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원서책 낭독을 위한 준비 사항 세 가지
7월 초부터 주말 빼고 매일매일 영어 원서 책을 낭독해서 읽었다. 하루에 삼십 분씩, 길면 사십 분씩 걸렸다. 그 이상은 아무래도 어려웠다. 삼십 분만 지나가도 혀가 꼬이고 입이 말랐다. 두 달 동안 단 두 권의 책을 서문부터 에필로그까지 단 한 문장도 빠짐없이 소리를 내어 읽었다. 아주 느린 독서였다.
지난주에는 두 달만에 처음으로 총 아흘 동안 연속으로 책을 읽지 못했다. 남편이 일주일 동안 재택근무를 한 탓이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왠지 영어를 하는 게 어색하다. 같이 유럽도 갔고 미국도 갔고 남편 앞에서 영어를 한 번도 안 쓴 것도 아닌데, 왜 남편 옆에서 영어 책을 읽는 건 이토록 뻘쭘한가! 지난주 월요일에는 눈치를 보다 거실에 남편 티비를 틀어주고 나는 안방 구석에 가서 책을 읽을까 했다. 그런데 집이 크지 않다 보니, 안방 구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거실로부터 티비 소리가 들려오는 거다. 내 목소리도 그러면 거실에 들리겠지. 나는 금방 책을 덮고 거실로 나와서 남편과 함께 티비를 시청했다.
1. 영어책을 낭독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꾸준히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는 일이다.
다행히 이번 주는 남편이 다시 사무실로 출근했기에, 나는 아침에 마음 놓고 삼십 분동안 책을 낭독을 할 수 있었다. 그새 영어가 어색해졌는지, 발음이 구수해져버린 기분이었다.
내가 영어 책을 낭독하기 전에 꼭 준비하는 것이 두 가지가 더 있다.
2. 하나는 텀블러 한 잔 가득 물을 따르는 일이다.
나는 영어로 말을 할 때 왜 그렇게 목이 마른지 모르겠다. 평소와 다른 패턴으로 혀가 움직이고 목젖이 울리다 보니까 입이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영어책을 낭독하는 와중에 나는 수시로 물을 마신다. 물을 많이 마시는 건 건강에 좋은 거니까 나는 영어책을 낭독하면서 조금씩 건강해진다고 볼 수 있을까.
3. 그다음은 입을 풀어주는 거다. 과하게.
온 힘을 다해 아아아아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오오오오 하며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이이이이 하고 입을 가로로 최대한 찢는다. 이렇게 얼굴 근육을 쭉 당기고 영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발음이 훨씬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 '볼 살 빠지는 얼굴 마사지', '얼굴이 갸름해지는 / 얼굴이 작아지는 습관'으로 인터넷에서 자주 본 방법이기도 하다. 언젠가 티비에서 얼굴이 CD로 가려질 만큼 작은 연예인이 본인의 작은 얼굴의 비결이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아에이오우'를 여러 번 반복하는 거라고 했는데, 나는 그걸 믿지 않아 굳이 따라 하지 않았다. 나는 얼굴 크기는 타고나는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제 와서 영어 책을 낭독하겠다며 매일 아에이오우를 반복하고 있다.
대학교에 다닐 때 중학생에게 영어 과외를 할 때 매 수업마다 10분씩 발음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때 사용했던 발음 교재의 인트로에는 한국인의 구강 구조와 미국인(서양인)의 구강 구조가 선천적으로 다르다며 비교하는 이미지가 실려 있었고, 그 '신체적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인은 영어를 할 때 입을 크게 크게 벌려서 발음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사실 나와 별 다를게 없이 생긴 한국인 교포들, 그리고 줄곧 한국에서만 공부했는데 발음이 네이티브 버금가는 몇몇 유튜버들을 보면 정말 동양인의 구강 구조가 발음에 영향을 미치는게 맞는건지 의심이 가기는 한다.
그러나 진심으로, 나는 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 이이이이이를 하면 영어를 발음하는 게 수월하다고 느낀다. 이게 나만 그런건지, 발음이 좋아진다고 느끼는 게 단순히 기분 탓인 건지, 아니면 진짜로 이게 과학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법인 건지 궁금하다. 다른 분들도 해보고 효과를 나에게 공유해주셨으면 좋겠다.
혹시 정말 기분 탓이었다 해도, 그새 내 얼굴이 아주 조금은 갸름해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얼굴이 갸름해지면 어디다 써먹지? 아 모르겠다. 야구 선수들도 타석에 섰을 때 발로 흙을 고르거나 야구 배트로 바닥에 선을 긋는 등의 루틴을 반복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이건 나의 영어 낭독 루틴인 것이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 읽을 수 있게 해주세요, 하는.