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신이 소풍나온 사람의 모습으로 내앞에 나타났다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by 파란동화


9살이나 10살 때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엄마와 함께 새엄마의 지인 댁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집의 주인 아줌마는 나의 새엄마와 다르게 인자하고 다정해 보였다. 어린 나에게 과자를 먹으라며 동그란 양철통에 들어있는,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과자를 권했다.




"아니오. 괜찮아요."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아줌마는 어린 나에게 재차 과자를 권했고 나는 새엄마의 눈치를 보며 끝까지 도리질을 했다. 아줌마의 선의를 계속 거절하는데도 새엄마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어떤 중재의 말도 없었다. 그런 새엄마를 흘끗 쳐다보더니 아줌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얘야.
무조건 사양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란다.





나라고 과자가 먹고싶지 않았겠는가. 어른들이 주시는 것을 사양하지 않고 받는 것은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 이라고 배웠다. 주인이 아무리 권해도 새엄마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 과자를 받아먹으면, 집으로 돌아와 머리채를 뜯기고 매를 맞아야 했다.




어린 나에게 아줌마의 그 얘기는 뼈에 새겨질만큼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자라온 환경은 무조건 사양하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사양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니... 나는 도대체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내가 성인이 되어 어린시절 살던 집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사회생활을 하며 누군가의 호의를 받게될 때마다 그 아줌마의 말이 떠올랐다.








그랬던 내가,

백두대간을 타면서 '사양' 이라는 단어를 모르게 되었다. 백두대간에서 받는 호의들은 모두 '신이 주신 기회' 같았다. 힘겨움에 허덕일 때 마다 누군가 내밀어주는 손이 있었다. 그랬기에 끝까지 종주를 이어갈 수 있었다.




삽당령에서 소풍을 즐기던 어른들은 나를 만났을 즈음 식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남은 고기를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남은 음식을 다시 싸가자니 귀찮고 버리자니 너무 아까워서, 괜히 많이 싸왔구나 후회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산에서 내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분들은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아서 좋았고,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지난 나흘동안 누룽지와 말린미역국 외에 먹은 것이 없다며, 고기를 보니 너무 행복해서 미치겠다고 고백하며 어른들이 주시는대로 다 받아먹었다.




고기에 밥에 김치에 소주까지! 내가 먹고싶었던 것이 여기 다 있었다. 고기도 맛있었지만 갓 담은 총각김치가 진심 꿀맛이어서 계속 계속 먹었는데




"어? 여기 있던 김치가 다 어디갔지?"



"아... 제가 다 먹었..."



"하하하하~ 산에 다니면서 김치도 얼마나 먹고 싶었겠어. 잘 했어. 잘 했어."




하신다. 배불리 먹고나서 젓가락을 내려놓자, 아줌마는 친절히도 남은 고기와 반찬들을 싸 주시며 오늘 저녁에 먹으라고 하셨다. 삽당령에 닿기만하면 서울로 돌아가리라던 나는, 그 모든 다짐을 잊어버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아줌마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아저씨가 컵라면을 먹고가라며 다시 붙잡았다.




"괜찮아요. 배가 너무 불러요."



"우리는 네 명인데 라면이 딱 5개가 있어. 그러니까 아가씨는 무조건 먹어야 해!"



"아니... 진짜 괜찮은데요..."



"먹고 가. 잘 먹어야 등산도 하는 거야."





SE-05112993-932d-4fc6-9afb-3186d6ee1644.jpg?type=w1 © masondahl, 출처 Unsplash




하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두번 정도 거절했는데도 세번째 권하면 받아야 한다. 무조건 사양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까. 라면 물이 끓는 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홀로 대간종주 하는 나를 무척이나 대단한 여성으로 치켜세워 주는 대화가 오갔는데, 마지막에 아저씨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혼자서 백두대간 종주하는 거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긴 한데... 내 딸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 귀한 딸 산에 보내놓고 어떻게 밤마다 잠이 오겠어. 아가씨도 뜻이 있어서 종주 하는 거겠지만, 그래도 가족들한테 매일 연락은 줘야 해. 알았지?"




이전에도 이런 말은 몇 번 들었지만,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를 두지 못한 나는 그냥 네네 하며 흘려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이 말이 흘러 지나가지 않고 가슴에 콕 박혔다. 술을 마셔서 그런가?




컵라면과 믹스커피까지 모두 먹고나자, 그 분들은 드디어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몇번이나 감사인사를 드린 후 다시 대간길에 올랐다. 그분들과 헤어지고 임도를 30분 쯤 걸으니 국도와 인접한 진짜 삽당령이 나타났다.




이 곳에서 히치하이킹 해서 서울로 돌아가려던 마음은 진작에 사라졌다. 숲이 어떻든 날씨가 어떻든 고기와 술은 마법같은 치유능력을 발휘해 나를 다시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삽당령의 국도를 건너

계속 대간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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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를 하며 지나게 되는 '령'은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대지만, 백두대간을 하며 지나게 되는 '령'은 등산로 중에서 가장 낮은 지대에 속한다. 그러므로 '령' 에 닿기까지는 계속 계속 내리막만 나타나며, '령'을 지난 이후로는 계속 계속 오르막만 나타난다.




삽당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도를 지나고 산길에 접어들자 끝없이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나마 나무를 박아넣은 계단이 있어서 아무것도 없는 흙길보다는 오르기가 수월했다. 여전히 풍경은 우울했고 날씨 또한 여전히 흐렸다. 하지만 나는 흥얼흥얼 노래까지 부르며 길을 이어갔다.




한참의 오르막이 끝나고 비교적 평탄한 길이 나타났을 때, 맞은편에서 오고 있는 혼백이(혼자서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사람) 아저씨를 만났다. 내가 먼저 인사를 드리자 아저씨가 어디까지 가냐고 물으셨다.




아저씨 : 백복령까지 가는 거에요?



나 : 그 방향이긴 한데, 날이 저물어가니 그 전에 아무데서나 자야겠죠?



아저씨 : 아무데서나? 야영지도 안 정하고 대간 타요?



나 : 네. 그런 셈이죠.



아저씨 : 어떻게 그렇게 다녀요? 야영지를 못 만나면 어쩌려고?



나 : 하하 그러게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잘 다녔어요.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차시고는 가던 길을 가셨다. 나도 내가 이렇게 다니는게 신기하긴 했지만, 다른 종주자들처럼 사전정보를 완벽히 입수하고 대간길에 오르는 것은 더욱 싫었다.




나는
산과 길이 주는 것들을
최대치로 만끽하고 싶었다.




사전정보가 너무 많으면 처음 만나는 백두대간의 경치 앞에서도 '처음'의 반가움과 놀라움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아는것'에 대한 반가움은 생기겠지만, 그것이 '처음'의 반가운 감정보다 더 강렬하지는 못하리라.




나는 나의 백두대간 종주를

우연과 미숙함으로 잘 버무려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을

놀라움과 즐거움의 연속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도 내가 어떻게 이럴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등산을 하기 전의 나는 짧은 여행에서도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었다. 당일여행을 떠나면서도 일주일동안 정보를 모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백두대간 이후로 여행에서만큼은 정보를 '최소한'만 찾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일상은 별 일이 없는 것이 행복이고

여행은 별 일이 많아야 즐거운 것이다.

백두대간이 이 단순한 진리를 알게 해주었다.




걷다보니 두리봉이 나타났다. 해발 1,033m. 이제 이정도의 높이는 가뿐하게 올라온다. 연속으로 등산을 이어가다보니 해발 1,000m 정도는 가볍게 오르는 동네 뒷산 정도로 여겨지게 되었다.




두리봉엔 생각지도 못한 식탁과 평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의 야영지로 딱이었다. 거봐! 미리 정해놓지 않아도 야영지는 다 만나게 되어 있다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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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데크 위에 텐트를 설치했다. 캠핑장에서 야영하는 사람들은 데크 위에 설치하는게 훨씬 편하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데크에 텐트를 펼치는 게 더 어려웠다. 텐트가 1인용이라서 그런가? 데크 위가 깔끔하고 좋긴 했지만 텐트 설치는 그냥 흙바닥에 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리고 텐트를 설치하자마자! 두둥~!!!

삽당령 어른들께서 챙겨주신 도시락을 펼쳤다.




캬오오올~~~!!!

점심도 고기에 저녁까지 고기라니!!!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구름이 꽉 차서 별도 달도 없는 밤이었지만, 고기로 배를 채워 빛이 없어도 아름다운 밤이었다.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그 때 그분들은 그냥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신神이 소풍나온 사람들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라고.

그렇지 않고서는 인생에 이런 행운이

연이어 나타날 수 없는 것이라고.




엄마가 없는 나는 종교도 없었다. 어릴때 교회도 다녀보고 절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힘들때마다 죽고싶을때마다 간절히 찾게 되는 것은 다른 미지의 존재보다 세 살 때 돌아가신 나의 엄마였다. 언제나 엄마였다.




나는 신神을 믿지 않았지만

신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신神을 믿지 않는 나에게

신神의 존재가 느껴지는 일은

엄마의 온기가 느껴지는 일이었다.




내가 가는 길마다 엄마가 사람들을 보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여자 혼자 산길을 돌아다니는데도 나쁜 일은 전혀 없이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았다.









< 오늘의 백두대간 >

고산자 지도/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총 24구간 중
19구간
(남쪽 끝이 1, 북쪽 끝이 24)

진행 구간 : 삽답령 (강원도 강릉시) - 두리봉 비박 (강원 강릉과 정선의 경계)

진행 날짜 : 2011년 10월 20일 목요일

episode28.png?type=w1 * 지도 : 고산자의 후예들/ 백두대간24 *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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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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