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사람이 변하면 죽을때가 된 것? Nope!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by 파란동화


국도와 만나는 덕산재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다시 산길을 40분쯤 올라가니 전망대 데크가 나타났는데, 여기는 아까의 대덕산 정상 헬기장보다 더욱 멋진 뷰를 자랑했다. 아! 여기다 여기! 대덕산 정상이 아니고 여기야!




다음에 다시 백두대간 종주를 하게 된다면 대덕산 아래의 계곡에서 물을 꽉꽉 채워 덕산재 이후의 전망대 데크인 이 곳에서 비박을 해야겠다. 물 맛도 기가막힌데 비박지의 뷰도 끝내준다면 그날 낮에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한 밤을 맞이할 수 있을거야!




지금의 종주도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다음번 종주를 상상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이루고 말테다! 그 때는 혼자가 아닌 일행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 때는 지금처럼 불면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룰루 랄라 길을 이어간다.




이후로 부항령까지는 산책하기 좋은 숲길의 연속이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졌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아서 그야말로 공원을 산책하듯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다. 길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부항령에서 만날 친구가 있어서 더욱 기분 좋은 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날씨가 문제다. 곧 비가 내릴 듯 안개가 자욱하다. 친구에게 고기따위 필요없으니 음료수랑 과일만 사오라고 부탁했는데, 그동안의 땡볕은 어디로 숨어버리고 하필 오늘부터 날이 흐리고 쌀쌀하다. 하필 오늘은 목이 하나도 마르지 않다. 목이 마르지 않으니 고기 생각이 간절하다. 니미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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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50분. 부항령의 삼도봉 터널 앞에 도착했다. 친구를 만난다는 즐거운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웠고 날이 쌀쌀해서 더욱 걸음이 빨랐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터널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흠흠 콧노래를 부르며 친구를 기다린다.




여긴 어쩜 차 한대가 지나가질 않는다. 만약 대간을 타다가 탈출한 상황이었다면 히치하이킹도 불가할 곳이었다. 20분쯤 기다리니 친구가 나타났고, 그 20분 동안 처음으로 나타난 차가 바로 친구의 차였다.




"꺄아아아~!!!"




나는 인사대신 괴성을 지르는 것으로 반가움을 표한다. 우리는 스키장이 있는 무주리조트 근처로 갔다. 겨울 스키시즌이 아니어서 리조트 근처의 민박과 팬션을 엄청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이서 4만원으로 팬션을 잡았다. 이정도면 모텔비 수준. 이름은 펜션이지만 펜션과 민박의 중간 느낌이었다.




스키 시즌을 피한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는 그저 한적한 시골동네였다. 우리는 펜션에다 짐을 풀어놓고 펜션 앞 마을 정자에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고기는 하나도 사오지 말라고 했는데 다행히 친구가 삼겹살 두 줄을 사 왔다. 저 혼자 먹을거라고 딱 두 줄을 사왔다. 그 두 줄을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고기를 먹고 과일도 먹었다. 과일의 수분과 당도가 너무나 그리웠다.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과일이 대간 중에는 너무나 먹고싶다. 지난 가을 대간을 탈 때도 고기보다 오히려 사과나 오렌지가 더 간절히 먹고싶었다.




경남 진해에서 전북 무주까지 찾아와 준 친구와 이틀의 밤과 이틀의 아침을 함께 보냈다. 오랜만에 함께 한 사람이 10년지기 친구라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을까? 우리는 대학시절로 돌아간 듯 깔깔거렸다.




"그때 기억 나? 우리 몇 년 전에 같이 여름휴가로 섬진강 배낭여행 갔었잖아. 지도 하나만 달랑 들고 아무런 정보도 알아보지 않고 시골버스 타고 무작정 달렸는데, 도착하고보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거. 식당이나 모텔 하나 없는 진짜 말 그대로 시골마을 이었던 거."




"내 기억엔 아마도... 임실에서 옥정호 보고 내려온 길이었을 거야. 우리 시골길 걷고싶다고 마을까지 내려왔는데 도착하고 보니 버스가 끊겼던가? 아니면 읍내로 나가는 버스시간이 너무 길게 남았던가? 그랬는데 비까지 막 내리고 있었잖아. 하하하"




"니가 더 이상은 못 걷겠다고 징징대고 배고프다고 짜증내고. ㅋㅋㅋ 그래서 결국 내가 고추 말리는 할머니 도와드리고 하룻밤 재워달라고 부탁드렸잖아. 할머니가 우리 저녁밥도 차려주시고."




"그리고 또 우리 지도보면서 어디를 찾아가자 했는데, 들어가는 버스를 놓쳐서 한참 걷다가 내가 더이상 못 걷는다고 뻗어버렸잖아."




"그때도 내가 히치하이킹해서 차를 잡았잖아. 니가 하도 죽는다고 징징거려서. 하하하하."




"맞아 맞아~ 엄살도 되게 심했어."




"그랬던 니가 지금은 이렇게 큰 배낭을 메고 혼자 백두대간을 타고 있다니.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니까."




그랬다. 당시 모르는 할머니께 말을 걸어 공짜로 민박을 얻어내고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 지나가는 차를 붙잡은 것은 내가 아니라 친구였다. 시골길을 걷다가 발바닥에 불이 난다고 시멘트바닥에 누워버린 것은 친구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바닥에 누워서 친구에게 지나가는 차라도 잡아보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는 부끄러워서 도저히 못 하겠으니 니가 차를 잡아보라고 징징거렸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혼자서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들르는 민박집마다 숙박비를 깎아달라고 흥정하고, 탈출로에서는 무조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의 나는 결코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낯가림도 너무 심해서 모르는 사람에게는 말도 못 붙였고,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데 한참이나 애를 먹어야 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항상 먼저 인사를 하는 사람이 되었고, 항상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되었으며,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산을 다니고 난 이후부터였다. 등산을 다니며 숨겨져 있던 진짜 '내 안의 나' 가 밖으로 드러난 것인지, 아니면 성격이 바뀌어버린 것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예전의 내 모습모다
현재의 내 모습이

훨씬 좋았다.




일요일 오전. 친구는 나를 다시 부항령에 데려다 주었다. 전라북도의 북쪽 끝에서 경상남도의 남쪽 끝으로 돌아가야 하니 친구도 갈 길이 멀었다.




"잘 가. 배 고프면 또 연락하고. 너무 멀어서 자주는 못오겠지만 한 번 정도는 더 와줄수 있어. 알았지?"




오전 10시 20분. 든든하게 채운 배와 친구의 정을 가득 담은 마음으로 오늘의 대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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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항령은 대간길과 지방도가 교차해서 만나는 지점이지만, 부항령 아래로 삼도봉터널이 뚫려있어서 굳이 지방도 아래로 내려서지 않아도 된다. 터널 윗길 등산로를 계속 이어가는 것으로 백두대간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모든 백두대간이 이랬으면 좋겠다. 지방도가 있는 곳에서 탈출은 가능하지만 백두대간은 산길로 계속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디나 그렇듯 지방도와 만나는 지점 이후로는 다시 오르막의 연속이다. 이젠 이런것도 익숙하다. 학교에 등교하면 공부를 하고 회사에 출근하면 일을 하는 것과 같다. 정상부를 향하기 위해선 오르막의 연속이고 정상부를 지나면 내리막의 연속이다.




아침부터 오다말다 하던 엷은 비는 백수리산 정상에 닿자 멈춘 것 같았다. 날은 아직도 많이 흐리지만 비는 그친 것 같다. 나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장기종주를 이어가다보면 식사는 항상 끓여서 먹어야 한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누룽지와 말린국만 들고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날이 더워질수록 먹는 일도 귀찮은 일이 되어버린다. 땡볕아래서 끓인 밥을 먹는 일은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배가 고프니 억지로 먹는 것일 뿐. 그러다보니 나는 갈수록 점심 먹는 시간이 늦어졌다. 그나마 오늘은 볕이 없어서 제 시간에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백수리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이 좋다. 어느덧 잔뜩 흐리던 날도 개이고 다시 햇볕이 쨍쨍 내리쬐기 시작했다. 친구를 만났던 주말에 땡볕이 찾아오고 다시 종주를 이어갈 때 비가 왔으면 좀 좋아? 친구는 나를 위해 사왔던 그 많은 음료수를 다시 그대로 가져가야 했다. 주말 내내 비도 오고 서늘해서 음료수가 영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매일 땡볕 아래를 걸으며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고싶다고 눈을 감고 상상했는데 막상 펜션에 들어서니 창문만 열어도 추워서 에어컨을 틀 수 없었다. 그랬는데 다시 종주를 이어가려니 햇볕 작렬이다. 하지만 나는 이때의 햇볕을 감사히 생각했어야 했다. 나중에는 종주 내내 비가 내려서 제발 해가 그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길을 이어가야 했으니까.




내리막과 오르막을 꾸준히 오르내린다. 해발 1170m의 고지에 닿았는데 정상석이나 이정표는 없고 삼각점만 있다. 지도에도 삼각점으로 고도만 표시되어 있을 뿐 별다른 명칭 기재가 없었다. 해발 1100m가 넘는데 이름도 없다니. 곧 이어 나타날 삼도봉에 밀린 모양이다.









< 오늘의 백두대간 >
고산자 지도/ 남쪽에서 북쪽방향으로
총 24구간 중
5구간

진행 구간 : 덕산재(경북 김천과 전북 무주의 경계)-부항령 친구와 만남-무주의 펜션에서 쉬다가-다시 부항령-백수리산-1170고지(경북 김천과 전북 무주의 경계)

진행 날짜 : 2012년 5월 11일~13일 / 금~일

SE-9cea2368-7427-4c5f-ac9c-0361d04949b9.png?type=w1 * 지도 : 고산자의 후예들/ 백두대간24 *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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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금 주5일 연재됩니다~^^

주말동안 맛난거 많이 드시고

월요일에 다시 뵈어요~!!








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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