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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Feb 28. 2017

칠흑 같은 어둠 속, 절벽 앞에서 멈춰 선 버스

남미여행 버스 공포 에피소드 1편







"남미 버스 허름하지 않나요?"

"남미 버스에 정말 강도가 있나요?"

"남미 버스는 길 가다가 절벽에서도 멈춘다던데요?"






 남아메리카 6개국(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여행하면서 99%는 장시간 버스 이동을 했다. 이유는 하나. 국경을 넘어보고 싶어서였다. 우리나라는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서인지 더 궁금했다. 나라와 나라, 도시와 도시 사이를 넘어갈 때마다 장시간 버스를 탔다. 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에서는 깔라마-산티아고까지 30시간 버스를 타기도 했다. 30시간 동안 버스에 갇혀 승무원이 주는 삼시세끼 샌드위치와 와인을 먹으며 사육되는 경험을 했다.


 덕분에 내 여권은 국경을 넘을 때마다 각 나라의 신기한 입국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큰 남미 대륙에서 99%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건 정말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배낭여행자들이 여행경비를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탄다. 남미 버스는 허름하기도 하고, 강도가 타기도 하고, 길가에 자주 멈추기도 한다. 기사들이 피곤하다며 갑자기 쉬었다 가기도 한다. 


 남미 여행 중 겪은 어마어마하고 공포스러웠던 버스 에피소드 4편을 들려주려 한다. 우선은 페루와 칠레에서 겪은 에피소드 2편이다.




▲페루-볼리비아 국경. 국경을 넘을때마다 직원들이 동양인을 신기해하며 기념사진 찰칵!








1. 페루 쿠스코->푸노ㅣ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멈춰버린 버스



 페루의 수도 쿠스코에서 밤 9시에 출발했다. 푸노에는 아침 7시에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버스가 출발한 지 1시간이 지났을까. 밤 10시쯤 갑자기 길 한가운데 멈춰 섰다. 이 버스에는 우리 자매와 외국인 커플까지 단 4명만이 여행객이었다. 2층 버스였는데 나머지 50여 명은 모두 현지인이었다.

 버스가 멈춘 이유는 '엔진 고장'. 버스 기사는 계속해서 엔진을 잡아당겼다 놨다 시동을 걸려고 했다. 그렇게 2시간이 흘렀다. 현지인들은 우리 여행객 쪽으로 몰려들어 얼굴을 빼꼼히 쳐다봤다. 무서웠다. 최대한 가방을 가슴 앞으로 끌어안고 잠자는 척을 했다. 


 너무 피곤해 잠이 들었는데 자는 게 더 무서웠다. 꿈에서 누군가 나를 죽였다. 무서워서 화들짝 일어나면 현지인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꿈, 피를 보는 꿈, 가방을 털려 한국으로 돌아가는 꿈, 버스가 절벽으로 추락하는 꿈 등을 꿨다.  

 그렇게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5시간 동안 공포에 떨었다.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밖에 나가서 기사한테 언제 출발하냐고 물어봤지만, 기사와 현지인들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내가 입고 있는 비싼 패딩을 뺏길까 봐 금세 도망쳐 자리에 앉았다. 결국 새벽 3시 대체버스가 도착했다. 처음부터 대체버스가 왔으면 됐을 텐데, 버스기사가 고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밤, 절벽 바로 위에 멈춰 선 버스, 5시간 동안의 공포. 가로등도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갇혀있는 기분은 정말 오싹했다. 지나가는 차 한 대 없는 곳, 처음엔 버스기사와 강도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밤 버스는 정말 무섭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너무 비싸지도 너무 싸지도 않은 중간 버스를 선택했는데 무조건 돈을 조금 더 보태서라도 1등급 버스를 타는 걸 추천한다. 



▲남미 대부분 도시의 버스 터미널. 최고급버스부터 싼버스까지, 버스회사별로 예매할 수 있다.
▲볼리비아 코파카바나-라파즈 이동구간. 낡은 땟목에 의지해 버스가 강을 건넌다. 물에 빠지지 않을까 두려웠다.

                     









2. 칠레 아타카마->산티아고ㅣ 화장실 이용도 못하고 버스에서 30시간 버티기



 칠레 아타카마에서 산티아고까지 24시간 걸리는 최고급 칠레 버스 '트루 버스'를 예약했다. 버스비가 거의 8만 원 돈이었다. 하지만 안전하게 여행하기 위해 최고급을 선택했다. 버스회사는 삼시 세 끼도 최고급으로 내준다고 밥과 고기 사진을 보여줬다. 

 하지만... 밥은커녕 다 시들어빠진 상추가 하나 껴있는 샌드위치만 몇 끼째 줬다. 그리고 24시간 걸린다던 버스는 또 길가다가 멈췄고, 6시간을 할애했다. 결국 우린 30시간 동안 버스에 있었다. 이 버스는 분명 칠레에서 독점한 거대 버스회사였는데 말이다.  

         

 

"왜 멈췄어요?"

"기다리세요. 그리고 화장실에서 냄새나니까 화장실 이용 자재하세요"

"......"


 남미 버스에는 대부분 화장실이 있다. 그런데 30시간 장시간 버스 운영을 하면서 고객한테 화장실을 사용하지 말라니.. '나는 누구인가, 여긴 또 어디인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버스 드라이브라고 생각했다. 바깥 풍경도 몹시 만족스러웠다. 드넓게 펼쳐진 풍경과 밤에는 은하수도 보였다. 하지만 금방 또 '나는 누구인가, 여긴 또 어디인가' 음악을 듣다가 책을 보다가, 갑자기 내 인생에 대한 반성의 시간도 가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버스 사기를 당한 걸까, 화장실 정말 쓰면 안 되는 걸까.


 내 인생 최고의 '인. 내. 심' 경험. 이 덕분일까. 난 지금 한국에서 모든 사람의 자지 자란 시비에도 당당하게 웃고 넘 길 줄 아는 인내심이 생겨버렸다. 그렇게 30시간 동안 씻지 못한 채 버스 의자 위에 앉아있었더니 폐인이 됐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내 모습은 하얀 비듬이 내려앉아 있었다. 얼굴은 시커메졌다. 화장실을 참았더니, 오히려 속에서 부글부글 끓을 뿐 며칠 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비싼 최고급 버스라고 해도 버스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버스 운행 지연으로 하마터면 산티아고에서 이스터섬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칠뻔했다. 버스회사에 항의도 해봤지만, 버스 지연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었다. 칠레에서 우리나라 서울 파란 버스만큼 자주 볼 수 있는 TUR-BUS. 차라리 금액차이가 얼마 안 나면 칠레 여행 중에는 비행기 이동을 추천한다.   

   

 

▲30시간 이동 중 먹는 샌드위치와 지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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