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세렝게티 3박 4일 캠핑여행
“세렝게티 뜻이 뭔지 알고 있나요?”
“아니요. 무슨 뜻이에요?”
“스와힐리어로 끝없는 평원이란 뜻입니다. 지금부터 동서남북으로 수백 키로 미터 평원이 펼쳐진 이 곳을 달립니다!”
새파란 하늘, 하얀 낮은 구름, 평평한 초록 평원.. 거기에 수십 아니 수천 마리의 누 떼가 달려든다. 커피를 많이 마셨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이곳이 세렝게티라니!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를 달리기 시작할 때 우리는 사파리 차량 지붕을 열고 머리를 위로 내밀었다. 먼지가 날려 눈에 들어가도 좋다. 바람이 세게 불어 머리카락이 얼굴을 때려도 좋다. 오프로드를 달리느라 차가 심하게 흔들려도 꿋꿋하게 버티고 초원 위의 동물을 눈에 담았다. 한 순간 한 장면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언니, 난 세렝게티를 1등으로 할래.”
“나도 1등인데?”
아프리카 여행이 끝난 후 각자 좋았던 여행지 BEST 5를 정하기로 했다. 아프리카 총 9개국을 여행할 건데 6번째 국가 탄자니아에서 이미 1등을 정해버렸다. 물론 9개국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우리는 세렝게티를 1위로 뽑았다.
거창한 이유는 따로 없었다. 세렝게티야 말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도 아니고, 편안하고 럭셔리한 숙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땅에 발을 내디뎌 걸을 수도 없는 곳이다. 그저 낮게 뜬 하얀 구름 아래로 수만 마리의 동물 떼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가끔 이렇게 ‘그저’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이유 없이 꽂힐 때가 있다. 솜씨 좋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보다 그저 하얀 밥에 밑반찬이 더 맛있는 곳이 있고, 깨끗하고 도톰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보다 그저 별을 보며 캠핑하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말 그대로 세렝게티는 그저 좋았다.
세렝게티에 도착한 후 곧바로 게임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이 넓은 초원에서 동물을 찾는 건 가이드의 능력에 달렸다. 가이드들은 대부분 하루 50달러의 일당을 받는다고 한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험난한 오프로드를 달리며 동물을 찾아야 하는 가이드들에게 돌아가는 돈이 정말 적다. 대신 사냥에 성공한 사자를 찾거나, 보기 힘든 표범 무리 등을 찾았을 때는 엄청난 환호와 함께 꽤 큰 액수의 팁을 받곤 한다. 우리야 배낭여행자라 선뜻 팁을 줄 수는 없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부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동물들을 찾을 때마다 100달러씩 쥐어주기도 한다.
“가이드~ 왜 이렇게 동물이 없죠? 사자는 또 언제 볼 수 있죠?”
“물소 1마리 말고, 떼 지어 다니는 걸 보고 싶어요.”
“치타네요. 치타에게 좀 더 가까이 가주세요. 너무 멀어서 보이지가 않아요.”
“기린이랑 노을을 한꺼번에 사진에 담고 싶어요. 노을이 보이게 차를 반대편으로 돌려주세요”
우리 팀은 나와 동생, 덴마크인 간호사 2명, 터키에서 온 교수 부부 이렇게 모두 6명이었다. 터키에서 온 부부는 조금이라도 동물이 보이지 않으면 가이드에게 동물을 조금 더 열심히 찾아 줄 것을 부탁했다. 반면 우리는 조용히 의자에 올라가 지붕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망원경으로 동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이드를 도우려고 말이다.
사실 우리 가이드가 동물을 못 찾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터키 부부의 생각엔 이왕 큰돈을 내고 투어를 신청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동물을 기회가 될 때 모두 보겠다는 심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돈을 냈으니까 동물을 찾아달라고 요청하는 건 당연한 권리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왜 때문인지 미안해서 말을 잘 꺼내지 못했고, 수동적으로 행동했다. ‘가이드가 알아서 해주겠지’, ‘우리가 너무 많은 걸 요구하면 가이드가 기분 나쁘지 않을까?’ 등의 생각이 더 컸다. 그런데 대부분 서양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돈을 낸 사람은 당연히 요구할 수 있을 때까지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다.
“우리가 사자를 보고 싶을 때까지 내버려두세요. 차 출발하지 마세요!”
한 번은 사자 무리를 발견했을 때였다. 우리는 사자를 처음 봤지만 가이드들은 매일 보는 것이 사자다. 당연히 여행객은 사자를 더 가까이서 오랫동안 보고 싶어 할 거고, 가이드는 빨리 다른 동물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덴마크 친구들과 터키 부부는 계속해서 가이드에게 자신들이 원하는걸 말했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우리의 세렝게티 3박 4일 여행이 팀원들 덕분에 더 완벽했을지 모른다. 나랑 동생만 있었으면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했을것 같다. 어쨋든 우리팀은 가이드 눈치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만큼 오랫동안 동물을 보고, 찍고 싶은 만큼 사진을 수백 장씩 찍어댔다.
“근데 너는 왜 세렝게티가 1등이야? 동물이 많아서?”
“아니, 풍경 때문에~”
“나도, 동물도 신기하긴 한데 어떻게 이런 풍경이 있을 수 있지?”
“하얀 구름이랑 파란 하늘, 초록색 잔디밭에 동물들, 그냥 다 그려 놓은 것 같지 않아? 누가 그려놓은 풍경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야.”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우주에 떠 있는 기분, 미지 세계에 와있는 기분, 천국에 들어간 기분 등등 별별 말도 안 되는 오버스러운 표현으로 여행지를 칭찬하곤 했었다.
세렝게티는 그에 비하면 비교적 단순하다.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끝이다. 오버스러운 표현은 없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자연에 잠깐 들어갔다 나왔는데 1위라니, 아마 가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두는 게 더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세렝게티 국립공원 (Serengeti National Park)
세렝게티는 스와힐리어로 ‘끝없는 평원(Endless plain)’이란 뜻이다. 응고롱고로 보호구역과 케냐 국경을 넘어가는 마라 금렵지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다양한 야생생물이 서식하는 지역이다. 면적은 약 1만5000여㎢에 이른다. 코끼리와 사자, 물소, 얼룩말, 누 등 약 300만 마리의 포유류가 살고 있다. 우기가 끝나는 5~6월이 되면 150만 마리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누 무리가 공원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2~3월은 동물들이 새끼를 낳는 시기로,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먹이사슬이 활발하게 진행돼 이를 보려는 여행객들이 몰려든다. 사자는 약 2000여 마리, 코끼리는 약 2700여 마리, 얼룩만은 약 6만 마리, 기린은 약 8000마리 등이 서식한다. 이뿐만 아니라 조류도 500여 종에 가깝다. 1981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원주민 마사이족은 이곳을 ‘시링기투’라고 부르는데 ‘땅이 영원히 이어진 곳’이라는 뜻이다.
*자매의 아프리카 여행에세이 <아!FREE!카!>가 출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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