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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Jun 28. 2018

잔지바르섬에서 만난
정반대 여행 스타일의 신혼부부

-잔지바르 섬에서 먹은 떡볶이와 라면, 문어 초무침








“우리는 일주일째 숙소에 누워서 책 보고 요리해먹고 쉬엄쉬엄 지냈어요~”

“빨리빨리 더 많은 곳을 보고 싶지 않아요?! 시간 아까워요~”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면서, 그 도시에 살아보는 여행이 좋아요”     








 보츠와나 초베 국립공원에서 세계여행 중인 한국인 신혼부부(최성환, 곽지현씨)를 우연히 만났다. 아프리카 여행 중 한국인을 마주친 건 처음이다. 너무 반가웠지만 각자의 여행 일정 때문에 그날 바로 헤어져야 했다. 여행 일정이 비슷해 우리는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에서 한 번 더 마주쳤고, 나중에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서 다시 만나 거창한 저녁식사와 술자리를 가지자고 약속했다. 



 잔지바르 북쪽에 있는 능귀(Nungwi)해변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왔다.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낮 12시쯤 만나기로 했는데 어쩐 일인지 3~4시가 되도록 신혼부부는 나타나지 않았다. 잠깐 마주친 인연이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란 걸 확신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비 오는 날 교통체증 때문에 늦어진 것뿐이었다. 혹시 오다가 납치를 당했거나 교통사고를 당한 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신혼부부는 오히려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 주려고 한식을 바리바리 싸왔다고 내보였다.     






▲믿을 수 없는 바다 색깔, 잔지바르 능귀 



▲새빨간 핑크빛으로 물든 일몰로도 유명하다
▲스노쿨링을 단돈 20달러에 할 수 있다.












“비도 오는데 라면이랑 떡볶이부터 먹읍시다. 우리 기다리느라고 너무 고생 많았어요. 금방 뚝딱 요리해줄게요”     



 아프리카에 오고 나서 한식을 처음 접한 순간이다. 부부는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비싼 한식을 따로 사 먹거나 챙겨 먹지 않는다는 걸 알고 일부로 남아공에서 한인마트에 들려 장을 봐왔다. 라면과 자장면은 물론 나물과 미역, 쌈장과 볶음 고추장 등을 보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쉴 새 없이 이야기가 시작됐다. 우리 자매의 과거 여행 목록부터 신혼부부의 세계일주 스토리까지 너도나도 여행 관련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신혼부부와 우리 자매는 여행 스타일이 하나부터 열까지 정반대다.  


             


“아프리카 대륙은 남아공이랑 보츠와나, 짐바브웨, 탄자니아 잔지바르 만 여행하고 떠날 거예요”

“헛, 이왕 온 김에 다 돌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욕심이 나서 9개국을 여행해요”     



“주로 에어비앤비에 머물면서 집주인이랑 가까운 곳 산책도 하고 요리도 해 먹으면서 널널하게 시간을 보냈어요. 여행사 투어는 거의 안 해요~ 굳이 관광지에 가지 않고 한 도시에 진득하게 살아보는 게 더 좋아요. 현지인이랑 공원에서 대화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서 서로 교환도 하구요~”

“엥? 이왕 온 김에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투어는 꼭 해봐야 되지 않아요? 우리는 투어란 투어는 다 해보고 있어요. 어제 프리즌 섬 투어랑 피쉬 마켓, 향신료투어 다녀왔어요. 앞으로 탄자니아에서는 세렝게티 투어랑 커피농장 투어가 남아 있네요.”     



“우리는 언젠가 다시 아프리카에 올 거라고 생각해서 빡빡하게 다해보지 않으려고요. 다음번에 와서 못 가본 지역과 못해본 투어를 해볼 거예요”

“저희는 아프리카에 다신 못 올 거라는 생각으로 빡빡하게 모든 걸 다 하고 가려고요”







▲신혼부부가 만들어준 정성스러운 한국음식












 대화만 보면 서로 여행 스타일에 대해 자기주장만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자매는 속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이전에 동남아와 남미를 성공적으로 여행했고 이번엔 아프리카까지 여행하며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여행 방식이 모두 옳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몇 개월 전부터 계획을 철저히 세웠다. 인터넷과 책, 다큐멘터리 등에서 정보를 모았다. 그리고 블로그에 정확하게 이대로 여행을 하겠다며 엄포 아닌 엄포를 놨다. 일종의 자신감이었는데 문제는 이대로 여행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남미 아르헨티나를 여행했을 때 일이다. 원래 아르헨티나 중부 바릴로체에서 남미대륙의 끝 파타고니아로 가서 3박 4일 트래킹을 할 예정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이미 캠핑장과 교통 루트에 대해 전부 꼼꼼히 알아봤다. 트래킹 장비까지 마련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폭설로 인해 교통이 마비됐고 결국 우린 아르헨티나 남부 여행을 포기해야 했다.       



“우리 여행은 끝났어. 실패야. 완벽하게 다 가질 못했어.”

“이미 파타고니아 간다고 떠벌렸는데 어쩌지? 남들이 우리 여행기에 실망하는 거 아니야?”



 천재지변 때문인데 왠지 자꾸 자책을 하게 됐다. 특히 블로그에 꾸준히 자매의 여행기를 올렸었는데, 매일 우리 이야기를 봐주는 독자에게 실망을 안길까 봐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능귀해변에서 신혼부부와














  능귀 해변에서 신혼부부와 술 한 잔 마시며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로 인해 우리 자매가 여행을 잘 하고 있는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왜 그렇게 ‘눈치’를 봤는지 모르겠다. 우리 자매가 여행을 하는 것이 ‘자매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건지, ‘남의 눈치’를 보느라 목표를 이루려고 했던 건지 말이다. 



 신혼부부는 남의 눈치는 전혀 보지 않았다. SNS도 블로그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사진도 잘 안 찍는다. 우리 자매는 거의 몇 년 동안 가고 싶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했고, 여행후기를 꼼꼼히 정리했다. 한편으로 계속해서 남의 평가에 급급해 여행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일을 그만두고 동생과 떠나는 게 멋있긴 한 거지?”, “자매끼리 아프리카에 배낭 매고 가는 게 남들 눈엔 어때 보여?”, “여행하기 힘들다는 마다가스카르에 갈건 데 다들 부러워하려나?” 등 평가를 받기 위해 계속해서 주위 사람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남의 평가를 받고 싶어서 이렇게 완벽하게 짜인 여행을 하는 건지, 아니면 단지 내가 정말 원해서 목표를 세우고 이루려는 건지 헛갈렸다.      




“우리도 다음 여행 땐 우리 잘났다고 보여주는 여행 말고, 신혼부부처럼 은은하게 머물다가는 여행을 해볼까?


“응 신혼부부처럼 여행하면 피곤하지도 않고 마음이 편안할 거 같아”        






▲능귀해변의 일몰


▲일몰을 보며 맥주 한병
▲같은 곳 바라보는 신혼부부





-잔지바르(Zanzibar)     

 잔지바르는 페르시아어 잔지(Zanzi,흑인)와 바르(bar,해안)의 복합어다. 뜻은 '검은해안'이다. 고대에 페르시아인들이 와서 살았고, 1107년에 처음 이슬람 사원이 설립됐다. 페르시아인들은 잔지바르섬에서 아프리카와 중동, 인도를 연결하는 무역항으로 사용했다. 각종 향신료와 노예를 거래하는 시장으로 번영했다. 1828년부터 오만의 수도 였으며, 1964년 탄자니아 령이 됐다. 현재는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레스토랑과 커피숍, 기념품 숍 등이 즐비 한다. 전 세계에서 나는 향신료 80%를 생산해 향신료 섬(Spice Islands)이라고도 불린다.  

 잔지바르의 스톤타운(Stone Town)은 아프리카와 아랍, 유럽의 문명이 함께 섞여있는 독특한 곳이다. 인도양 동아프리카의 중요한 무역항으로 당시 아랍풍의 건축물들과 구불구불한 길, 노예시장의 유적, 술탄의 왕궁과 오만제국의 요새, 이슬람 사원, 성공회 성당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섬 북쪽에는 능귀(Nungwi), 동쪽에는 잠비아니(Jambiani)와 파제(Paje)해변이 유명하다. 






*자매의 아프리카 여행에세이 <아!FREE!카!>가 출간 됐습니다.

하단의 YES24 링크타고 들어가면 자세한 내용 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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