기를!

제발 제발~!!! 하며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본 표지판은

다름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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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맨발로 만났던 독사보다

더욱 지독하게 나의 뒷통수를 가격한 이 녀석.



지뢰라니... 지뢰라니...

부비트랩이라니... 그러면 나...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거야? 그런 거야?



급하게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던 독사와 달리, 이 녀석은 나를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 어떡해야 하지? 나 어떡해야 하는거야?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또다른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적어도 이 표지판과 저 표지판 사이는 안전할거라는 생각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두번째 표지판은 다행히도 지뢰가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곳은 군부대 안이니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사격훈련중에는 총에 맞아도 책임 못지니 사격소리가 들리면 왔던 길을 돌아가라' 고 씌어 있었다.



왔던 길을 돌아가라니...

왔던 길을 돌아가라니...

그 길을 어떻게 돌아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왔던 길을 돌아가느니 차라리 총에 맞고 말겠어! 라는 생각을 0.001초 정도 했던것도 같다. 나는 표지판에 적혀있는 사격담당관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배낭을 내려 2G폰을 꺼냈다.



삼성이 갤럭시S를 출시하고도 일년이 지난 시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게 된 그 시점에 나는 2G폰을 들고 대간길에 나섰다.



3개월 전 가출하던 날 핸드폰을 해지하고 더이상 폰을 만들지 않고 있다가, 대간을 타기 직전에 집에 굴러다니던 옛날폰을 개통해서 가지고 왔던 것이다. 혹시 이 야산에 전화가 터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전화가 연결되었다.




군인 : 여보세요?


나 : 저기요... 백두대간 타다가 길을 잃었는데요... 여기 표지판에 돌아가라고 씌어 있는데 돌아갈 수가 없어요... 어떡해요?


군인 : 지금 계신 곳이 어디세요?


나 : 모르겠어요...


군인 : 지금 계신 곳을 알려주셔야 제가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나 : 글쎄 저도 그걸 모르겠다니까요! 길을 잃었다구요... (이때부터 울기 시작)


군인 : 옆에 다른 분은 안 계신가요?


나 : 네... 저 혼자예요... (훌쩍 훌쩍)


군인 : 아니 왜 혼자 돌아다니세요? 여자분이! 그럼 오늘 어디서 등산을 시작 하셨어요?


나 : 오늘은... 오늘은... 대간령부터 시작했는데... 거기가 대간령인지도 잘 모르겠고... (점점 더 크게 울기 시작)


군인 : 최초에 출발했던 곳이 있을거 아니에요? 거기가 어디에요? 어느쪽으로 가고 있었죠?


나 : 어제 진부령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군인 : 아! 네. 어딘지 알 것 같아요. 사격소리 들리시죠? 거기가 사격장 근처인것 같으니까 제가 사격관리관 핸드폰번호를 알려드릴게요. 사격소리가 더 커지면 전화해서 사격을 멈춰달라고 말하세요.


나 : 네... 감사합니다... (울먹 울먹)


군인 : 울지 마시구요. 이제 마을에 거의 다 왔어요. 힘내세요!


나 : 네... (전화 끊고나서 대성통곡)




전화를 끊고나서 정말이지 대성통곡을 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다가, 배낭을 들쳐메고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계속 엉엉 울었다. 그렇게 울면서도 왜 쉬지않고 걸음을 이어간 것인지 모르겠다. 그때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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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담당관의 예언대로 사격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을 닦고 아까 받아적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사격을 멈춰달라고 요청하고 앞으로 걸어갔더니 멀리 나뭇잎 사이로 과녁 같은 것이 보였다.



나무숲이 끝나자 허허벌판에서 사격훈련을 하고있는 30명 남짓의 군인 무리가 보였다. 혹시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재빨리 그곳을 지나쳤다.



열 살이나 어린 군인들 앞에서 이게 무슨 창피람? 군부대 안을 등산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얼굴은 빨갛고 눈은 퉁퉁 붓고. 정말이지 죽은척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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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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