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지금이 몇 시지?
깜짝 놀라 눈을 뜨니 오전 7시.
알람 소리도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잤다.
대피소 안에는 짐을 싸는 사람이 두어 명, 나처럼 아직도 침낭 안에 누워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황한 나는 눈꼽도 떼지 않고 부랴부랴 배낭을 쌌다.
산에서는 하루가 일찍 시작된다. 보통의 산행자들은 4~5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코펠에 밥을 지어 먹은 후 5~6시면 등산을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3시에 일어나 4시부터 산행을 시작하기도 한다.
보통은 사람들이 일어나 움직이는 소리에 강제 기상을 하곤 했는데 그날은 진심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푹 잠들어버렸다. 다행히도 그전 이틀 동안의 피로가 싹 풀려있었다.
배낭을 모두 챙겨 나와보니 대피소 밖 취사장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니 안도가 되었다.
설악산 수렴동대피소는 지대가 낮아서 대피소 바로 앞에 계곡이 있다. 사람들은 시원한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밥을 짓고 식사를 한다. 밥이 지어지는 동안 멍하니 계곡만 바라봐도 그 낭만과 여유가 참 좋다.
같은 계곡인데 어제의 계곡과 오늘의 계곡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산에서 길을 잃고 계곡 옆에서 잠들었다 깨었던 어제 아침에는 낭만이나 여유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토록 원했던 자연에서의 비박(Biwak) 이었는데 웃음도 나오지 않고 모든 것이 엉망인 것 같았다. 잃어버린 대간길을 다시 찾을 걱정뿐이었다.
그런데 길을 찾고, 모든 것이 완벽한 국립공원에 들어와, 벽과 천장이 있는 아늑한 대피소에서 잠들었다 깨어난 오늘 아침은 낭만 그 자체였다! 아침의 새소리와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시원하다 못해 폐를 간지럽히는 느낌이라니!
나는 드디어 웃음을 찾았다.
지난 이틀 동안 웃음이라곤 엿 바꿔먹을래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국립공원에 들어선 순간 나의 얼굴은 다시 꽃처럼 피어났다.
아침식사는 여전히 오뚜기 간편국이었다. 4박5일의 배낭은 챙겨야 할 것도 많고 그 무게도 보통이 아니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다 내려놓고 반드시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도 가방에 물건이 다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니 음식까지 줄일 수 밖에 없었고, 나는 4박5일 일정 동안 주식으로는 쌀과 오뚜기 간편국 그리고 고추장, 행동식으로는 양갱과 캬라멜 몇개만 챙겼다.
당시의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김치 한조각 없이 매 끼니 간편국만 먹으려니 식사도 의무감으로 해치울 뿐이었다. 맛도 모르겠고 재미도 없는 식사. 하지만 길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먹어야 했다. 그나마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차릴것이 없는만큼 식사가 빨리 끝난다는 것이었다. 설거지할 그릇도 작은 코펠 하나와 수저한벌이 전부였다.
그토록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배낭을 울러맸다. 오늘의 일정은 설악산의 수렴동 대피소에서 희운각 대피소까지 가는 것이다. 오세암을 시작으로 마등령을 올라 공룡능선을 타고 신선대까지 가면, 거기서 40~50분 거리에 희운각 대피소가 자리하고 있다. 설악산의 주능이자 가장 유명한 공룡능선을 관통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연이어진 암봉(바위 봉우리) 들이 공룡의 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공룡능선. 능선의 암봉 갯수만큼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는 코스여서 힘들기로 소문 난 곳이었으며 "나 공룡능선도 탔잖아." 라고 하면 초보등산자들 사이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유명한 곳이었다.
공룡능선이 힘들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그래도 나는 지리산 종주도 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이 도시의 아스팔트가 아닌 등산로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렴동 대피소에서 막 출발하려는데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커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이구! 아가씨, 배낭이 왜 그렇게 커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다.
"저 백두대간 종주 중이거든요."
"오늘 그 배낭을 메고 공룡능선을 탄다고? 괜찮겠어요?"
"하하 모르겠어요. 일단은 가봐야죠."
"오늘 어디까지 가요?"
"오늘은 희운각 대피소까지 가요."
"우리도 희운각에 예약해놨는데. 이따 저녁에 봐요."
배낭이 가벼운 이모님과 아저씨는 종종 걸음으로 출발하셨고, 배낭이 무거운 나는 세월아 내월아 주변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수렴동에서 마등령을 오르기 위해서는 오세암을 거쳐야 한다. 오세암은 정채봉시인의 동화 『오세암』으로 유명한 그 오세암이다. 동화 『오세암』은 설악산 만경대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1986년에 출간된 『오세암』 은 나의 국민학교 시절 필독서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아이들이 읽은 책이었다.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대한민국에 『오세암』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오세암』을 읽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하지만 오늘날의 오세암은 동화책에서 느꼈던 작은 암자는 아니었다. 동화책의 성공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얼마나 많은 시주가 이어졌는지 암자가 본사보다 으리으리하게 크고 화려했다. 오세암의 화려함은 약간 실망이었지만 그 뒤로 펼쳐진 기암절경은 그날 내가 내지른 첫번째 탄성의 주인공이었다.
그 멋진 기암을 바라보며 마등령을 올랐다. 그런데 감탄을 하던 것도 잠시, 오세암에서 마등령으로 치고 올라가는 오르막이 얼마나 가파른지, 얼마 안가 풍경이고 나발이고 고개를 땅에 쳐박고 오로지 발끝만 바라보며 등산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도 가도 지나온 길보다 가야할 길이 훨씬 많이 남아있었다.
때는 10월 5일, 단풍이 절정을 이루기까지 일주일 정도가 남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산악회에서 온 단체팀이 많았다. 나란히 올라가던 산객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제 400m 지났대."
"설마... 우리가 그만큼 밖에 안 왔다고? 이렇게나 많이 올라왔는데?"
당일산행의 작은 배낭을 메고 온 산악회 회원들도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인데, 4박5일의 박배낭을 짊어진 나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대간 첫날 길을 잃고 능선을 헤맬때는 깎아지른 내리막 때문에 무릎이 아작날 거 같더니, 오늘은 깎아지른 오르막 때문에 무릎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하아... 정말이지 백두대간이... 백두대간이... 만만한 게 아니구나. 가다서다 가다서다를 얼마나 많이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함께 오르는 산악회 회원들은 나의 커다란 배낭을 보고 격려와 응원의 말들을 던져주었다. 가다서다 가다서다 하며 진로에 방해가 되는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오히려 힘 내라며 행동식을 나눠주었다.
드디어 마등령에 도착했다!
으아아아아~!!!! 이곳이 설악산의 정상은 아니었지만, 마등령에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고 이후로는 완만한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정상에 도착한 듯 마음이 풀어졌다.
마등령의 넓은 공간마다 산악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이쯤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아무도 없는 산에서 혼자 점심을 먹을 때는 어디에 앉아서 무엇을 먹어도 상관이 없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나 바글바글한 곳에서 점심을 먹으려니 어디에 앉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특히나 맨밥에 고추장뿐인 점심을 꺼내기가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우물쭈물하며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데 박배낭의 나에게 유독 응원을 많이 해줬던 산악회에서 같이 점심 먹자며 나를 불렀다. 나는 조신하게 그들에게 합류했다. 그리고 나의 배낭을 열려고 하자
"여기 먹을거 많으니 아가씨 것은 꺼내지 마세요. 우리는 오늘 하산이지만 아가씨는 가야 할 길이 많잖아요. 오늘은 우리것 나눠먹고 아가씨 것은 아끼세요."
흑 세상에! 이렇게나 다정한 사람들이라니... 도시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온정이 그들의 어깨를 타고 나에게 전해졌다. 그들은 경북 경산의 산악회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다양하고 화려한 도시락을 얻어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백두대간에 대한 얘기와 설악산에 대한 얘기였다. 백두대간에 대한 얘기는 주로 그들의 질문이었고 설악산에 대한 얘기는 내가 귀담아 들어야 할 얘기였다.
점심을 모두 먹고 다시 나란히 줄지어 길을 이어갔다. 박배낭의 나는 걸음이 느릴 수 밖에 없었고 해 지기 전에 하산해야 하는 그들은 걸음을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언제 또 만날지 알 수 없으니 미리 작별인사를 했다.
나한봉을 지나자 그 유명한 공룡능선이 나타났다.
설악의 기암괴석들은 정말이지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멋지고 웅장했다. 바위봉우리가 연이어 나타나며 본격적인 오르막과 내리막이 시작되었지만, 힘들게 기어오르고나면 탁 트인 전경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이어지는 내리막에서는 쉬면서 걸을 수 있었기에 힘들어도 좋았다.
게다가 중간중간 경치를 더해주는 10월의 단풍이 설악에 온 우리를 설레게 했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고 푸르고 옷을 갈아입은 가을 단풍은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백두대간 북진'을 선호하지만 내가 굳이 '남진'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단풍은 일교차가 크고 추운곳에서 먼저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의 단풍시기가 가장 빠르고 남쪽의 단풍시기는 상대적으로 늦을 수 밖에 없다. 10월 중순 설악에서 절정을 이루는 단풍은 10월 말 지리에서 다시 한번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그 중간 중간 곳곳에 단풍명소들이 있다.
10월 3일 백두대간을 시작한 나는
단풍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다
지리산에서 폭설을 맞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평생 해본 적 없는 단풍구경을
백두대간에서 신물나도록 경험하고
이내 접어든 겨울이 되면 지리산에 도착해서
폭설로 발이 꽁꽁 묵여버리기를!
산 속에서 (안전한 대피소에서)
폭설을 맞게 된다면
그 역시 너무나 환상적일 것 같았다.
흙길은 거의 없이 계속되는 바위를 오르내리다보면 바위에 설치된 로프를 잡고 지나야 하는 구간도 나왔다. 눈 앞에 로프가 나타나면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막상 로프를 잡고 한발 한발 조심히 내딛다보면
로프에 감기는 손의 느낌과 그 것을 지탱하는 어깨의 움직임, 그리고 바위를 지지하는 허벅지와 발끝의 힘이 느껴져 묘하게 짜릿했다. 내가 내쉬는 이 가파른 숨이 산소를 채우기 위한 것인지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지리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육산이고 설악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암산이다. 흙이 더 많은 산을 육산이라 하고 바위가 더 많은 산을 암산이라 하는데, 그래서 지리산과 설악산은 사실상 비교불가다. 둘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산이기 때문이다.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은 "강아지와 고양이중에 뭐가 더 예뻐?" 라는 질문과 같다.
내가 지리산보다 설악산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내가 육산보다 암산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육산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지리산이 최고라고 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산이 좋다.
특히 넓은 바위를 품은 산은 밑도 끝도 없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지만 가까이서 그 웅장함을 대할때면 심장이 말도 못하게 요동친다.
그토록 넓고 웅장한 바위 위를 직접 걷게되면 마치 바위와 내가 연애를 하는 것 같다. 나의 등산화가 바위에 착 착 달라붙는 그 느낌이, 좋은 남자를 만났을 때 처럼 편안하면서도 설렌다.
지리산과 덕유산만 다녔을 때는 그 느낌을 몰랐다. 그러다 설악산을 오르게 되었을 때, 정확히는 설악산의 바위를 오르게 되었을 때, 나는 알았다.
아! 이제 지리산과의 연애는 끝났구나!
갈수록 내용이 너무 길어지고 있네요.
읽느라 고생하셨어요. ㅠㅠ
파란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