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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May 24. 2018

나미브사막에서 느낀 개미보다 작은 먼지 같은 존재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나미브사막






"남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개미 같아 보여. 

 아니 우린 개미보다 작은 먼지 같은 존재야."









 즐겨보던 예능프로그램에서 이상순과 이효리가 나눈 대화다. 이상순이 술기운에 장난처럼 던진 말 한마디지만 내가 늘 생각했던 말이었다. 아!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



 나미브 사막에서 가장 높은 모래언덕인에 올랐을 때다. 새파란 하늘 반, 진한 주홍빛 모래가 반이다. 그 어느 중간쯤 우리 자매가 널브러져 누워있었다. 모래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니 죽은 식물과 여행객들이 모두 작은 점으로 보였다. 모래 언덕 아래에 서 있을 땐 그 크던 나무들도 말이다.


 “아!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야” 


 햇볕에 타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내 말에 동생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다.






▲모래언덕 위, 동생
▲모래언덕 위, 언니









 우리의 나미비아 여행 목적은 나미브사막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미브사막에서 캠핑을 하기 위해 4X4 4륜 구동차를 빌리고 오프로드 전문 드라이버를 고용했다. 생존에 필요한 숯과 장작, 고기와 음료수, 모기약과 손전등, 침낭 그리고 사막용 텐트까지 철저하게 준비했다.  해가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혹시 몰라 와인도 잔뜩 샀다. 잠이 안 오면 술김에 잘 생각이었다.     

      


 새벽 5시 30분, 나미브 사막 세스림 캠핑장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세스림 캠핑장 정문이 열려야만 본격적으로 사막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일출 1시간 전, 캠핑장 정문이 열리자마자 4륜 구동차들이 질주를 시작한다. 50여분을 달려 듄45(Dune45) 모래언덕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제 일출까지 남은 시간은 10여분이다. 모든 여행객이 1열로 줄을 지어 모래언덕을 올라간다.       



“언니 빨리 올라가 1등자리 놓치지 마. 뭐해 일어나! 넘어지지마!”     



 성질 급한 한국인의 마인드가 여기서도 빛을 발휘했다. 조금이라도 주저앉으면 동생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모래언덕을 오르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발걸음을 내딜 때마다 발이 모래 속으로 깊숙이 빠졌고 온몸을 천근만근 무겁게 만들었다. 지평선 끝에서 해가 떠오를락 말랑이다. 빛이 새진다. 다급한 마음에 모두들 뛰기 시작했다. 정상에 도달하자마자 해가 떠올랐고, 거친 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왔다. 



 사막의 일출은 여느 일출과는 달랐다. 예전에 우리가 볼리비아 아마존에서 마주친 일출은 해가 너무 빨개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이번에 사막에서 본 일출은 아무것도 없는 행성에, 마치 희망의 빛(?)이 떠오르는 듯했다. ‘색깔’보다는 ‘빛’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정면에서 내 눈에 빛을 쏘는 것 같았다.      






▲일출로 유명한 듄45(Dune45)


▲일렬로 모래언덕을 올라가는 여행객들
▲나미브사막에서의 일출









 사막 여행은 보통 이른 아침과 저녁 시간대에 이뤄진다. 오전 10시만 지나도 햇볕이 살을 태우는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4륜 구동차의 바퀴가 펑크 나는 바람에 데드블라이(Deadvlei)에 12시쯤 도착했다. 엽서에서나 봄직한 데드블라이라는 곳을, 처음에는 그저 죽은 나무 몇 그루 있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1km여를 걸어 도착한 이곳은 모래언덕으로 둘러싸인 엄청 신기한 공간이었다.  


 짙은 주홍빛 모래와 대비되어 바닥은 더욱더 하얬다. 하얀 모래 때문인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나무는 생각보다 더 컸다. 잎사귀 하나 없이 쩌억쩌억 갈라질 것 같은 나무들. 마치 불에 그을린 것처럼 까맣게 잿빛으로 타 죽은 듯한 나무들. 얼마나 뜨거울까. 그래서 이곳을 아무도 없는 땅이라고 부르나 보다. 이 데드블라이라는 공간 안에 있자니 지구가 아닌 것 같다. 다른 행성에 잠시 발을 디딘 느낌이다. 그만큼이나 내가 살아왔던 공간과는 전혀 다른, 메마른, 생명체가 없는 공간이었다.





▲메마른 땅, 데드블라이(Deadvlei)
▲멀리서 본 데드블라이의 모습은 다른 행성같다










 묘한 감정을 이끌고 나미브 사막에서 가장 높은 빅 대디(Big Daddy)에 올랐다. 모래를 밟고 오르는데 가장 기술적으로 힘이 안 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요령을 피워봐도 안됐다. 올랐다 쉬었다를 계속 반복했다. 서로 지칠 대로 지치고, 예민해지기까지 했다.    


“언니 여기 우리가 왜 올라가야 되는 거야. 포기할까? 내려가자”

“말 걸지마 조용히 해, 숨차니까. 그리고 너 물 아껴 마셔”     



 드디어 사막 언덕 정상이다. 하필 제일 뜨거운 낮시간에 와서 이 고생이다. 저 아래 아까 봤던 죽은 나무들이 점으로 보인다. 아래뿐만이 아니다. 저 멀리 모래 언덕을 걷고 있는 여행객들도 점으로 보인다. 자칫 잘못 봤다간 사람인 줄도 모를 노릇이다. 이래서 높이서 봤을 때 사람은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하단 말이 딱이다. 




▲요령을 피워도 힘든 모래사막 걷기


▲힘들었던 모래언덕 오르기








 


 그렇다고 내가 모래 언덕 꼭대기에 올랐다고 해서 위대해졌다는 건 아니다. 나 자신의 위치를 멀리서 보면 모두가 똑같이 먼지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큰 세상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니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마저 문득 들었다. 그리고 더 많은 곳을 여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어떻게 보면 나한테 ‘먼지 같은 존재’라는 말은 큰 의미에서 인생관과도 같다. 이 두루뭉술했던 인생관을 나미브 사막 가장 높은 모래언덕에서 다시 한번 꺼내보니 확실해졌다.       



 나는 먼지 같은 존재이니, 한국에 돌아가서 아등바등 살지 말고, 좀 더 많은 곳을 여행하며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으로 나가면 작은 존재인데, 한국에서는 무엇 때문인지 그 좁은 공간에서 신경 쓸게 너무 많았다. 돈벌이와 사람과의 관계, 일과 다이어트의 압박까지, 어쩌면 더 넓게 사고하지 못하고 내가 만든 굴레 안에서 스트레스받으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나미브 사막을 여행하고 있는 나와, 항상 스트레스받으며 작은 굴레 안에서 살았던 나, 이 둘 모두 똑같은 먼지 같은 존대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전자의 내 모습을 선택해 더 많은 여행을 다니며 사는 게 어떨까.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에 서있었지만, 왠지 이곳에서 만큼은 아무 도움도 없이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위치와 방향이 잡히는 느낌이었다.           





                   





-나미브 사막(Namib Desert)   

 150개가 넘는 사구, 소서스블레이와 데드 블레이 등이 있다. 1억 5천여년 전에 만들어진 이 사막은 지난  2013년 '나미브 모래 바다(Namib send sea)'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나미브 사막에서 수분이라곤 일 년 내내 미풍을 타고 오는 짙은 안개뿐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동식물들은 빗물보다 매일 공급받을 수 있는 이슬을 더 필요로 한다. 나미브는 나마족의 언어로 '아무것도 없는 땅'이라는 뜻이다.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소서스블레이(Sossusvlei)와 데드 블레이(Deadvlei) 등은 수도 빈트후크에서 렌터카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약 6시간 정도 달려야 한다. 





*자매의 아프리카 여행에세이 <아!FREE!카!>가 출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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