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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Mar 05. 2017

현지인들은 안 궁금한 에메랄드 빛 호수

페루 와라즈 69 호수(Laguna69) 트래킹




"거기를 왜 가요? 6~7시간 동안 올라가면 에메랄드 빛 호수 밖에 없어요" - 페루에서 만난 현지인

"에메랄드 빛 호수 보러 가요! 한국엔 이런 호수가 없다니까요"






 페루의 작은 고산도시 와라즈. 우리 자매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해발 약 5000m에 있는 69 호수(Laguna69)를 보기 위해서다. 7~8시간 왕복 트래킹으로 산을 오르면 새하얀 만년설 아래, 에메랄드 빛 새파란 호수를 만날 수 있다. 너무 보고 싶었다. 얼마나 청명할까. 

 그런데 게스트하우스 아들이 우리한테 69 호수에 도대체 왜 가냐고 묻는다. 트래킹으로도 잘 알려지지도 않은 곳이고, 그곳에 오르다가 포기하는 사람이 절반이라고 한다. 힘들게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한다. 마치 그는 우리에게 '동네에 에메랄드 호수 한개쯤은 다 있지 않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메랄드 빛 호수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에메랄드 빛 호수 없어요? 그냥 산에 가면 있지 않아요?"

"한국 산에는 에메랄드 빛 호수가 없....어요."



 내가 그렇게 69 호수를 열망했던 이유는 아마 '에메랄드 빛 물'이었을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등산을 할 때 거의 암벽 수준이다. 산 꼭대기 정상에 올라 태극기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온다. 만년설도 없다. 호수도 없다. 그래서 그렇게 에메랄드 빛 호수가 보고 싶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남미는 워낙 땅덩어리가 크고 대자연이 멋져서 에메랄드 빛 호수 따위는 감흥이 없나 보다. 나와 페루 현지인의 시각차이였다. 브라질에서 여행 중인 페루인을 만났는데 그는 나에게 "서울! 명동 가보고 싶어요. 화려한 쇼핑거리를 즐기고 싶어요"라고 말했었다. 그때 난 '웬 명동.. 복잡하기만 하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여행자와 현지인의 시각 차이가 있고,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 대한 열망도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토록 열망했던 69호수 정상! 





 어쨌든 나와 동생은 게스트하우스 아들의 말을 듣지 않고 무조건 직진했다. 아침 6시에 여행사 차가 도착했고, 9시에 산 중턱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 우아스까란(Parque Nacional Huascaran)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트래킹 시작!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69 호수에 대한 정보가 있다. 어떤 한국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69 호수가 4669m에 위치해 있어서 69호 수라 불린다는 글을 써놨다. 하지만 현지인 말에 따르면 페루 와라즈에는 200개가 넘는 호수가 있는데, 그중 69번째 호수라서 69호 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트래킹에 앞서 아침을 사먹을 수 있는 식당. 이때 아침을 안먹으면  힘이 딸려서 트래킹에 큰 지장이 있다!






 "우와... 우와! 우와!!"

 트래킹 시작도 전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치 반지의 제왕 촬영지 같은 자연경관에 놀라 사진기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길을 거니는 말과 소, 당나귀에 말도 걸어본다. 평생 처음 본 꽃과 식물들에 자꾸 눈이 간다. 어떻게 이런 자연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놀라울 따름이었다. 산 밑에서 몇 박씩 캠핑을 즐기는 여행객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트래킹에 나선 독일인과 프랑스인, 영국인, 네덜란드인등은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우리한테 말했다. "이런 거 처음 봐? 그렇게 자꾸 사진 찍고 쉬면 정상까지 못 올라갈 거야. 서둘러" 외국인의 눈에는 마치 우리가 촌에서 서울 상경해서 허둥지둥 구경하는 것 같아 보였나 보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 풍경을 최대한 많이 눈에 담고 사진에 담고 싶었다.

 나중에 얘기한 거지만 외국인 친구들은 69 호수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목표고, 그 과정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은 정상에 도착해서도 사진 몇 장만 찍고 곧장 내려갔다. 우리는 트래킹 전 과정을 즐겼고, 산 꼭대기에서도 100여 장이 넘는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각자 여행의 목표와 여행 사진 찍는 것에 대한 열망도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외국인 친구들의 말이 현실이 됐다. 사진 찍는데 시간과 체력을 너무 썼나 보다. 처음에는 평탄 한길의 트래킹이었지만 곧 가파른 산행길이 나타났다. 거기에 고산병도 찾아왔다. 평지-산행-평지-산행을 수십 번 반복했다. 도대체 어디가 끝인가. 오르고 또 오르면 금방이라도 '짜짠'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던 69 호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래서 여행객 절반이 포기했나 보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가방에서 미리 사온 코카잎을 씹어먹었다. 숨이 턱밑까지 막혀오면 아예 누워버리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하늘조차 파랗고 예뻐서 할 말을 잃었다. 먼저 간 외국인 여행객들은 이미 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 같았던 트래킹 코스 풍경



▲몇번이고 숨을 헐떡이며 쓰러졌다. 고산병 때문에 코카잎은 필수!






 우리가 한창 올라갈 때 이미 외국인 여행객들은 69 호수 정상을 만끽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5시간은 더 남았어. 힘내" 라며 장난을 친다. 목표를 달성한 자들의 여유 있는 미소였다. 죽을힘을 다해 오르고 또 오르고, 숨이 멋을 것 같을 때 비로소 해발 약 5000미터에 위치한 69 호수에 도착했다. 

 사실 69 호수 트래킹 계획을 짜면서 한국에서 등산 연습을 했다. 북한산에 오르며 체력을 다졌다. 하지만 북한산은 해발 800미터. 막상 코카잎을 씹으며 고산지대를 트래킹 하려니 한국에서의 등산 연습은 꽝이나 마찬가지였다.


 69 호수에 도착해서 간단히 간식도 먹고 사진도 맘껏 찍었다. 실컷 놀았다. 에메랄드 빛 색깔은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가까이 가서 물 안을 내다봤는데, 속이 다 비친다.  거기다 주변의 산이 만년설로 하얘서 인지 더욱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해 6~7시간 숨 막히는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풍경을 자주 보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페루 현지인이 우리한테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고 늘 함께 하던 풍경일 뿐이었다. 우리는 평소에 못 봤기 때문에 그 열망이 여기까지 길을 이끌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전 세계 각기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다른 도시들의 삶 속에 궁금증과 열망을 품고 여행을 떠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처음 본, 페루 여행의 목표였던 에메랄드 빛 69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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