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내 생의 가장 큰 소원은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by 파란동화


봉우리를 찍고 내리막을 이어가다보니 이번엔 너른 평전이 나타났다. 와아아~~~ 깊은 산 속의 평전은 동화 속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평전을 볼 때마다 나는 어린시절에 봤던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 이 생각났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다정한 가족의 이야기였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사람이 많지 않고 자연이 가득한 곳에다 집을 지어 살고 싶었다. 마당을 따로 만들지 않아도 이런 평원이 모두 우리집 마당이 되는 그런 곳에 집을 짓고 싶었다.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방영되었던 <초원의 집> 이 어떤 에피소드를 담고 있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항상 같은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다정한 아빠는 마당에서 펌프로 물을 길어올리고 엄마는 거기서 빨래를 하거나 야채를 씻는다. 아이들은 그 주변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엄마아빠를 귀찮게 하는데, 그러면 가족이 다같이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이 엄마아빠를 귀찮게 하는데 부모가 웃어주는 것도 신기했고, 아이들이 저들끼리 놀지 않고 일하는 부모를 건드리는 것은 더욱 놀라웠다. 가부장적이고 무서운 분위기의 우리집에서는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러니 내가 갖고싶었던 것은
'넓은 초원에 있는 집' 이 아니라

'가족이 다 같이 웃고 있는 집'
이었을 것이다.





어린시절 보았던 그 미드는 흐릿한 나의 상상을 그림처럼 정확하게 그려서 보여주었고, 그때부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저런 집에서 살면 가족들이 항상 웃을 수 있는 모양이라고. 그래서였던 것 같다. 나는 또래아이들과 다르게 항상 시골의 집, 산 속의 집을 동경했다.




초원이 있는 시골에서 다정한 남편과 개구쟁이 아이들을 키우며 살고 싶었다. 넓은 풀밭 위 햇볕이 따뜻한 곳에 앉아 가족 다같이 실컷 웃음을 웃고 싶었다. 한 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그런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평전 위로 너른 데크길이 이어졌다.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길이다. 설레게 하는 길이다. 이 데크 위에서 침낭만 덮고 잠을 자도 좋을 것 같은 아늑함이 있는 길이다. 날이 무지하게 좋은 날,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까지 다 보이는 어떤 날, 이 곳에서 가볍게 비박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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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산 삼도봉과 민주지산의 삼도봉 사이로는 '비박하기 딱 좋은' 공간이 줄줄이 이어졌다. 계속 매력적인 곳이 나타나니 이것도 고민이다. 다음에 백두대간 종주를 다시 하게 되면 나는 어디서 비박을 하지?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인데 벌써부터 이런 고민이라니, 걱정도 팔자다.




벌써 '민주지산' 의 삼도봉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만난 지리산 삼도봉과 초점산 삼도봉에 비해 가장 멋진 봉우리를 자랑한다. 이곳의 정상석은 정상석 정도가 아니라 무슨 제단같이 생겼다. 구렁이가 용이되어 승천할 것 같은 곳이다. 이 곳에서 밤 새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으면 나도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을까?




민주지산의 최고봉우리도 아닌 능선이 흘러 백두대간으로 연결 된 봉우리에 이렇게나 대단한 정상석이 있는 것이 신기했는데, 자세히 보니 정상석이 아니라 '삼도화합비' 라고 한다. 충북과 전북, 경북의 군수들이 화합을 다지기 위해 함께 이 탑을 세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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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아래 마을들은 삼한 이래 각각의 독립된 국가로 자웅을 겨루기도 하고 세시풍속도 모두 달랐지만, 백성들은 서로를 이웃하며 이 곳에 장이 섰다는 기록도 있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는 먼 국가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이 곳에 들어선 장을 오가며 눈이 맞아 국제결혼(?)을 한 커플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재밌는 상상을 했다.




정상석 주위로는 엄청나게 너른 데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산악회가 우루루 몰려와서 떼로 야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매년 10월 10일이면 삼 도의 산악인들이 이 곳에서 제를 지내며 화합을 기원하는 행사를 연다고 한다. 그래서 데크가 넓은 모양이었다. 나의 예상대로 단순한 봉우리가 아닌 제단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으아~!!!

이런데서 비박을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나 넓은 데크라니! 텐트도 필요없잖아! 데크를 다 내집 삼아 침낭만 덮고 자도 너무나 포근할 공간이다. 이런 곳에 침낭만 덮고 누우면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가 모두 내게로 쏟아질 것 같다. 달빛의 영험한 기운이 나의 작은 몸으로 다 빨려들어올 것 같다. 게다가 용이 승천하는 곳이라면? 산신령이 사뿐히 내려와 나에게 말을 걸 법도 한데? 하지만 아직 오후 4시. 나는 조금 더 길을 이어가기로 한다.




민주지산의 삼도봉을 기준으로 전북 무주는 끝이 나고 충북 영동이 시작된다. 도의 경계가 바뀌었으니 나는 다시 보석하나를 획득한 셈이다. 여기서부터 속리산을 지나 소백산까지 백두대간의 서쪽으로는 충북이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경북이 이어진다. 지난 가을대간을 소백산 중간에서 마무리했다.




이젠 보석이
딱 하나 남았다.




소백산의 비로봉에 도착하면 나의 백두대간 종주는 긴 여정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마지막 일곱번째 보석을 획득하게 되리라! 백두대간의 일곱 보석을 모두 모으면 나에게 어떤 파워가 생길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무척이나 기대된다!




완만한 능선의 삼마골재를 지나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어느 넓은 봉우리 근처에서 오늘의 종주를 마무리했다. 이정표도 정상석도 없는 곳이지만 야영을 하기에 딱 좋은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배낭을 내리고 텐트를 설치한다. 어제 친구를 만난 덕분에 오늘의 비박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배낭에서 친구가 챙겨준 음식들을 꺼낸다. 친구 덕분에 식사시간도 즐겁다. 종주 도중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더라도 구간 구간 적당히 민박도 하고 적당히 지원대의 도움을 받으며 이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지인 중에는 등산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적당한 인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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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20분에 잠들어 다음날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매우 이상적인 수면시간이었다. 나는 9시간 정도 자야 피로를 제대로 풀 수 있는 사람이다. 불면으로 언제나 힘들어 했지만 수면시간이 긴 것이 항상 불만이기도 했다.




하루 45분만 자고도 개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변화를 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텐데. 이른 새벽과 아침과 낮, 저녁과 밤과 깊은 새벽이 모두 제각각 아름다운데 하루 9시간이나 잠을 자는 생활자는 이 아름다운 세상의 상당부분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 나는 그것이 슬펐다. 낮에도 밤에도 항상 깨어있고 싶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 예보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혹시 몰라서 타프를 꺼내기 쉬운 곳에 두었었는데 아침밥을 먹고 있을 때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밥을 먹다말고 타프를 설치하기 위해 서둘렀는데, 그러다 그만 밥그릇을 엎고 말았다!




안돼에~~~!!!




어쩌지? 어쩌지? 당황하다가 일단은 밥을 다시 밥그릇에 담고 타프부터 제대로 설치했다. 그리고 밥그릇 앞으로 돌아와 솔가지와 흙이 묻은 부분만 떼어내 버리고 아무일 없었던 듯 다시 밥을 먹었다.




그나마 밥그릇을 엎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국그릇을 엎었다면 영락없이 맨밥을 먹어야 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예전의 나는 사소한 실수에도 곧잘 화가 났고, 그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럴 수 있어, 괜찮아, 그래도 이정도면 다행이지, 라는 말은 어릴 때부터 듣지 못하고 자랐다.




설탕을 엎지르거나 그릇을 깨는 실수를 하면 새엄마에게 고무장갑 낀 손으로 뺨을 맞아야 했고,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거나 설거지 한 그릇에 밥풀이라도 남아 있으면 등신같은 년, 제대로 하는게 하나도 없는 년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심지어 아버지라는 사람은 내게 '너 같은 건 시집가면 평생 빌어먹을 것' 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슈퍼에서 고기만두를 사오라고 시켰는데 고향만두를 사왔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게 되는 모든 인간관계가 힘들었다. 상사들은 직원의 부족함을 감싸주지 않으며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었고, 후배들은 일도 못하면서 선배 말을 듣지 않는 고집쟁이들이었다. 내 주변에는 괜찮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항상 누군가를 험담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일도 힘들고 사람도 힘들고 그래서 회사 밖에서는 항상 회사를 욕하기 바빴다. 이쯤되면 타인보다 내가 더 문제였는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타인을 향한 시선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 자신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었다. 크건 작건 실수를 하면 용납이 되지 않았다. 언제나 나에게 화가 났고 언제나 지난 일들을 후회하며 자책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여러날 동안 스스로를 괴롭혔고, 언제나 지난 날에 발목이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니 사는 것이 지옥이었다. 어른만 되면, 그 집만 벗어나게 되면, 지옥을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리라 기대 했었는데 아니었다. 그 집을 벗어나도 나는 여전히 지옥 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버린 탓이었다.




그 집을 벗어나고도
십 수년간 달라지지 않았던 내가

홀로 산을 다니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미숙한 내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실수를 해도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그나마 다행인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지혜가 생겼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나에게 작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게 큰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높은 산을 오르고 산에서 홀로 비박을 하며 내 몸에 쌓인 도시의 독소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오히려 정화된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아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켜켜이 쌓여 나를 괴롭히던 독한 마음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아침밥을 다 먹고 짐을 모두 챙긴 후 마지막으로 타프를 걷었는데 그동안 타프가 꽤 젖어 있었다. 아침 7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거세어지기 시작했다. 지나는 대간길이 어떤 풍경을 품고 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빗발이 거세어지니 자주 눈을 감았다 떠야 했다.




우두령을 지나 바람재에 도착한 것이 오후 1시 반. 배가 너무 고팠다. 마침 벤치가 있기에 나는 벤치 위에 타프를 치고 버너에 라면을 끓였다. 이런 빗줄기 안에서도 라면을 끓여먹다니. 나는 점점 산에서의 생활에 적응을 해가고 있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처량하기는 커녕 웃겼다. 산에서 이러고 라면을 끓여먹는 내가 너무 재밌었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시종일관 큭큭큭 웃음이 터져나왔다.








< 오늘의 백두대간 >
고산자 지도/ 남쪽에서 북쪽방향으로
총 24구간 중
5~6구간

진행 구간 : 1170봉(전북 무주와 경북 김천의 경계)-민주지산 삼도봉-삼마골재-밀목재-2km 비박-화주봉-우두령-삼성산-여정봉-바람재(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의 경계)

진행 날짜 : 2012년 5월 13일~14일 / 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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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d1ed7abb-6470-4bfb-b25e-c0779813c2dc.png?type=w1 * 지도 : 고산자의 후예들/ 백두대간24 *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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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금 주5일 연재됩니다~^^








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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