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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May 31. 2018

덤불 속,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코끼리 가족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





      

“코끼리 봐. 물 다 마시고 떠난다. 어디로 가지?”

“집으로 가나 봐”

“코끼리 집이 어딘데?”    








      


 해질녘 코끼리 수십 마리가 물웅덩이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우리를 포함한 50여 명의 캠핑족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가끔씩 카메라 셔터 소리가 찰칵하고 터질 뿐이다. 아니, 찰칵 소리조차 미안해하는 상황이다. 에토샤 국립공원 내에 있는 할랄리(Halali) 캠핑장 워터 홀에서는 하루에 딱 1시간 정도 코끼리를 볼 수 있다. 해가 질 무렵 덤불 속에서 코끼리 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일 큰 코끼리부터 아장아장 귀엽게 걸어오는 아기 코끼리까지. 코로 물을 들어 올리더니 한 번에 입에 넣었다. 코끼리는 한번 물을 먹을 때 5L 이상 먹는다고 한다.      



 코끼리가 물먹는 모습에 이렇게 빠져든 적이 처음이다. 1시간여 동안 코끼리의 눈과 귀, 입을 뜯어봤다. 멀리 있는 야생동물을 찍기 위해 준비해온 망원렌즈의 줌을 끝까지 당겼다. 동그란 코끼리 발톱과 숱이 엄청난 속눈썹까지 당겨봤다. 그러다 코끼리가 기분이 좋아 자기 몸에 흙을 뿌리기라도 하는 순간에는 셔터를 연속으로 빠르게 눌러댔다.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자처럼 전문가인양 삼각대도 설치하고 코끼리를 주시했다. 동생은 1초라도 코끼리의 행동을 놓치고 싶지 않아 동영상까지 찍었다. 













 


 사막이라 그런지, 에토샤 국립공원의 노을은 유난히도 빨겠다. 코끼리들은 그 빨간 역광 빛을 받아 더 빛이 났다. 코끼리 가죽이 좋다는 말은 못 들어 봤는데, 어찌나 몸통이 매끄럽고 보들보들해 보이는지. 사람들도 역광 빛을 받을 때가 가장 예쁘다고 하는데 코끼리들도 마찬가지로 영롱해 보이기까지 했다.       


 코끼리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걸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와 나뭇가지들을 뜯어먹기도 했다. 마치 묘기를 부리듯 말이다. 코끼리가 사람들 쪽으로 다가왔을 때 그 어느 누구도 소리를 지르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마치 이 물웅덩이에 모인 여행객들끼리 묵시적으로 정해놓은 룰이 있는 것처럼 침묵했다.      












 단지 코끼리가 물 먹는 풍경이 이토록 멋있다고 하면 이상할 터다. 우리 자매가 에토샤 국립공원의 코끼리에 몰두했던 이유는 처음 보는 야생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꽤 많은 횟수의 동물원을 방문했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코끼리의 이목을 끌기 위해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먹는 걸 던지기도 한다. 내가 본 동물원의 코끼리들은 그 작은 우리를 뱅뱅 돌며, 스트레스로 인해 거친 숨소리를 내쉴 뿐이었다. 갇힌 불쌍한 동물이란 걸 알면서도 인증 샷 한번 남기겠다며 코끼리가 내 카메라의 앵글에 잡힐 때까지 ‘이리와! 이리와!’를 외쳐댔다.      



 하지만 에토샤 국립공원 안에서의 코끼리를 대하는 여행객들의 태도는 달랐다. 코끼리들의 휴식시간이자 물먹는 시간을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의 안식처에 우리가 살짝 지나가다 들른 정도다. 카메라를 아예 가져오지 않고, 물먹는 코끼리만을 감상하는 외국인들이 더 많았다. 그냥 코끼리들이 덤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코로 물을 마시고, 흙을 뿌리고, 나뭇잎을 먹는 장면을 보면 된다. 그러고 나서 코끼리들은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등을 돌려 돌아간다.          



 그동안은 코끼리를 보기 위해 코끼리가 갇혀있는 동물원을 찾아가야 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코끼리들이 사는 야생에 우리 관광객이 짧은 시간 동안 머무르고 지나간 거다. 어쩌면 코끼리들은 자기 땅에, 자기 집에 사람들이 잠깐 들어왔다 가는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까 코끼리가 어디로 가냐고 왜 물어봤어? 질문이 좀 이상하지 않아?”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만 보다 보니까, 난 또 여기에도 사람들이 코끼리 우리를 만들어 놓은 줄 알았어"


       

 생각해보면 정말 멍청한 질문이었다. 동생은 덤불 속 어딘가, 야생으로 돌아가는 코끼리가 그렇게 신기했나 보다. 이날 에토샤 국립공원 내에서 캠핑을 하며 ‘동물원’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미 와인 몇 병을 거하게 마신 터라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 세계에 있는 동물원은 다 없어져야 돼! 아까 봤지? 물먹고 떠나는 코끼리들, 그렇지.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야지. 동물원 우리에 갇혀서 갈 곳도 없이 사는 게 말이 돼?”



 집으로 돌아가는 코끼리 때문에 우리는 단 한 번도 얘기해본 적 없는 동물원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이뿐만 아니라 코뿔소 뿔 사냥, 불법 사냥꾼의 사자 사냥, 동물 박제 등등.. 이야기 주제가 점점 커졌다. 단순히 집에 가는 코끼리 엉덩이와 꼬리, 뒷모습을 보고 이렇게까지 감정에 복받치다니.  우린 아프리카 여행 중 동물 애호가가 돼버렸다.












-에토샤 국립공원(Etosha National Park)     

 나미비아 북서부에 있는 약 2만3000㎢의 동물보호구역이다. 멸종 위기의 검은코뿔소와 코끼리, 사자, 표범 등 다양한 동물과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국립공원 내부에 3개의 캠핑장이 운영 중이며, 직접 운전을 하며 동물을 찾는 게임드라이브(Game drive)로 인기가 있다. 해질녘이 되면 캠핑장 옆 워터홀(물 웅덩이)에 동물들이 모여들어 물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게임드라이브 TIP     

 아프리카 현지에서는 동물을 찾아 나서는 걸 게임드라이브(Game drive)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파리(Safari)는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란 뜻이다. 아프리카에선 ‘사파리 가자!’ 보다는 ‘게임드라이브 가자’라고 말한다. 에토샤 국립공원은 여행사나 가이드를 끼지 않고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게임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립공원 중 하나다. 


 지도에서 ‘워터홀’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게임드라이브 팁이다. 더운 날씨에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워터홀이 가장 유력하기 때문이다. 에토샤 국립공원이 다른 국립공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막지대이기 때문에 숲이 울창하진 않다는 점이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낮에는 동물들도 나무를 찾아 그늘에 숨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드라이브는 비교적 선선한 아침과 저녁 시간대에 해야 동물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햇볕이 강렬한 점심시간대에는 대부분 여행자들이 캠핑장에서 쉬거나 수영장에서 땀을 식힌다. 곳곳에 위치한 워터홀에서는 목마른 코끼리나 사자, 기린, 코뿔소 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셀프 게임드라이브라고해도 다른 국립공원과 마찬가지로 절대 차량에서 내릴 수 없다.      


 반면 캠핑장에 위치한 워터홀은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의자에 앉아 동물을 볼 수 있다. 특히 노을이 지는 시간대는 여행객들이 간단한 맥주와 간식을 들고 와서 동물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밤부터 새벽까지도 워터홀에 조명이 있어 동물들을 계속 볼 수 있다. 우리는 새벽 3시쯤 가이드가 코뿔소 가족이 물을 먹으러 왔다며 깨워 진귀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밤새 앉아 동물을 기다리는 여행객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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